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메기떡 한 입에 봄이 스며들다

by Taei

봄이 왔다고들 하는데, 내 마음은 아직 덜 녹았다. 숙제처럼 남겨진 현실의 일들을 캐리어 구석에 꾸역꾸역 밀어 넣고 제주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낭만적인 혼자만의 여행이라기엔, ‘로그아웃’ 버튼이 절실했던 쪽에 더 가까웠다.

에메랄드빛 바다를 마주하고도 감탄사 대신 “가서 그 일은 어쩌지?”라는 계산기 소리가 먼저 머릿속을 채운다. 남들은 인생 사진을 건지느라 바쁜 유채꽃밭 사이에서, 나는 해결되지 않은 생각들을 복잡하게 되새김질하며 서 있었다. 꽃들은 저렇게 가볍게 피어 있는데, 나는 왜 이 풍경 앞에서도 굳어 있는지.


문득 뺨을 스치는 제주의 봄바람이 묘하게 간지러웠다. “그래, 그럴 수도 있지.” 무심하게 툭 던지고 가는 말 같았다. 억지로 웃으려 하지 않아도, 그저 서 있는 것만으로도 노란 유채꽃들이 내 얼굴 어딘가에 작은 틈을 냈다. 아주 잠깐, 미소가 비집고 나왔다. 그 정도면 충분했다.


나를 가장 쉽게 무장해제 시킨 건 뜻밖의 순간이었다. 서귀포 올레시장에 들러 무심코 집어 든 오메기떡 꾸러미. 묵직한 팥고물이 다닥다닥 붙은 그 떡을 떠올리는 순간, 조금 전까지 머리를 채우고 있던 불안이 쑥 향기처럼 옅어졌다. 꽃 앞에서도 풀리지 않던 표정이 먹을 것 앞에서 느슨해지는 걸 보니, 내 식욕에는 이미 봄이 온 모양이다.


서울로 돌아가는 비행기 안에서도 해야 할 일들은 그대로일 것이다. 다만, 전처럼 한 발짝도 못 움직일 것 같지는 않다. 주머니 속에는 오메기떡 한 봉지와, 오늘 스쳐간 바람이 조금 남아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