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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정한 태쁘 Dec 20. 2024

엄마는 왜 나를 못 믿어?

잠깐의 여유를 주고 지켜봐 주는 것

관계 속에서 서로를 믿는다는 것이 얼마나 강력한 힘을 가지는지는 아마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믿음은 관계를 지탱하는 가장 중요한 기둥이자 그 관계를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원동력이다. 그런데 우리는 진짜로 내 아이, 배우자 그리고 동료를 믿고 있는가?


아이를 믿는다고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말해왔다.

“난 너를 믿어.”

아마 하루에도 몇 번씩 그렇게 말하며 나 자신을 다독였을 것이다. 그런데 얼마 전 아이와 함께한 작은 사건이 내가 믿음을 얼마나 잘못 이해하고 있었는지 깨닫게 해 주었다.


엄마는 왜 나를 못 믿어?


아이들과 함께 ‘클루’라는 보드게임을 하고 있었다.

범인과 장소, 도구를 추리하며 웃고 떠드는 시간이었고 우리는 정말 즐거웠다.

잠시 자리를 비우고 돌아온 나는 무심코 아이에게 물었다.

“클루카드 이거 봤지?"


가볍게 던진 말이었다.

그런데 아이는 갑자기 서럽게 울었다. 진짜 본 걸까, 반응이 재밌어 한 두 마디 더 보탰을 뿐인데 왜 이렇게 과민반응일까, 무슨 말을 해줘야 하지 머릿속이 복잡해지는 순간

“엄마는 왜 나를 못 믿어?”


그 순간 나는 얼어붙었다. 그저 가벼운 장난이었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아이는 내 말속에서 '엄마가 나를 의심한다'는 신호를 읽었다. 내가 무심코 던진 말 한마디가 아이에게는 '엄마는 나를 믿지 않아'라는 메시지로 다가왔던 것이다.


아이는 무엇이 그리도 서러웠을까? 믿음이란 사람에게 어떤 의미길래 순하기로 둘째라면 서러운 우리 아들은 어깨까지 들썩이며 울었던 걸까.

출천 네이버블로그(모아나2)

그날 나는 믿음이란 단순히 “난 널 믿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님을 깨달았다.

믿음은 내가 상대를 바라보는 태도에서 시작된다. 그것은 상대가 내 말과 행동 속에서 느끼는 감정이다. 내가 아무리 믿고 있다고 생각해도 상대가 그것을 느끼지 못한다면 믿음은 없는 것이다.




누군가가 나를 믿어준다는 것은 단지 안정감을 주는 것이 아니다.

믿음은 그 자체로 상대의 가능성을 열어준다.


몇 해 전 인사이동에서 보직변경을 하며 어렵고 힘든 자리로 발령이 났다. 자신감은 없고 내가 잘 해낼 수 있을까 생각이 많아지던 찰나 평소 업무적인 면과 성품까지 모두 갖춘 상사가 나를 불러 세웠다. “이번에 힘든 자리에 가는구나 태쁘씨라면 걱정 안 하지, 잘 해낼 거야”라고 말하셨다.

그간의 걱정이 거품처럼 사라졌다. 내가 잘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에서 나는 당연히 잘할 수 있지로 바뀌는 감정의 변화를 오로지 느꼈다.

누군가가 나를 믿어준다는 것. 어떤 선물보다 마음속에 깊은 울림을 준다.


믿음은 그래서 강력하다.

그것은 상대방의 행동을 변화시키기보다 그 사람이 스스로를 변화시키도록 돕는다.

“넌 괜찮아. 네가 실패해도 난 네 편이야.”




하지만 믿음은 쉽지 않다.

특히 내가 믿고 있는 사람이 실수를 반복하거나 내 기대를 저버리는 것처럼 보일 때 더욱 그렇다.

아이에게도 마찬가지다.

숙제를 미루거나 게임을 하고 있거나 내가 보기에 엉뚱한 선택을 할 때도 믿음을 유지하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믿음은 기다리는 것이다.

내가 아이의 속도에 맞추는 것이며 아이가 자신의 길을 스스로 찾아가도록 여유를 주는 것이다.

“왜 아직도 못했어?”라는 말을 참고 대신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엄마는 네가 잘 해낼 거라고 믿어.”


믿음은 때로 침묵이 되고 때로는 물러서는 태도가 된다.

의심하지 않는 눈빛과 비난하지 않는 말 한마디가 상대에게 “괜찮다”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결국 믿음은 관계를 지키는 가장 강력한 힘이다.

내가 믿음을 주는 사람은 다시 나를 믿어주는 사람이 된다.

하지만 내가 누군가를 의심하고 평가하기 시작하면 그 관계는 서서히 메말라간다.

믿음은 관계를 움직이는 숨결이라 그것이 없다면 관계는 곧 금이 간다.

그러나 믿음이 있다면 그 관계는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쓰러지지 않는다.


오늘도 잔소리를 삼킨다.

숙제를 미루는 아이를 보며, “빨리 해”라는 말을 참고 기다려본다.

내가 할 일은 단 하나다.

믿음을 보여주는 것. 내가 너를 믿고 있다고 말로 장황하게 설명하기보다 잠시 잠깐의 여유를 주고 지켜봐 주는 것이다.


내가 믿음을 보여줄 때 그 믿음은 반드시 상대에게 닿는다.

그리고 그 믿음은 관계를 살린다.


주변의 누구라도 좋다.

한번 스스로 실험해 볼 것을 권한다. 하고 싶었던 조언을 삼키고 그 사람을 믿어주는 마음으로 한발 물러나 기다려주자. 그리고 당신이 건넨 믿음이 그에게로 가 닿아 어떤 별을 만들어 내는지 함께 찾아보자.

어떤 식으로든 ‘믿어주는 것의 힘’을 경험해 본다면 우리는 말로만 너를 믿어.라고 하지 않게 될 것이다.


"자신을 믿지 못하는 사람은 결코 타인도 진정으로 믿을 수 없다."

- 니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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