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크리스트를 보면 하루가 아니라 인생을 반성하게 된다.
분명 리스트를 만들 때 나는 의욕적이었는데, 오늘의 나는 체크를 하지 않았다.
일찍 기상은 알람과의 협상 결렬로 무산됐고,
운동은 “내일 두 배로 하면 되지”라는 말과 함께 미뤄졌다.
이쯤 되면 약속이 아니라 희망 사항에 가깝다.
그런데 이 목록을 가만히 보면 이상하게도 미워지지 않는다.
영어 공부, 운동, 화내지 않기, 커피 줄이기.
전부 착한 말들이다.
나를 괴롭히려는 계획이라기보다
“이렇게 살면 좀 괜찮지 않을까?”라는 조심스러운 제안 같다.
나는 이 약속들을 요즘 장바구니 취급한다.
당장 사지는 않지만, 괜히 지우지는 않는 물건들.
후기 다 읽어보고, 가격도 알아봤고,
머릿속에서는 이미 한 번 써본 그 물건들 말이다.
지키지 못한 약속도 딱 그 정도의 상태다.
아직 결제는 안 했지만, 관심은 확실히 있다.
물론 체크가 안 됐다고 해서 아무 일도 없었던 건 아니다.
운동 대신 계단을 한 번 더 올라갔고,
커피는 줄이지 못했지만 오후에는 참았고,
화는 냈지만 예전보다는 덜 냈다.
완벽히 지키지 못했을 뿐, 전혀 안 한 건 또 아니다.
그래서 요즘은 약속을 너무 심각하게 대하지 않기로 했다.
지키지 못했다고 나를 탈락시키지도 않고,
다시 적었다고 대단한 결심을 한 척도 하지 않는다.
그냥 “아, 이런 삶에 아직 미련이 있구나” 정도로만 본다.
체크되지 않은 약속들이 여전히 남아 있다는 건
포기하지 않았다는 뜻이기도 하다.
언젠가 마음의 배송비가 무료가 되는 날,
그때 하나쯤은 결제할 수도 있겠다 싶으니까.
지키지 못한 약속들,
아직은 실패라기보다 대기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