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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태인 Jul 20. 2019

기자가 관계를 만들어가는 방법

#기자는 이렇게 살고 또 취재합니다

박태인 기자입니다. 이젠 기레기라는 용어가 더 익숙한 기자라는 업(業)을 맡고 있습니다. 기자들이 어떻게 살고 또 어떻게 취재하는지, 이들의 애환은 무엇이며 어떤 고민과 부딪치는지를 기록하려 합니다. 매일, 매 순간 선택에 놓인 저희들의 삶을 연재해보려 합니다. parktaeinn@gmail.com
수직적 관계와 수평적 관계 중 무엇이 더 나은 관계맺기의 방식일까. @productschool

"태인아, 선배라고 불러야지 그렇게 하면 취재가 되겠어?"


한때 국회를 출입(취재)하며 가장 어색했던 것이 호칭의 문제였습니다. 먼저 국회를 출입한 기자들은 통화를 한 할 때마다 '선배'라는 호칭을 수차례 사용했습니다. 상대방은 국회의원이거나 의원의 보좌관, 혹은 정당의 당직자이기도 했습니다.


왜 선배라 부를까. 그 기자랑 의원은 같은 회사를 다니거나 학교 동문도 아니고 동향도 아닌데 말입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는 초년생 기자유독 선배라는 호칭에 거부감을 갖고 있었습니다. (기자 선배는 선배라 부르면서 말이죠)


공군에서 장교 생활을 할 때도 상사에게 김 대위님, 이 대위님 이렇게 꼬박꼬박 직함을 불렀더니 한 대위가 "야 왜 너 나한테 선배라고 안부르냐, 나랑 거리 두는거냐?"라고 섭섭함을 표하기도 했습니다. 기자와 취재원은 적당한 거리가 필요하고 그 시작은 호칭에서부터라는 초년생 기자의 자존심이라고 할까요. 전 꿋꿋이 취재원에게 의원님, 보좌관님이라고 불렀습니다. (사실 많은 기자들이 이렇게 하기도 합니다)


한 국회의원의 따끔한(?) 조언

지난해 여당 의원과 저녁자리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기자들이 의원에게 "선배 왜 그랬어~""잘 좀 하지 그랬어~"라며 술잔이 오갔죠. 그때도 저 혼자 "의원님, 의원님"했는데 자리가 파할 때 의원이 저에게 다가와 이렇게 말하더군요. "태인아, 선배라 불러야지. 면 국회 취재를 제대로 못한다" 바로 호칭의 문제를 언급 것입니다.


당황했습니다. 제대로 반박하지도 못했습니다. 그 의원의 처럼 '선배'라는 호칭은 사람간의 벽을 허무는 묘한 힘 같은 것이 존재합니다. 확실히 저보다 그 의원은 다른 기자들을 더 편하게 생각했습니다. 먼 대단한 신념이냐며 전 그후로 가까운 취재원에겐 가끔 선배라는 호칭을 사용합니다.


다만 어떤 취재원들은 자신을 '선배'라고 부르는 기자에게 "왜 제가 00기자님 선배죠?"라고 황당하다는 듯 따져묻기도 합니다. 거기에 기자들도 당황하고 "인생 선배셔서요"라고 답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중앙일보 인물정보. 공직자와 주요 기업인 관련 정보를 찾는데 매우 유용하다. 박태인

기자는 관계맺기의 직업

기자는 관계맺기의 직업입니다. 관계가 기자의 모든 것을 설명합니다. 이른바 '에이스' 기자판별하는 척도 역시 취재원과의 관계 밀도입니다.


삼성전자를 출입하는데 이재용 부회장과 통화가 된다거나(통화가 되는 기자가 있습니다) 민주당을 출입하는데 이인영 원내대표가 내 전화는 항상 받는다거나  검찰을 출입하는데 윤석열 검찰총장이 내가 물어본 것에는 대답을 해준다면 '에이스' 기자입니다. (업계 전문 용어로 고공플레이라고 합니다)


전 현재 검찰을 출입합니다. 한 부장검사와 술 자리를 가졌을 때 일입니다. 제 앞에서 특정 사건을 두고 그 부장검사에게 10여명의 기자가 전화를 한 적이 있습니다. 기자에 따라 부장검사가 대답하는 시간과 방식이 모두 달랐습니다. 자기와 가까운 '에이스 기자'에겐 더 자세히 그리고 반말로 말해줬습니다. 요점만 찍어서 말이죠.


