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의 작은 반란, 삼켜야만 하는 잔소리
“엄마, 이번 주 골프 예약했어?”
“아니, 이번 주엔 늦어서 예약 못 했는데. 왜?” 여행 없는 주말이면 아파트커뮤니티에서 남편과 스크린 골프를 친다. 남편과 우리 늙어 함께할 취미 하나쯤은 있어야 한다는 생각하에 배우기 시작한 골프는 요즘 글쓰기에 밀려 찬밥신세다.
“히잉, 그럼 엄마 아빠 둘이서 카페라도 갈 거야? 둘이서 여유 좀 즐겨봐.” 문법파괴자다. 카페라도 갈 거야? 는 가라는 말인지, 갈 거냐고 묻는 말인지. 아침부터 웃음이 입가에서 솟구쳐 폭죽처럼 터졌다.
문법을 파괴한 이유는 단순했다. 엄마, 아빠가 집에 있으면 잔소리를 할 테니 밖으로 나가라는 것이다. 오빠랑 둘이 집에서 마음껏 놀고 싶단다. 내가 잔소리 대마왕이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아는 딸의 진실로 무장된 말이 심장을 콕 찌르며 울림을 남겼다.
“엄마, 나 오늘 공부 안 해도 돼. 꿈에서 공부했어.”
첫째 아들의 어이없는 핑계에도 웃음이 터졌다. 아, 이 녀석들. 이렇게 엉뚱한 이유로 자유를 갈망하다니.
‘자유란 무엇일까?’ 어른이든 아이든 인간이라면 누구나 원하는 가장 원초적인 본능이 아닐까?
아이들에게 자유는 단순하다.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하는 것, 혹은 하고 싶지 않은 것을 안 하는 것이다. 공부를 안 하고 싶다는 아들의 말은 얼핏 귀엽게 들리지만 그 안에는 나름의 철학(?)이 담겨 있다. 아이들에게 공부는 강요된 의무처럼 느껴질 때가 많다. 그런 의무에서 잠시라도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곧 그들의 자유다.
둘째 딸의 경우는 더 명확하다. “엄마 아빠 나가주세요”라는 말은 단순히 놀고 싶은 바람을 넘어서 아이들끼리만 있을 때 느끼는 해방감을 보여준다. 어른들이 없는 공간에서 아이들만의 규칙과 질서가 만들어지는 시간을 원하는 것이다. 그 속에서 자유를 배우고 스스로 선택하는 기쁨을 경험한다.
그렇다면 아이들에게 자유란 통제받지 않고 자기만의 세계를 만들어가는 과정인지도 모르겠다.
아이들의 자유가 의무에서의 탈출이라면 어른들의 자유는 복잡하다. 어른들은 이미 자유를 누리는 듯 보이지만 사실 사회와 가족, 직장이라는 틀 속에 얽매여 있다.
예를 들어 나는 종종 이런 생각을 한다. ‘엄마로서의 역할에서 벗어나고 싶다.’ 이 말을 하면 누군가는 이기적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건 단순히 “엄마 하기 싫다”는 말이 아니다. 오히려 내가 더 나은 엄마가 되기 위해 잠시라도 나 자신으로 돌아가고 싶은 바람에 가깝다.
어른들에게 자유는 아이들처럼 단순하지 않다. 책임과 자유가 충돌하고 선택의 순간마다 고민이 스며든다. 자유롭고 싶지만 그 자유가 나의 책임을 방치하지는 않을까 두려운 것이다.
그러나 아이들에게서 배운다. 자유를 위해서는 가끔 스스로를 용서하고 잠시 그 무거운 책임감을 내려놓아야 한다는 것을.
자유는 종종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하는 것”으로 정의된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하고 싶은 것을 무작정 하는 것만이 진정한 자유라면 그것은 방종과 다를 바 없을지도 모른다. 자유는 때로는 하고 싶지 않은 것을 하지 않을 권리다.
아이들은 자유를 '엄마의 잔소리에서 벗어나는 것'이라고 말하지만 사실 그 자유는 엄마가 제공한 안정감 속에서 가능하다. 그리고 나는 내 자유를 아이들과의 관계 속에서 찾는다. 서로가 서로의 틀을 만들어주는 동시에 그 틀 안에서 벗어나는 자유를 배우는 것이다.
자유는 혼자서만 누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관계 속에서 만들어진다. 타인의 기대와 규칙 그리고 그 속에서 벗어나려는 갈망 사이의 긴장감이 바로 자유의 본질이다.
딸의 소박한 한마디가 마치 열린 창문처럼 내 생각의 지평을 넓혀 주었다. 아이들이 건강하게 몸과 마음이 자라기 위해서 무엇보다도 필요한 건 스스로 선택하고 자신의 길을 걸어갈 자유다.
잔소리를 줄이는 것이 아이들에게 자유를 주는 첫걸음이라면 나는 그 길을 배우는 중이다.
요즘 나는 작은 실험을 하고 있다. 주말만은 잔소리를 하지 않겠다고 스스로와 약속했다. 숙제를 하겠다면 하고 하기 싫다면 하지 않아도 괜찮다. 다만, 그 선택의 결과는 스스로 책임지기로 했다.
게임을 좋아하는 첫째는 게임을 할 수 없고 호기심 딱지를 좋아하는 둘째는 그것을 볼 수 없다. 처음에는 걱정이 앞섰지만 결과는 예상 밖이었다. 주말만 열리는 보물상자라 아이들은 오늘이 지나면 일주일을 또 기다려야 하기에 잔소리가 없어도 아이들 스스로 공부를 하고 놀이 시간도 알뜰하게 계획한다. 잔소리가 사라진 자리에 아이들 안에 잠재되어 있던 자율성이 고개를 들었다.
나 역시 아이들에게 강요하지 않아도 그들이 스스로 해내는 모습을 보며 마음의 짐이 덜어지고 진정한 평화를 얻는다.
자유는 아이고 어른이고 인간이라면 누구나 갈망하는 본능이다. 하지만 그것은 결코 혼자만의 것이 아니다. 자유는 관계 속에서 존재한다. 서로를 통제하지 않고 스스로 선택할 수 있도록 여백을 주는 것. 그것이 자유의 시작이다.
아이들은 엄마 아빠를 카페로 보내며 작은 반란을 꿈꾼다. 남편과 나는 둘만의 오붓한 시간을 보내기로 했지만 ‘오붓’은 어쩌면 나 혼자만의 생각일지도 모른다. 남편에게도 그만의 자유가 있을 텐데. 그 자유는 내가 미처 모르는 어딘가에서 새로운 형태로 피어나고 있을지는 모를 일이다.
-프리드리히 니체 (Friedrich Nietzsch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