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일상은 매일 타석에 서는 타자의 느낌과 비슷할까. Photo by Daiji Umemoto on Unsplash
기자는 하루에도 수십번을 판단해야 하는 직업입니다. 사건이 터지면, 최소 몇분에서 몇십분 내에 사건의 중요도와 독자에 미칠 영향, 사건 관계자들의 역학관계와 잘못 여부를 따져야 합니다. 하루에 한 기자가 쓸 최대 기사량은 2~3개 정도. (사실 1개도 많습니다) 그래서 무엇을 어떻게 써야하는지가 정말 중요합니다. 언론사에 평기자와, 차장, 부장(데스크), 국장의 위계 관계가 존재하는 것도 모두 이 판단의 중요성 때문입니다. 경륜이 부족하거나 현장에 몰입된 기자는 사건의 중요도를 객관적으로 판단하기가 어렵습니다. 데스크의 판단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하지만 저처럼 5년차 기자 (과거보다 언론사의 인적 구성이 얇아져 판단 주체의 연차가 많이 내려왔습니다) 정도가 되면 현장에서 스스로 판단하고 책임을 져야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디지털 저널리즘' 시대가 도래하면서 기자들은 분초를 다투고 있습니다. 데스크의 영향력이 줄어들고 현장 기자의 판단이 중요시되고 있습니다. 기자 생활 중 가장 큰 어려움과 보람을 느끼는 것도 이 '판단'의 영역입니다. 야구에 비교하자면 매일 타석에 서는 느낌입니다.
매일 엇갈리는 기자들의 판단
전 중앙일보 법원팀 반장을 맡고 있습니다. 매일 법원 관련 기사에 판단을 합니다. 동료들과 상의를 하고, 동료들에게 제 판단을 전달하며, 상사에게 제 판단을 보고합니다. 가장 최근 사례로는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일가 1심 판결이 있었습니다. 조 전 장관의 5촌 조카 조범동씨와 조 전 장관의 동생 조권씨 판결 결과에 제 나름의 판단을 하고 기사를 썼습니다.
조범동과 조권씨 모두 실형을 받았지만 검찰이 웃지는 못했다는 관점의 기사를 썼습니다. 조 전 장관과 정경심 교수, 그리고 조국 일가의 도덕성을 타격한 검찰의 상당수 기소 혐의에서 무죄가 나왔기 때문입니다. (물론 무죄가 나왔다고 결백하다는 뜻은 아니며, 항소심에서 뒤집힐 가능성도 있습니다) 제 시각과 비슷한 시각으로 기사를 쓴 언론사도, 혹은 법원이 조국 일가를 봐주는 '황당한 판결'을 했다는 다른 관점의 기사도 있었습니다. 같은 사안을 두고 이렇게 '엇갈리는 판단'을 한 경우엔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후회는 없지만 제가 틀렸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경우엔 제가 잘못된 판단을 하거나, 아예 판단을 못한 경우도 있습니다. 최근 노정희 대법관이 중앙선관위원장으로 지명됐을 때의 일입니다. 저는 노 대법관이 여성 최초 '중앙선관위원장'이란 점에 주목했습니다. 그가 우리법연구회 출신이란 부분엔 큰 비중을 두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제가 놓친 부분이 있었습니다. 대한민국 5부 요인(국회의장, 국무총리, 대법원장, 헌법재판소장, 중앙선관위원장) 중 대법원장과 헌법재판소장에 이어 중앙선관위원장까지 우리법연구회 출신 판사가 맡게 된 팩트입니다. 이 자체도 큰 의미가 없는데 보수 언론이 일종의 '우리법 프레임'을 씌운다는 시각이 있습니다. 우리법연구회 소속이었던 한 판사 출신 변호사는 "우리법은 기사에서 정말 그만 언급해달라"고 간곡히 부탁할 정도입니다.
아예 놓쳐버린 판단
하지만 전 이 5부 요인과 관련한 사실 자체를 아예 알지 못했고, 기사 판단을 할 때 놓쳐버렸습니다. 제가 이 점을 알고도 기사를 쓰지 않았으면 후회가 없을 텐데, 놓친 것이라 아쉬웠습니다. 이처럼 현장에서 판단을 못했을 땐, 데스크나 선배들이 조금 더 구체적으로 짚어줬으면 어떨가 싶을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매일 기자들이 2~3개의 기사를 쓰는 현실에선 핑계일 수밖에 없습니다. 데스크도 하루에 수십건의 기사를 체크하고, 데스킹합니다. 현장에서 기자들이 놓치면, 데스크도 놓친다고 봐야합니다. 전 "상부가 알아서 판단을 하겠지"란 말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최소 제가 한 판단이 지적을 통해 수정될지라도 먼저 판단을 하는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아예 판단조차 못했을 때, 저는 일종의 삼진을 당했다고 생각합니다.
