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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태인 Dec 18. 2023

[시선2035] 스타 스님과의 작별인사

#시선2035

사람들은 이중적이다. 하버드를 졸업한 혜민스님이 ‘중’답지 않아 좋아했던 이들이, 이젠 그가 중답지 않아서 싫다고 한다. 남산뷰 자택과 뉴욕 리버뷰 아파트 논란으로 지탄을 받은 혜민스님은 한 언론에 “삶을 크게 반성하고 중다운 삶을 살도록 노력하겠다”고 했다. 중답지 않은 모습, 우리가 생각하는 중의 모습과는 달라서 인기를 끌었던 혜민스님이다. 그가 ‘중다운 삶’을 살겠다는 건 이젠 우리가 아는 혜민스님과는 작별인사를 해야 한다는 뜻이다. 300만부를 팔아내는 괴력의 베스트셀러 저자였던 그는 이제 ‘라이언 봉석 주’라는 본명으로 불린다. 미합중국인인 혜민스님의 추락은, 병역 기피로 ‘승준 오빠’에서 ‘스티븐 유’가 된 옛 연예인의 모습과 비슷해 보인다.


혜민스님의 퇴장을 속 시원하다고 느낄 분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전 국민의 멘토에서 하루 만에 조롱거리가 된 그의 모습이 왜 이리 어색하고 씁쓸한지. 이른바 ‘풀 소유’ 뉴스가 나왔을 때부터, 하필 지금 혜민스님이 저격을 당하는 이유는 무엇인지(그의 남산뷰 자택은 4년 전 다큐에서도 소개됐다). 그의 앞에서 눈물을 흘리며 위로를 받은 수많은 사람은 뭐란 말인지. 그가 말한 중다운 삶이라는 건 또 무엇인지. 그런 질문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2010년 출간된 혜민스님의 첫번째 책『젊은 날의 깨달음』의 부제는 ‘하버드에서의 출가, 그 후 10년’이다. 부제에 하버드가 붙은 건 “하버드라는 세 글자를 좀 붙여서 책을 내게 해달라”는 출판사 직원의 간곡한 요청 때문이었다. 혜민스님은 프롤로그에서 “그런 출판사의 요청이 승려로서 너무 난처했다. 중요한 것은 하버드에서 공부한 것이 아니라 졸업 후 어떻게 사는 것”이라고 적었다. 하지만 출판사 직원의 직감은 정확했다. ‘하버드를 졸업한 스님’이란 타이틀은 그를 단박에 스타 승려로 만들었다.


혜민스님을 유력 인사로 만든 건 지금 그를 저격하는 사람들과 언론이었다. 하버드·프린스턴대를 졸업하고 미국에서 교수를 하던 그가 중이 됐으니 어찌 열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런 논란이 벌어진 뒤 혜민스님의 책과 그가 나온 다큐를 처음으로 챙겨봤다.


그때도 혜민스님은 남산뷰 자택에서 참선을 했고 아이폰과 맥북을 썼다. 전형적인 중과는 달랐다. 혜민스님은 지금도, 그때도 풀 소유였다. 속세를 떠나 중이 됐다지만 속세에 머물며 우리가 듣고 싶은 말을 해주는 것, 그것이 그에게 요구된 역할이었다. 우리 역시도 이런 사실을 알면서 모른 척했던 것 아닐까. 그가 바뀐 게 아니라 우리가 바뀐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중다운 삶을 살겠다”는 혜민스님의 작별인사는 역설적이다. 사람들은 중답지 않은 당신을 좋아했는데, 이젠 중답게 살겠다니. 우리 인연은 여기까지인가 보다. 굿바이 혜민스님. 굿바이 라이언 봉석 주.


2020년 12월 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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