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과 바다』

어니스트 헤밍웨이

by 다정한 태쁘

“운이 내게 찾아올 때 그걸 바로 낚아채려면 일은 항상 정확하게 해 둬야 해.”

운이란 그런 것이다. 잘 안 풀리면 시기가 나쁘다고 말하거나 잘되면 운이 좋았다고 말하지만 운은 준비의 반대편에 있지 않다. 운은 준비의 끝자락에 걸쳐 있을 뿐이다.

바다 한가운데서 산티아고는 고기와 싸우는 것이 힘에 부치자, 자신감을 가지려고 지난 일을 떠올린다. 카사블랑카의 술집에서 팔씨름을 하던 밤. 그 기억은 끝까지 버텼다는 사실 하나 때문에 소환된다. 불안해질수록 과거의 자신을 호출한다. 괜찮았던 시절이 아니라 견뎌냈던 순간들을.

이 책을 처음 읽었을 때, 노인의 투지에 마음을 빼앗겼다. 손은 마음처럼 움직이지 않고 온몸의 통증, 잠을 자지 못하고 물을 마시지 못해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산티아고의 외로운 싸움에 마음이 아팠다.

“그 애가 지금 같이 있으면 좀 좋아.” 마놀린을 그리워할 때 나도 같은 마음으로 노인의 옆에 소년이 있었으면 했다.


마흔인 지금, 다른 문장이 와닿는다 .

사람이 매일 달을 죽이려 든다면 달은 도망쳐 버릴 거라고 노인은 생각했다. 달이 아니고 해를 매일 죽이려 한다면? 생각만 해도 끔찍한데 우리 인간이 그러지 않아도 되니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세상을 다 이길 필요는 없다. 꼭 이겨야 할 것만 남겨두고 살아도 충분하다. 하지만 현실에서 우리는 여전히 모든 파도와 싸우려 든다. 달을 그냥 두고, 해를 그냥 뜨게 내버려 두어야 하는데 해와 달을 이기려 발버둥 친다.


산티아고는 너무 멀리까지 나갔다. 그리고 결국 거의 모든 것을 잃었다. 사실 멀리 나갔던 건, 산티아고의 의지는 아니었다. 잡은 물고기가 힘이 빠지길 기다리며 따라갔다. 어쩌면 우리도 인생을 살면서 의도하지 않았는데 너무 멀리 나가기도 한다.

물고기를 잡았지만 상어들의 공격에 온전하게 지켜내지 못한 채 돌아올 때 청새치의 머리와 뿔, 앙상한 뼈가 전부였다.

“좋은 일은 오래가기 힘든 법이야. 차라리 이게 다 꿈이라면 좋겠다. 저놈을 잡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텐데. 집에서 신문지 깔린 침대에 혼자 누워있으면 얼마나 좋아. 하지만 사람은 지지 않아. 사람이라면 죽을 수 있을지언정 질 수는 없어.”

산티아고는 신문지 깔린 침대를 그리워하는 아주 작고 구체적인 후회를 하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누구나 이쯤 되면 좌절하게 마련인데 죽기 전까지 굴복하지 않겠다는 다짐도 했다. 이미 많은 것을 잃은 사람이 남은 것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에게 하는 말이다. 결과를 뒤집겠다는 것보다 여기까지 온 자신을 부정하지 않겠다에 가깝다.



살점이라고는 하나도 남지 않은 등뼈만 남은 고기를 싣고 배는 돌아온다.

“배는 끄떡없구나. 참 튼튼한 배야. 키 손잡이 말고는 고장 난 데도 없고 말이야. 손잡이야 다른 걸로 바꾸면 되지 뭐.”

“다 내가 너무 멀리까지 나가서 벌어진 일이라고.”

고장 난 부분이 늘 전부는 아니고 여전히 움직일 수 있는 쪽이 남아 있다. 우리가 부러진 손잡이만 보느냐 멀쩡한 배를 보느냐의 차이일 뿐이다. 그러면서도 산티아고는 욕심이 과했다고 자책한다. 하지만 곧 페드리코에게 고기 머리를 주라고 당부한다. 잡아 온 고기에 등뼈만 남았어도 자신을 돌봐준 사람을 잊지 않는다.

패배를 품위 있게 받아들이는 법. 이것이 ‘지지 않는다.’의 진짜 뜻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것만으로도 노인에게 바다는 다시 나갈 만한 곳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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