아직 강력한 연줄의 힘 '수직적 관계'

예전과 달라졌다지만 아직 한국 사회에선 연줄의 힘이 작동합니다. 전 이것을 '수직적 관계'라 부릅니다. 기자와 취재원 사이의 고향과 출신 학교가 중요한 역할을 할 때가 있습니다. 학교를 따질 때는 예상외로 대학교보다 고등학교가 더 중요합니다. 대학에 비해 숫자가 적고 더 특별하다고 할까요.


현 정부에서 잘 풀리지 않았던 서울대 출신 고위 외교관은 저에게 "대학교 동문이 고등학교 동문만큼 끈끈하지 않더라"며 물먹은 아쉬움을 표했습니다. 실제 기자와 취재원이 같은 고등학교나 대학교를 나왔다면 '선배'라는 호칭은 상당한 효력을 갖습니다. 평생 얼굴 한번 본 적 없지만 어찌됐건 인생 선배가 아닌 진짜 선배님이니까요.


어떤 취재원은 그럴경우 친근감을 표시하며 바로 반말을 하고 속내를 터놓습니다. 같은 동문인 것만으로 신뢰가 생기는 것이죠. 저는 최근 자사고에서 탈락한 서울의 사립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드물지만 같은 학교 출신 법조인에게 '동문'이라 연락하니 콜백이 바로 왔습니다. "아, 우리 후배님인데 대답은 해드려야지요"


취재원이 내 전화를 받는 것, 다른 기자보다 내 전화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기자에게 경쟁력입니다.  고향도 있군요. 전 서울에서 태어나 고향이 큰 쓸모가 없습니다. 한번 어떤 국회의원에게 부모님의 고향인 문경을 말했더니 "아 그 박00네 집안 손자구나"라며 어찌나 따뜻히 대해주던지요. 


지금은 구속된 사업가 윤중천씨라고 아시나요.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에게 별장 성접대를 한 의혹을 받는 이분은 해병대 출신입니다.


윤중천씨가 검찰 조사를 받을 때 많은 언론사에서 해병대 출신 기자를 투입했습니다. "선배님, 저 해병대 000기입니다"라고 말하는 기자가 "윤중천씨, 저 000기자입니다"라고 말하는 기자보다 낫기 때문입니다. 아직까지 기자들은 이런 전통적인 '연줄'과 수직적 방식을 통해 관계를 만들어갑니다.


수직적 관계와 조금 다른 수평적 관계

저는 기자치고 이런 '연줄'이 부족한 편입니다. 고등학교도 역사가 짧은 곳을 나왔고 대학교는 미국에서 졸업했습니다. 고향도 서울이라 특수성이 없습니다. 전통적 관계의 관점에서 내세울 것이 거의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수평적 관계'에 집중 왔습니다.  '지인(acquaintance) 네트워크'라고도 부릅니다. 공통된 관심사를 갖고 특정 사회 이슈에 공감하는 사람들과 느슨한 연대를 형성하는 것입니다. (사실 또 많은 기자들이 이런 방식으로 관계를 형성합니다)

소셜미디어를 통해 맺는 수평적 관계 @Nordwood Themes

페이스북과 트위터 등 소셜 미디어를 통해 제가 공감하거나 배울점이 있고 흥미로운 배경을 가진 사람을 찾아가 교류하고 필요하다면 연락처를 묻고 전화를 합니다. 직접 만나 식사를 하며 관계를 넓혀갈 때도 있습니다.


가끔 그 사람과 제가 속한 언론사 기자들간의 식사가 잡힐 때도 있습니다. 그럴때면 전통적 관계에 일가견이 있는 선배 기자가 "태인아 이 자리는 도대체 어떻게 잡은거야"라고 묻기도 합니다. 그 사람과 저는 공통된 연줄이 아무것도 없기 때문에 신기해하는 것이죠.


이렇게 만난 사람은 만난 시간에 비해 훨씬 더 빠르고 쉽게 가까워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말이 통하고 사적 인연이 없어 기자와 취재원의 관계가 깔끔합니다.


선후배 사이의 프로토콜이랄까요. 공과 사가 뒤섞이며 뭔가 애매해지는 순간도 거의 없습니다.  물론 '선배'란 호칭도 필요 없구요. 전 이렇게 알아간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맺고 나름 의미있는 기사들을 써왔습니다.


기자라서 가능한 관계라는 지적에 대해

이런 '수평적 관계'는 제가 기자이기에 가능하다고 실 수도 있습니다. 중앙일보라는 메이저 언론사의 기자라서 사람들이 만나준다는 것이지요. 일리있는 말입니다.


