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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태인 Feb 20. 2021

판검사를 만나다가, 다시 현장에 돌아왔을 때

기동이슈팀 취재 후기

아동학대 피해자 어머니들이 서로를 토닥이는 장면. 기동이슈팀 취재를 하며 보람이 느껴지던 순간이다. 박태인 기자.

작년엔 중앙일보 법조팀, 올해는 JTBC 기동이슈팀에서 기자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법조팀은 서초동에 머물며 판검사, 변호사를 취재합니다. 기동이슈팀은 서울과 경기권에서 벌어지는 사건,사고 등을 다룹니다. 기자 생활이 거기서 거기일 것 같지만, 저는 작년과 완전히 다른 일상을 보냅니다. 불과 몇개월 전만 해도 조국, 김경수, 김명수, 윤석열, 추미애 등 권력자를 취재했습니다. 올해는 현장 곳곳에서 아동학대와 산업재해로 억울함을 호소하는 시민들을 만나고 있습니다. 


만나는 사람도, 다루는 기사도, 평상시에 먹는 것도 달라졌습니다. 법조팀에선 점심과 저녁마다 취재원을 만나 와인을 마시거나 소맥을 말며 내밀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지금은 김밥이나 샌드위치로 배를 채우며 현장에 도착하기 바쁩니다. 작년엔 권력의 문제를 다뤘고, 올해는 현장의 이야기를 듣습니다. 무엇이 더 좋았느냐고 묻는다면 "날마다 다르다"는 답변이 정확할 것 같습니다. 사실 지금이 참 힘든데, 제 아내는 "신문에 있었을 때도 똑같이 힘들어했다"고 했습니다. 과거가 그리운 것은 미화됐기 때문이겠죠. 


목소리가 없는 사람들에게 목소리를 

대학교에서 언론학을 처음 접할 때 배우는 언론의 기본 원칙은 '목소리가 없는 사람들(voiceless)'에게 '목소리(voice)'가 되어줘야 한다는 것입니다. 언론은 소수자의 스피커란 것이죠. 하지만 기자 생활을 하면서 목소리가 없는 사람을 만나는 기간은 의외로 짧습니다. 지금 제가 있는 기동이슈팀이 주로 그런 역할을 합니다. 대부분 저연차 기자가 팀을 이룹니다. 기자 4~5년차만 돼도 각자의 출입처를 맡게되죠. 그리고 언론사에서 이른바 '에이스'로 불리는 기자들은 정치부나, 법조, 외교안보 등을 맡습니다. 


중앙일보 법조팀 소속 당시 썼던 기사 중 하나. [중앙일보 캡처]

과거에 제가 몸 담았던 매일경제신문 등 경제신문에선 '경제부'와 '산업부'에 에이스가 갑니다. 제가 매일경제신문을 떠날 때 저를 아끼던 선배가 "경제부에 보내주겠다"고 하셨을 정도입니다. 기자들도 사람인지라 몸이 힘든 '기동이슈팀'은 선호하지 않는 경향도 있습니다. 과거엔 "사건사고 기자가 진짜 기자다"는 말이 있었지만, 디지털 혁신 등이 가속화되며 영상과 기사를 찾아내는 감각이 더 중요해 졌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저도 기동이슈팀에 스스로 지원하진 않았습니다.


여기서부터 학교에서 배운 원칙과 언론 현실간에 충돌이 발생합니다. 언론사 내 에이스들이 가는 부서의 취재원들은 '목소리가 없는' 사람들은 아닙니다. 국회의원들은 서로 더 말하기 바쁘고, 판사나 검사 역시 막강한 권력자들입니다. 매 정부마다 권력을 견제하다 좌천을 당하는 판검사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좌천을 당해도 이들이 한국 사회의 최상위층입니다. 물론 권력자들의 '권력다툼'을 취재하고, 그 안에 은폐된 진실을 드러내는 것이 '목소리없는 사람들'을 대변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법조에 있을 때는 그런 마음으로 취재를 했었습니다.


저는 기자 초년생 때 다른 동기들과 달리 사건사고 취재를 못해봤습니다. 방공포병 공군 장교로 제대한 다음날 기자가 됐는데, 당시 방공포병이 다뤘던 '사드' 이슈가 터지며 외교안보팀에 파견을 갔기 때문입니다. 꽤 큰 특종들을 여러차례 했고 그후 2년간 외교안보팀에 머물렀습니다. 초년생 기자때부터 외교관과 외교안보를 다루는 교수님들이 저의 주요 취재원이었습니다. 이때도 와인을 마시고 저녁마다 소맥을 말았죠. 그후에 잠깐 사건사고를 취재했지만, 다시 법조팀으로 빠졌습니다. 사실상 올해가 기자 생활 중 현장 바닥에 있는 첫번째 경험이기도 합니다.


처음 언론학을 공부했을 땐 억울한 사람들, 목소리가 없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겠다는 것이 목표였습니다. 하지만 기자생활을 하며 실제 생활은 그렇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지금 현장에서 억울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들의 목소리를 대신 전해줄 때 짜릿한 감정이 밀려오기도 합니다. 인터뷰를 하다 눈물이 나기도, "그래 내가 하고 싶었던 것이 바로 이거야"란 생각도 듭니다. 하지만 5년차 밖에 안됐음에도 엉덩이가 무거워져 사건 현장을 다니는게 솔직히 버겁기도 합니다. 억울한 분들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마음이 힘들어지기도 합니다. 방송이 아닌 다시 글을 쓰고 싶은 마음도 밀려옵니다. 그렇게 매일 복잡한 마음을 다잡으며 현장으로 갑니다. 또 정신없이 하루가 흘러갑니다. 


기자는 이렇게 살아갑니다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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