반면, 다른 사람은 하지 못한 판단을 했을 때, 혹은 다른 사람은 쓰지 못한 중요한 기사를 썼을 때는 큰 보람이 있습니다. 안타를 치는 기분입니다. 지난주 인천지법에선 부천시 기독교단체의 집회를 허용하며 6가지 방역조건을 제시했습니다. 부천시장이 답답하다며 페이스북에 올린 내용이었는데, 한 판사님이 '정말 의미있는 결정문'이라고 공유를 했습니다. 실제 내용을 확인해보고, 부천시장에게도 전화를 해봤습니다. 코로나19시대 집회의 뉴노멀이 될 수 있는 결정문이었습니다. 표현의 자유를 중시해 집회를 허가했지만, 방역 조건을 엄격히 제시했기 때문입니다. 전 그 부분에 초점을 맞춰 기사를 썼고 타사들은 제 기사에 공감하며 추종보도를 했습니다. 제 판단이 꽤 괜찮았던 것입니다.
현장에서 매일 취재를 할텐데 기사 판단하는게 머 그리 어렵냐고 하실지도 모르시겠습니다. "중앙일보에 다니니 어차피 판단은 정해진 것 아니냐?"고 비아냥거리는 분들도 많습니다. 하지만 실제 현장에선 기자들의 판단이 가장 중요합니다. 기자들은 오래 출입처에 있다보니 자신이 전문가라 생각해, 일반 독자에게 중요한 기사를 놓치는 경우도 많습니다. 전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하루가 지나고 보니 정말 중요한 뉴스인 경우도 있었습니다. 밤늦게 취재를 하고 기사를 쓰다보면 체력이 부족해 잘못된 판단을 할 때도 있습니다. 전 그럴 때마다 데스크나 후배, 팀원들에게 가능하면 "죄송하다, 제 판단이 틀렸었다"는 사과를 남깁니다. 그리고 그때의 교훈을 가능하면 적어두고 반복하려 하지 않으려 합니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내 기사를 공유할 땐 기분이 묘한편. [조국 페이스북 캡처]
"죄송하다, 제 판단이 틀렸다"
누군가 조언을 해줬을 때 쉽게 배척하지 않고, 제 편견을 드러내지 않으려 매일 조금씩 더 조심합니다. 그렇게 하다보면 다른 사람보다, 혹은 제 비슷한 연차의 기자들보다 더 나은 판단을 하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비교적 낮은 연차에 아주 작은 팀(중앙일보 법원팀은 3명입니다)을 이끄는 경험도 정말 소중합니다. 매일, 그날 어떤 기사가 중요한지, 또 어떤 기사를 써야하는지 제가 직접 팀원들에게 분배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때도 많이 틀리고, 또 판단을 수정합니다). 저의 판단이 맞았다는 신뢰를 팀원에게 줄수록, 제 요청 사항에 대한 호응도와 적극성이 올라갑니다. 제 판단이 정확해야 팀원들이 불필요한 일을 하는 경우도 줄어듭니다.
20년 가까이 기자로 생활하다 한 회사에 임원으로 간 선배도 이 '판단의 경험'이 임원 생활에 있어 가장 큰 도움이 된다고 했습니다. 기자가 다른 직종으로 이직을 한다고 할 때, 전 기자가 강점을 발휘할 수 있는 역량이 여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평사원이 매일 수십번씩 판단을 하고 책임을 지는 경우는 흔치 않기 때문입니다.
가끔은 저의 잘못된 판단을 자책하며 후회하거나 스트레스를 받을 때도 있습니다. 그래도 과거보단 좀 나아진 편입니다. 그런 스트레스를 줄이려 매일 출근할 때마다 타석에 선다고 생각합니다. 항상 안타를 칠 수 없는 타자들에 공감하며 제 판단의 날을 예민하게 세우려 노력합니다. 오늘 기사가 괜찮았다면 안타를 쳤다고, 또 별로라면 삼진을 당할 수도 있다고 스스로를 다독입니다. 기자는 특종이라는 홈런을 쳐야한다는 분들도 많습니다. 하지만 전 매일매일 조금씩 더 나은 판단을 하는, 꾸준히 안타를 치는 기자가 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