『인간의 대지』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by 다정한 태쁘

세계문학을 다시 읽기로 마음먹고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발행했다. 그다음 책을 고를 때 이유는 없었다. 손이 가는 대로 집었다. 생텍쥐페리의 『인간의 대지』

소설을 덮고 나서 한참을 멍하니 앉아 있었다.


아무것도 설득당하지 않았는데 뭔가 달라진 기분이었다. 이상했다. 작가는 나를 이해시키려 들지 않았다. 사막 한가운데 떨어진 사람, 폭풍 속을 통과하는 조종사, 동료를 찾아 나선 친구. 그냥 그들이 있었다. 선택하고 감당하고, 계속 갔다. 그걸 지켜봤을 뿐이다.


요즘 나는 자주 지친다. 알아야 할 게 많아서가 아니라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을 때가 더 많다. 답은 넘쳐나는데 태도는 모르겠다.

"돈만을 위해 일한다면 우리는 스스로의 감옥을 짓는 것이다."

뻔한 말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가만히 읽으니 달랐다. 설교가 아니라 관찰이었다. 목적이 하나로 줄어들면 삶도 함께 좁아진다. 선택지가 늘어나는 게 아니라 사라진다는 걸 생텍쥐페리는 ‘그냥’ 적었다. 나는 이런 경험이 있다. 한 가지만 쫓을 때 오히려 갇혔던 적.


"그 미지의 것에 맞서기만 한다면, 그때는 이미 미지의 것이 아닌 것이다. 특히 이렇듯 명석한 침착성을 가지고 그것을 관찰할 때는 말할 것도 없다."

<<명석한 침착성>>

한참을 멈추고 필사를 했다. 정확히 내가 가지지 못한 것이다. 늘 흥분하거나 회피하다 보면 두렵고, 두려우면 과장한다. 급할수록 일을 망친다는 걸 이제야 배워 ‘여유’와 ‘평온’은 내 인생에 큰 의미다. 그런데 소설 속 주인공들은 위험 앞에서 조용하다. 맞선다는 게 싸운다는 뜻이 아니라 똑바로 바라본다는 뜻이었다.


기요메가 안데스산맥에 추락한 뒤 사흘째 눈 속을 걷는 장면이 있다. 체온도 없고, 방향도 모르지만 그냥 간다.

"점점 자네의 피가 줄고, 자네의 힘도 이성도 텅 비어 갔지만, 자네는 개미처럼 끈기 있게 앞으로 나아갔던 것일세."

영웅 서사가 아니어서 더 울컥했다. 감동을 주려는 문장이 아니어서 더 감동적이었다. 기요메는 힘을 내서 간 게 아니다. 지속밖에 남은 게 없어서 갔다.

살다 보면 그런 날이 있다. 힘이 있어서가 아니라 멈추면 안 될 것 같아서 계속하는 날. "살아나는 길은, 한 걸음 또 한 걸음 내딛는 것이었어." 회복을 거창하게 만들지 않는 이 문장이 위로였다. 극적인 결단 같은 건 필요 없다. 같은 방향을 반복하면 됐다. 급하지 않고 흐트러지지 않으면 됐다.

명석한 침착성을 품고 살고 싶다. 상황이 급해도 흥분하지 않는 사람, 두려워도 회피하지 않는 사람, 지쳐도 멈추지 않는 사람.


『인간의 대지』는 인간을 낭만화하지 않지만 인간을 누구보다 믿는다. 쉽게 무너지지 않고, 과장된 희망 없이도 계속 걸어간다. 해설도 선언도 없지만 사람의 움직임이 있다.

『인간의 대지』는 내게, 인간이 어떤 존재인지 남겨 뒀다.

월, 화, 수, 목, 금, 토, 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