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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태인 Jul 26. 2019

기자가 취재를 하는 방법

#기자는 이렇게 살고 또 취재합니다

박태인 기자입니다. 이젠 기레기라는 용어가 더 익숙한 기자라는 업(業)을 맡고 있습니다. 기자들이 어떻게 살고 또 어떻게 취재하는지, 이들의 애환은 무엇이며 어떤 고민과 부딪치는지를 기록하려 합니다. 매일, 매 순간 선택에 놓인 저희들의 삶을 연재해보려 합니다. parktaeinn@gmail.com
영화 1987의 한장면. 고 박종철씨의 아버지 고 박정기씨를 배우 김종수씨가 연기하고 있다.

"철아, 잘 가그래이" 아버지 박씨는 가슴속에서 쥐어짜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철아, 잘 가그래이. 이 아부지는 아무 할말이 없다이"


1987년 1월 17일자 동아일보 황렬헌 기자의 스케치 기사 '이 아부지는 할말이 없데이'의 일부분입니다. 여기서 철이는 당시 경찰 물고문으로 사망한 고(故) 박종철씨입니다.


 기자는 박 유골을 강물에 뿌린 아버지 박정기(2018년 7월 별세)씨의 모습을 홀로 목격해 특종을 썼습니다. 엄혹한 시절 용기를 내서 박정기씨를 끝까지 따라 것이죠. 당시 신문을 검열하던 문공부(현 문체부) 담당자도 이 기사에 울어버렸습니다. '아부지는 아무 할말이 없다이'라는 통곡은 6월 민주화항쟁의 도화선이 됐습니다.


기자가 취재를 하는 법에 대해 쓰기 앞서 이 기사를 언급한 것은 가장 전형적인 특종의 형태를 띄고 있 때문입니다. 기자가 현장에서 혼자 보고 혼자 쓴 기사. 취재와 관련해 가장 먼저 떠오른 사례입니다


그렇다면 다른 취재 기법은 또 어떤 것이 있을까요. 기자는 어떻게 취재를 하특종을 쓰는 것일까요.


째는 황렬헌 기자처럼 현장을 두 눈으로 목격하고 쓰는 것입니다. 그때도 지금도 기자의 가장 기본적인 취재 방식입니다. 하지만 생각보다 현장에 가는 기자많지 않습니다. 저 역시도 부끄럽지만 바쁘다는 핑계로 현장을 챙기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황수경 통계청장 이임식, 현장에 있던 기자는 1명

지난해 8월, 석연치 않은 이유로 교체된 황수경 전 통계청장 이임식 때 현장을 지 기자는 이데일리 최훈길 기자가 유일했습니다. 최훈길 기자는 이임식 내내 눈물을 흘렸던 황 전 청장을 만나 경질 이유를 물었고 황 전 청장에게 "제가 (청와대 등 윗선의) 말을 잘 들었던 편은 아니었다"는 예상치 못한 답을 들었습니다.


이 발언이 기사화 되며 통계청장 교체 논란이 불거졌고 최 기자는 이달의기자상을 받았습니다. 당시 황 전 청장에 대한 기사 쏟아졌지만 이임식 현장에는 단 한명의 기자만 있었던 것입니다.


취재의 두번째 방법은 사람을 만나 정보를 얻고 기사를 쓰는 것입니다. 세번째는 논문 등 자료를 통해서 특종을 하는 것이죠. 하나씩 설명드리기 전 말씀드릴 것이 있습니다. 취재와 기사를 쓰는  연속된 과정이지만 엄연히 다른 영역에 속한다는 사실입니다.


취재를 잘하면서 기사를 못쓰는 기자가 있고, 기사는 잘쓰면서 취재를 못하는 기자가 있다는 뜻입니다. 한 고참급 선배 기자는 "둘 다 잘하는 기자를 찾기가 생각보다 정말 어렵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취재를 하는 법과 기사를 쓰는 법은 구분해 연재할 계획입니다.

 

사람은 모두 말하고 싶은 욕망이 있다

정보는 사람한테서 나옵니다. 불변의 법칙입니다. 기자들은 사람을 만납니다. 정말 많이 만납니다.


저는 검찰과 법원을 취재하고 있습니다. 매일 검사, 판사, 변호사를 만나려 노력합니다. 같이 밥도 먹고 술도 마십니다. 어떨 땐 피의자나 피해자도 만납니다.


꼭 만나야 하는 사람인데 만나주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땐 취재원의 사무실이나 집 앞에서 기다립니다. 답해주지 않으면 그 다음날도 기다리고 그 다다음날도 기다려 물어봅니다. 이를 업계 용어로 '뻗치기'라 합니다.