최근엔 이런 '수평적 관계 형성'을 일종의 상품으로 내놓은 스타트업도 있습니다. 독서모임을 통해 네트워크 제공하는 '트레바리'나 콘텐츠와 오프라인 모임을 함께 판매했던 '퍼블리'라는 곳이 있습니다. 확실히 기자라는 직업은 관계 형성에서 다른 직업에 비해 우위가 있습니다. 두 스타트업 모두 훌륭한 회사지만 기자 입장에서 네트워크 형성 상품은 큰 매력이 되지 못합니다.

독서 네트워크 스타트업 트레바리 로고. 트레바리

하지만 개인적 경험으론 꼭 기자라는 직함이 수평적 관계를 가능하게 한다고 생각않습니다. 전 대학생 때부터 소셜미디어를 활용해 다양한 사람을 만나왔습니다. 주로 트위터란 매체를 활용했는데 대학생 때부터 트위터에 제 생각좋은 내외신 기사를 공유하고 외신을 번역하며 많은 사람들과 교류했고 오프라인 만남도 가졌습니다.


대학생 때 보스턴에서 하버드대 대학생과 커피를 마셨고 (이분이 현재 퍼블리의 박소령 CEO입니다) 역시 하버드를 졸업해 건축 스타트업을 했던 분(현재 한국 유명 대학의 교수로 임용되셨습니다)과 식사를 하기도 했습니다. 네덜란드에서 건축학을 전공하던 대학원생도시를 둘러봤고 런던에선 금융업에 종사하는 컨설턴트를 만나기도 했습니다.


모두 온라인에서 저와 교류했던 분이었습니다. 당시 SNS로 교류했던 한 언론사의 선배는 지금 저와 가장 가까운 기자이자 존경하는 선배가 되었습니다. 돌이켜보면 대학생인 저에게 시간을 내주신 것감사할 따름이지만 기자란 직함 없이도 '수평적 관계'의 힘은 작동했습니다.


제 직업보단 저의 적극성과 트위터 등을 통해 드러냈던 제 생각에 공감을 해준 분이었습니다. 전 비교적 어린 나이에 이런 수평적 관계의 힘을 느꼈습니다. 제가 다른 사람과 공유할 저만의 콘텐츠가 있다면 연줄에 의존하지 않은 관계를 만들어갈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이 과정에서도 '축적의 시간'은 필요했습니다. 제가 트위터를 시작하고 이런 '느슨한 연대의 네트워크'가 생겼던 시점은 트위터를 시작한지  2년쯤 지나 팔로워가 5000명을 넘어설 때였으니까요. 물론 기자라는 직업이 갖고있는 사회적 지위를 무시하자는 것도 아닙니다. 솔직히 제가 기자라 한번 만나주는 취재원들도 정말 많습니다.


나라는 콘텐츠와 성실함, 그리고 관계의 지속성

위에서 언급한 관계맺기의 방식은 사실 시작에 불과합니다. 기자가 유명한 고등학교와 대학을 나왔거나, SNS에서 팔로가 많더라도 취재원과의 관계를 이어갈 성실함과 지속성이 없다면 관계를 지속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연줄이 없더라도 매일 취재원을 만나 대화하며 통화하는 기자가 연줄만 갖고있는 기자보다 훨씬 더 강력한 네트워크를 형성할 수 있습니다. 또한 지인들과 느슨한 네트워크가 지속가능하려면 자신만의 콘텐츠를 갖고 있어야 합니다. 내가 공유할 생각과 지식이 필요하다는 것이죠.


그럴려면 기자 공부를 해야합니다. 나만의 시각과 인사이트를 상대방에게 전하지 못한다면 그 관계는 지속가능하지 않습니다. 또한 관계를 맺어가는 수직적이고 수평적인 방식 중에 무엇이 우월하다고 단정하기도 어렵습니다. 연줄을 통한 수직적 관계의 중요성을 한국 사회에서 부정할 수도 없구요. 그래서 저도 취재원의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찾고, 고향이 문경(아버지의 고향)이나 부산(어머니의 고향)인지 확인합니다.


다만 전 두가지의 관계 중 하나를 골라야 한다면 수평적 관계를 택하고 싶습니다. 이렇게 맺어진 사람과의 관계는 조금 더 행복하다고 할까요. 매일 다양한 취재원과 전화를 하고 식사를 하지만 이 수평적 관계에선 제가 보다 저 다울 수 있어서 좋을 때가 많습니다. 많은 경우 이분들은 제 직업보다 제가 가진 생각에 관심을 갖기 때문입니다.


기자라는 직함을 떼낸 뒤에도 이분들이 저를 만나줄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 가능성 수직적 관계보다는 수평적 관계가 더 높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기자는 이렇게 살아갑니다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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