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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태인 Dec 18. 2023

[시선2035] 그녀가 떠난 뒤에 남은 것들

#시선2035 

희극인 박지선씨가 떠난 여파는 크다. 마음이 아픈 분들의 동요가 눈에 띄게 늘어났다. 정신과 의사인 한양대 최준호 교수는 “박지선씨는 보통 사람이란 느낌을 준 드문 연예인이었다. 그래서 마음이 더 간다”고 했다. 나 역시도 지난해 8월 이후 멈춘 그의 트윗을 다시 읽곤 한다. 짧은 글 속에 담긴 재치에 내 입은 웃고 내 마음은 운다. 박지선이 없는 세상은 ‘대한민국-1’이다. 대체될 수 없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몇 년 전 소중한 사람의 극단적 선택을 경험한 나로서는, 그녀의 결정을 존중하기가 어렵다. 떠난 사람은 남은 사람이 견뎌야 할 상처의 크기를 헤아릴 수 없다. 세상을 등질만큼의 고통을 겪어봤냐고 물을지도 모르겠다. 난 그때마다, 이미 세상에 없는 그에게 돌아오지 않는 질문을 던진다. 너에겐 분명 더 나은 선택지가 있었다고. 너를 가장 오래 안 내가 그걸 말해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난 박지선씨에게도 더 나은 길이 있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정신과 의사였던 임세원 교수는 『죽고 싶은 사람은 없다』는 책을 썼다. 마음이 아픈 환자를 치료했던 그도 우울증을 앓았다. 이 책에는 극단적 선택을 시도했던 자신의 경험과 그 마음을 극복해가는 절절한 과정이 담겨있다. 조현병 환자의 흉기에 찔려 이젠 의사자(義死者)가 된 임 교수는 마음이 아픈 환자들의 편견과 차별을 깨고 싶었다. 그래서 숨기고 싶었던 자신의 속마음을 드러냈다.


임 교수는 진짜 죽음을 원하는 마음은 없다고 했다. 사람은 고통스러운 상황을 벗어날 도리가 없다고 느낄 때 극단적 선택을 시도하는 것일 뿐, 죽음 그 자체를 원하지 않는다고 했다.


임 교수가 제시하는 해법은 단순하다. 매일 일상에 충실하고, 식사를 거르지 않기. 충분히 휴식을 취하며 적절한 운동을 하기. 자신에게 친절하기. 친구와 전화로 수다를 떨기. 밤 9시 치킨을 배달시켜 손에 양념을 잔뜩 묻히며 먹기. 약속을 잡을 땐 신중히, 한번 잡으면 바꾸지 않기.


임 교수는 그렇게 좋은 기분을 느끼는 순간순간들이 모여 희망의 근거가 된다고 했다. 오늘을 충실히 살아갈 때 죽음의 그늘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박지선씨는 2012년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언제 가장 행복합니까”란 질문을 받자 “개콘 무대에서 빵 터트렸을 때는 좋아서 미쳐버릴 것 같다”고 말했다. 다른 사람을 웃게 할 때 가장 행복했던 그녀가 모두를 슬픔에 빠트리고 떠난 건 역설적이다. 박지선이 없는 세상은 슬퍼서 미쳐버릴 것만 같다. 그렇다고 울고만 있을 수는 없다. 매일의 삶 속에서 더 웃고 더 행복해지는 것이 박지선이 남긴 레거시다. 박지선은 평소 이런 주문을 외쳤다. “행복해져라!!!”“우리 힘내자구요!!!”


2020년 11월 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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