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2035
“한 명의 서울대 구성원으로서 모욕감을 느낀다.”
최근 사의를 표명한 구민교 전 서울대 학생처장이 썼다가 지운 페이스북 글엔 이렇게 적혀있다. 구 전 처장은 지난달 숨진 채 발견된 서울대 청소노동자의 죽음에 ‘외부 세력’인 노조와 정치권, 언론이 개입하고 있다며 “한 명의 서울대 구성원으로서 모욕감을 느낀다”고 했다. 노조와 유가족은 고인이 서울대 건물 이름을 영어와 한자로 쓰라는 ‘갑질’에 시달렸다고 주장했다. 구 전 처장은 사실이 아니니 외부 세력은 빠지고 서울대의 공정한 조사를 기다리자고 했다.
언론은 구 전 처장이 사용한 ‘모욕감’과 같은 거친 단어에 집중했다. (그는 “산 사람들의 피해자 코스프레가 역겹다”고도 썼다). 하지만 내가 이질감을 느낀 단어는 ‘모욕감’이 아닌 ‘서울대 구성원’이란 표현이었다. 왜 구 전 처장은 서울대 구성원으로서 모욕감을 느꼈다고 쓴 것일까. 숨진 노동자도, 그리고 그 고인의 남편도 모두 서울대에서 청소를 해 온 서울대 구성원이다. 그와 같은 서울대 구성원인 고인의 남편 이 씨는 구 전 처장의 글이 오히려 고인을 모욕한다고 했다. 숨진 아내는 서울대의 불공정한 대우에 분노하고 동료를 위해 목소리를 내던 사람이었다며 말이다. 같은 서울대 구성원들이 서로 다른 모욕감을 느끼며 한 사람의 죽음을 바라보고 있었다.
구 전 처장이 말하는 모욕감은 무엇이었을까. 그는 처음으로 ‘갑질 주장’을 내놓은 민주노총 소속 서울대 노조를 ‘이분법과 흑백진영’을 던지는 외부 세력으로 규정한 뒤 “기울어진 진실의 운동장을 보고 한 명의 서울대 구성원으로 몹시 속이 상했다”고 재차 설명했다. 구 전 처장의 진심을 외면하는 것일지도 모르지만, 그의 주장에선 특권의식도 함께 느껴진다. 서울대란 ‘순수한 학문’의 공간에 들어온 노조에 대한 불쾌함. 서울대가 하는 조사는 믿고 기다릴 만큼 공정하다는 자신감. 서울대는 서울대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자정능력이 있다는 확신까지. 구 전 처장의 글이 논란을 일으킨 건 그가 사용한 거친 단어 때문만은 아니었을지 모른다.
구 전 처장은 노조가 개입하지 않았다면 서울대란 ‘공정한 운동장’에서 한 청소노동자 죽음의 진실이 명명백백히 밝혀졌을 것이라 생각하는 듯하다. 하지만 현장에서 마주한 한국 사회의 죽음들은 대부분 아무도 모르게 잊혀져왔다. 청와대 청원에 올라오는 한 서린 사연들은 외면과 망각의 두려움이 만들어낸 표상이다. 구 전 처장이 말하듯 ‘외부 세력’이 개입해 본질이 흐려진 사건도 있었을지 모른다. 그럼에도 외부의 견제 없이 스스로의 문제를 완벽히 해결하는 기관은 흔치 않다. 그가 구성원으로서의 모욕감을 느꼈다는 서울대도 예외일 수 없다.
2021년 7월 1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