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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태인 Jul 15. 2019

나는 요즘 기자가 아닌 것 같아

#기자는 이렇게 살고 또 취재합니다

박태인 기자입니다. 이젠 기레기라는 용어가 더 익숙한 기자라는 업(業)을 맡고 있습니다. 기자들이 어떻게 살고 또 어떻게 취재하는지, 이들의 애환은 무엇이며 어떤 고민과 부딪치는지를 기록하려 합니다. 매일, 매 순간 선택에 놓인 저희들의 삶을 연재해보려 합니다.    
parktaeinn@gmail.com
드루킹 특검 취재당시 포토라인. 박태인

전 4년 차 기자입니다. 실제 기자가 된지는 만 3년 하고 1달이 조금 넘었습니다. 회사 생활 만 3년을 위기의 시기라 하던가요. 동료들이 떠나고 있습니다. 남아있는 동료도 퇴사란 마음에 가슴이 두근거립니다. 그런데 배운 게 별반 없다 보니 갈 곳이 없어 떠나질 못합니다. 이 업(業)이 참 재밌는 동료도 있습니다. 하지만 사양산업이라 일이 점점 더 힘들어져 얼마나 버틸지 모르겠습니다.


이 모든 것이 현재 기자란 직종에서 벌어지는 현상입니다. 우리나라 모든 직종에서 공통적으로 발생하는 문제라 반문할 수도 있습니다. 맞는 말입니다. 그런데 그 분위기나 속도가 다른 업종에 비해 더 심각하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직업에 귀천은 없지만 기자는 참 특별한 직업입니다. 아직 많은 이들에게는 꿈 그 자체입니다. 그럼에도 다른 업종으로 떠나는 선후배를 부러워하고 내 직업을 혐오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 기자들이 매우 빠른 속도로 늘어나고 있습니다.


나 요즘 기자 아니야

언론사에 다니는 한 동료가 최근 저에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그 친구가 조금 달라졌다는 생각이 들 때쯤이었습니다. 더 편해 보인다고 할까요. 회사 생활을 예전에 비해 더 잘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최근 "잘 지내고 있니?"라고 물으니 "난 요즘 기자가 아니야"라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거기서 더 나아가진 않았지만 "기자라 생각하지 않고 회사원(조직원)이라 생각하고 일을 하고 있다"는 의미로 다가왔습니다.


조직의 논리 속에 개인의 고민은 사치일 수 있습니다. 그가 속한 조직이 요구하는 기자의 역할은 우리가 한때 생각했던 기자의 역할과 달랐을 수도 있습니다. 제가 잘못 짐작한 것일 수도 있지만 제 동료는 제 생각보다 선택을 빨리 한 것 같습니다.


기자란 명함은 갖고 있지만 기자로 살지는 않겠다는 선언. 명문대를 졸업한 친구답게 현실을 빨리 이해한 것일까요. 제 동료는 마음이 더 편해 보였습니다. "네가 조금이라도 더 편하면 됐다" 전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신념을 따르라?"

기자는 회사원입니다. 전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저널리즘 스쿨을 졸업했습니다. "당신의 신념을 따르라(follow your creed)"라는 글귀가 곳곳에 걸려있는 기자 양성소입니다. 하지만 전 짧은 기자 생활을 하면서도 '기자는 회사원'이란 사실을 부정할 수 없었습니다.


기자란 소명과 기자가 속한 조직의 가치가 일치한다면 그때 기자는 회사원이면서도 기자가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가치가 일치하지 않는 순간에는 선택을 해야 합니다. 신념을 따르고 싶지만 회사를 따라야 하는 순간이 있습니다. 그것은 한국 언론만의 특징은 아닙니다. 전 세계 모든 기자들이 갖고 있는 공통적인 고민입니다.


어떤 선배는 "그 안에서 균형을 갖추며 살아가는 것, 어렵지만 기자란 가치를 포기하지만 않는다면 언젠간 좋은 기사를 쓸 때가 온다"라고 말했습니다. 괴롭더라도 포기하진 말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게 쉽지 않습니다. 독자들은 그런 기자들에게 '영혼이 없다'며 '기레기'라 부릅니다.

"그냥 더 열심히 하라는 것이죠?"

언론은 사양산업이 됐습니다. 인턴이 아닌 정직원으로 채용된 저의 첫 직장은 매일경제였습니다. 메이저 언론사였지만 첫날부터 '이 회사가 내 월급을 언제까지 줄 수 있을까'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초봉은 대기업과 비교해도 최고 수준의 대우였습니다. 1년 가까운 수습기간을 빼면 말이죠.


하지만 미국에서 저널리즘을 공부할 때부터 무너지는 언론사를 많이 봤기에 걱정이 앞섰습니다. 당시 신입 기자들과 점심을 먹던 한 부장에게 이런 우려를 전달하니 "우린 한국사회의 한 시스템이다. 그래서 절대 망하지 않는다"는 말을 했습니다. 그때는 이해하지 못했는데 지금은 그 말뜻을 충분히 알 것 같습니다. 이제 제 생각을 말합니다. "부장님, 언론사는 충분히 망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 중에선 방송사보다 신문사가 더 어렵습니다. 요즘 누가 신문을 보나요. IT업계의 한 홍보이사는 신문 기자인 저에게 "신문 안 본 지 꽤 됐습니다"라고 당당히 말합니다. 저도 제 가족과 지인들에게 "신문 부 봐달라"는 말을 하지만 민망할 때가 많습니다. 저도 잘 안 읽으니까요.


그래서인지 언론사는 점점 더 기자에게 많은 요구를 합니다. "디지털 독자와 소통하라" "다른 기자와는 다른 시각으로 사건을 봐야 한다" "더 깊은 취재를 통해 차별성을 드러내라" 이런 상사의 주문에 한 선배가 "그냥 더 열심히 하라는 것"이라 정리해줬습니다. 젊은 기자들은 "월급이 똑같은데 요구사항이 많아지고 있다"고 푸념합니다. 언론사는 사람이 전부인 곳입니다. 모두 심각한 위기 신호일 수 있습니다.


또 다른 선배는 이런 말을 하기도 했습니다. "이 조직에 너무 헌신하지 말아라""다른 길도 고민을 해야 한다" 그래서 또 많은 기자들이 업계를 떠납니다. 업계를 떠나는 기자들은 대부분 꽤 괜찮은 기자인 경우가 많습니다. 이직은 능력인 세상입니다. 본받고 싶은 선배들이 회사를 떠날 때 후배 기자들은 남은 버팀목이 무너지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매일 선택에 놓인 기자들

첫 문단에서 언급한 세 종류의 기자(1. 떠나는 기자 2. 떠난 동료를 부러워하며 떠나려는 기자 3. 떠나고 싶진 않지만 고민이 많은 기자)중 전 아직 세 번째 부류에 속합니다. 기자란 직업이 정말 재밌고 글을 써서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때 보람찹니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들을 때면 "그래 바로 이런 거지"라며 짜릿할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저도 하루하루가 벅차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벅찬 하루를 견뎌내는 제 동료들을 볼 때면, 그리고 그 동료들 중 어떠한 선택의 기로에 놓인 사람들을 볼 때면 먹먹할 때가 있습니다. 그런 기자들의 삶을 기록하려 합니다. 그 과정 속에서 제가 품고 있는 질문에 대한 해답도 찾았으면 좋겠습니다.


기자는 이렇게 살아갑니다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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