이런 행위는 취재원에게 큰 불편함을 안겨주는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기다리던 타사 기자에게 취재원이 말 한마디 해주면 큰 낙종이라 기다릴 수밖에 없습니다.


어떤 변호사는 "검사 시절 매일 우리 집 앞에서 기다리던 기자에게 마음의 빚이 생겨, 그 기자의 결혼식에 가기도 했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사람을 만나다보면 기사거리가 생깁니다. 제가 만난 사람이 여권 핵심 인사와 가깝다면  특종이 나올 때도 있습니다. 제가 듣지 못 이야기를 대신 듣고 해주는 경우도 있습니다. 왜 말해주냐구요?


한 선배 기자가 후배들에게 자주해말이 있습니다. "모든 사람은 말하고 싶은 욕망이 있다" 사람은 남이 모르는 것을 먼저 알 때 말하고 싶은 욕망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인간의 본능 때문에 기자란 직업이 지금까지 존속할 수 있는지도 모릅니다.


밥맛을 느끼지 못하는 취재원과의 식사

하지만 매일 새로운 사람을 만나 얘기를 하는 것은 정말 힘든 일입니다. 취재원과 밥을 먹다보면 어색하거나 긴장해서 음식 맛을 느끼지 못할 때 많습니다.


한번은 취재원과 함께 갔던 평양냉면집을 다시 아내와 찾았는데 저도 모르게 혼잣말로 "아, 이게 이렇게 맛있는 냉면이었구나"라고  이 있습니다.

취재원과 식사 후 아내와 다시 찾았던 교대역 평양냉면집 설눈.

게다가 기자가 만나는 취재원은 대부분 자보다 나이가 많습니다. 편집국장 정도는 되야 나이가 비슷해집니다. 아직 30대 초반인 저는 주로 40~50대 취재원과 만나 식사를 합니다.


제 또래 취재원들, 예를 들어 주무관이나 사무관, 평검사, 평판사의 경우 언론과 접촉이 금지된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선배 기자들은 동년배 취재원을 사겨두라고 말합니다. 그래야 함께 성장하고 차장, 부장이 되어도 그 취재원이 현직에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젊은 기자가 자신이 취재하는 분야에 이미 일성을 이룬 전문가를 만나 현안 대해 1-2시간 대화를 이어가는 것은 정말 만만치 않습니다.


번은 전직 장관과 저녁 자리가 운좋게 잡혔던 적이 있습니다. 함께 왔던 선배 기자가 급한 일이 있다며 먼저 떠나버 적이 있습니다. 한시간 반동안 아버지뻘인 장관과 일대일로 대화를 나눴습니다. 어찌나 식은땀이 나던지요.


웃고 떠들다 불편한 질문을 해야할 때

취재원과의 자리가 힘든 다른 이유는 기자는 밥을 먹으면서도 취재를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기자는 저녁 자리에서 웃고 떠들며 술만 마실 수 없습니다. 항상 그런 것은 아닙니다만 보통 기자가 특정 취재원을 만날 때는 궁금한 것이 있 경우가 많습니다.


A사건을 담당하는 검사나 변호사를 만난다면 A사건이 궁금하기 때문이고 B사건을 판결했던 판사를 만난다면 판결의 배경이 궁금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외교부와 국방부, 국회, 총리실, 검찰과 법원 등을 취재했습니다. 기자가 대미 외교를 담당하는 외교관을 만난다면 한미간의 현안을 물어봐야 하고 총리실 관계자를 만난다면 이낙연 총리의 생각을 캐내야 합니다. 그래서 잘 나가는 취재원일수록 식사 약속이나 티타임을 잡기가 어렵습니다. 저 말고도 보자는 사람이 많기 때문입니다.


질문을 못하고 집에 들어가면 후회가 된다

취재원에게 준비한 질문을 하기 직전 입에서 질문이 안 떨어질 때도 많습니다.


"아이고 우리 박기자~"라고 저를 좋아해주며 기분 좋게 술에 취한 취재원에게 곤란할 질문을 할 때면 곤혹스럽습니다. 갑자기 공사가 확 분리되는 것이죠.


실제 질문을 안 한적도 있는데 집에 가면 후회가 됐습니다. 그래서 저는 매번 식사자리에서 "이게 내가 해야 할 일이다""내 독자들의 알권리를 위한 것이다"는 극적인 자기 합리화를 하며 질문을 던집니다. (제가 궁금해서 그럴 때가 많은데 말이죠)


그렇게 물으면 예민한 질문에 취재원얼버부릴 때가 많습니다. 그럴때는 "맞죠, 그거 맞죠?"라고 묻고 또 묻습니다. 고개를 끄덕면 맞다는 뜻입니다. 그렇게 확인해 제법 큰 특종을 썼던 경험이 있습니다.


