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이 되면 거리는 이미 반짝인다. 빨간 모자를 쓴 산타 인형, 어디선가 은은하게 흐르는 캐럴, 그리고 곳곳에 세워진 거대한 크리스마스트리까지. 모두가 약속이라도 한 듯 "메리 크리스마스"를 외치는 계절이지만, 이상하게도 내 마음은 그 화려함을 따라가지 못하고 자꾸만 가라앉는다.
연말이라는 무게 때문일까. 한 해를 정리하다 보면 애써 덮어두었던 후회들이 먼지처럼 튀어나오고, 세상은 모두 앞으로 나아가는데 나만 제자리걸음인 것 같은 기분에 사로잡히곤 한다. 크리스마스가 가까워질수록 마음이 더 시리고 서글퍼지는 사람, 아마 나뿐만은 아닐 것이다.
그래서 올해는 조금 다른 방법을 써보기로 했다. 우울함을 억지로 밀어내지도, 모른 척하지도 않은 채 '크리스마스 준비'라는 아주 사소한 행위들로 이 계절을 통과해 보기로. 대단한 파티나 화려한 약속은 필요 없다. 혼자여도, 마음은 나름의 방식으로 따뜻해질 수 있으니까.
우선 집 안의 풍경을 아주 조금만 바꾼다. 비싼 트리는 아니더라도 손바닥만 한 미니 트리 하나면 충분하다. 엉성하게나마 반짝이는 조명을 창가에 두르면, 방 안에는 이전보다 조금 더 많은 빛이 머문다. 그 불빛 아래서 따뜻한 코코아 한 잔을 마신다. 사실 맛보다 중요한 건 이 '상황'이다. 장식을 하나씩 달며 속으로 중얼거려 본다. “그래도 올해, 여기까지는 잘 왔다.” 준비라는 건 꼭 거창한 결과를 남기지 않아도 괜찮다. 그저 손을 움직여 나를 돌보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마음의 허기는 달래진다.
음악도 나만의 방식으로 고른다. 너무 울적하지도, 그렇다고 지나치게 들뜨지도 않은 플레이리스트. 우울의 늪에 빠져 있을 땐 때로 비트가 있는 밝은 노래가 구명줄이 되어주기도 한다. 신나게 따라 부르지는 못해도 리듬에 맞춰 고개를 까딱이다 보면, 꼬리에 꼬리를 물던 우울한 생각들이 잠시 멈춘다. 그 짧은 ‘생각의 정지’가 주는 해방감은 생각보다 힘이 세다.
나를 위한 선물도 잊지 않는다. 남이 아니라, 올 한 해 가장 고생한 나에게 주는 보상이다. 평소 장바구니에만 담아두고 “나중에 사지 뭐” 하며 외면했던 사소한 것들. 꼭 필요하지는 않지만 곁에 두면 기분이 좋아질 것 같은 소품이나, 한 번도 시도해 보지 않았던 색깔의 화장품 같은 것들이다. 잘 어울릴지는 알 수 없지만, 실패하면 좀 어떤가. 그마저도 연말다운 이벤트일 뿐이다. 정성스레 포장해 눈에 잘 띄는 곳에 둔다. ‘기다릴 것’이 하나 생겼다는 사실만으로도 하루의 무게가 한결 가벼워진다.
그리고 문득 생각나는 이에게 짧은 메시지를 띄운다. 거창한 안부가 아니어도 좋다. 잘 지내는지, 연말은 평안한 지 묻는 그 짧은 글자들. 답장이 오지 않아도 상관없다. 누군가에게 따뜻한 말을 건네는 순간, 차갑게 굳어있던 보내는 쪽의 마음이 먼저 말랑하게 풀리기 시작하니까.
크리스마스는 본래 1년 중 어둠이 가장 길 때, 작은 빛을 하나둘 켜며 시작된 날이라고 한다. 내 안의 우울도 그 긴 어둠의 일부일 테지만, 준비라는 사소한 움직임으로 불을 하나 더 밝혀보는 건 꽤 근사한 선택이다. 완벽하지 않아도 되고, 오로지 혼자여도 충분하다.
올해의 크리스마스는 아주 조용하게, 하지만 분명히 어제보다 조금은 가볍게.
그 정도면 충분히 메리(Merry)한 크리스마스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