그렇다고 기자가 항상 궁금한 것이 있는 취재원과 만나는 것 아닙니다. 나와 비슷한 가치관과 생각을 가진 취재원을  만날 때도 있습니다. 가 기자기 때문에 만 수 있는 분들이지만 이런 분들과 '동료'가 되는 경우있습니다.


이런 자리는 다른 자리에 비해 훨씬 더 즐겁습니다. 음식 맛도 느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기자 생활을 하며 이런 동료들 마주치긴 쉽지 않습니다. 모든 직장에서 마음맞는 동료 만나는 것이 어렵듯이 말이죠.


점심 시간 전후로 모든 취재원에게 전화했던 기자

취재의 또다른 방식은 전화와 문자하기입니다. "기자가 전화하는 게 당연하지 그게 머 기법이냐?"고 말씀하시는 분도 계실 겁니다.


하지만 특종을 많이는 어떤 기자는 점심 시간 전후로 매일 자신이 아는 모든 취재원에게  전화를 돌린다고 합니다. 안부를 묻거나 현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눕니다. 그러다보면 "어, A기자 근데 그거 들었어?"라고 말 해주는 취재원이 나온다는 거죠. 


저는 수습 기자일 때 '매일 10에게 전화하기'를 목표로 삼았습니다. 그렇게 전화를 마치면 그중 1~2분이 흥미로운 기사거리나 아이디어를 던져줬습니다.


문자도 마찬가지입니다. 가끔이라도 안부를 전하며 취재원과 현안에 대이야기를 나누는 정성이 필요할 때가 많습니다.


자료도 사람한테서 나온다

최근에는 사람과의 만남보다 자료와 논문, 책 등을 통해 기사를 쓰는 경향도 늘어나고 있습니다. 국회의원을 통해 그 의원이 담당하는 부처의 고급 자료를 받아 기사를 쓰는 경우도 있습니다.


다만 어떤 자료를 찾아야 할지는 역시 취재원에게 받은 아이디어에서 출발할 때가 많습니다. "박 기자, 최근 소년원에서 정신질환을 앓는 환자들이 많다는 데 치료가 제대로 되지 않는다고 하더라"는 말을 듣는다면 법무부를 담당하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의원에게 소년원 관련 자료를 요청 수 있습니다.


물론 뉴스타파 등 탐사보도 매체에선 기사가 직접 발굴한 방대한 자료를 엑셀로 정리해 '데이터 저널리즘'을 선보이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래도 제일 중요한 것은 '신뢰'

매일 취재원과 밥을 먹고 전화를 걸고 문자를 보낸다고 해서 취재를 잘하는 것은 아닙니다. 사실 이보다 중요한 것은 그 과정에서 쌓여가는 취재원과 신뢰입니다. 동료의식이 생긴다면 더 좋습니다.


취재원이 기자를 만나 "이 기자는 믿을만한 사람이다""더 나은 세상을 위해 나에게 (곤란한) 질문을 하는 사람이다""이 기자에게 나도 배워가는 것이 있다""참 열심히 하는 기자구나"라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면 절대 정보를 주지 않습니다.


기자가 취재원에게 매력적인 사람으로 느껴지지 않는다면 전화와 문자, 식사는 사실 큰 의미가 없습니다. 여기서 매력은 기자의 진정성, 성실성, 현안에 대한 이해, 취재원의 견해에 대한 이해, 취재원을 보호하는 자세, 말을 듣는 자세와 취재 후 집필 능력 등입니다.


그렇게 신뢰가 쌓인 취재원과는 평생 친구처럼 지내는 기자도 있습니다. 기자들은 기존 친구와는 멀어지고 취재원들과 우정을 쌓아가는 경우비일비재합니다. 일과 삶이 하나로 합쳐지는 것이죠. 그래서 어떤 선배 기자는 "기자란 직업은 삶에서 일의 비중이 매우 높아 일 안에서 행복을 찾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사실 이렇게 쓰다보니 기자가 취재를 하는 방법과 다른 직군의 직장인 관계를 만들어가는 방법간의 차이가 없 보이기도 합니다.

 

기자뿐만 아니라 사실 대부분의 직장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 정보일 때가 많고 그 정보는 관계에서 오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관계를 지속하는 힘은 취재와 마찬가지로 사람간의 쌓여진 '신뢰'에서 옵니다.


그래서 기자가 취재를 하는 법 다른 직업군에 적용할 수 있는 일종의 일반론이란 생각도 듭니다.


기자는 이렇게 살아갑니다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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