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부터 나는 유난히 병원을 무서워했다. 특유의 소독약 냄새, 차가운 금속성 소리, 그리고 무엇보다 흰 가운을 입은 의사의 무표정한 얼굴 앞에서는 괜히 숨이 턱 막히곤 했다. 어른이 되면 좀 의연해질 줄 알았는데, 여전히 병원 문턱을 넘을 때면 가슴 한구석이 쫄깃해진다. '흰 가운 공포증'은 아마 내 평생의 숙제인가 보다.
그런데 요즘 들어 이 무서운 공간을 드나드는 횟수가 부쩍 잦아졌다. 세월의 흐름 앞에 부모님의 건강에 크고 작은 빨간불이 켜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부모님 손에 이끌려 병원에 왔다면, 이제는 내가 부모님의 손을 꼭 잡고, 혹은 휠체어를 밀며 길고 흰 복도를 걷는다.
부모님을 모시고 병원에 가는 날이면, 내 안의 작은 스트레스들이 약속이라도 한 듯 꿈틀대기 시작한다. 가장 먼저 마주하는 건 부모님의 건강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이다. "혹시라도 나쁜 결과가 나오면 어쩌지?" 하는 걱정은 의사의 입술이 떨어지기 전까지 나를 끊임없이 괴롭힌다.
그다음은 지극히 현실적인 문제, 바로 '경제적 무게'다. 수납처 앞에 서서 카드를 내밀 때마다 묵직하게 다가오는 병원비는 현실의 무게를 실감 나게 한다. 부모님께는 늘 "걱정 마세요"라고 큰소리치지만, 마음 한쪽이 서늘해지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무엇보다 나를 가장 흔드는 건, 부모님의 약해진 모습을 보며 나의 미래를 투영하게 된다는 점이다. 언젠가 나도 저렇게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병원조차 오지 못하는 날이 오겠지. 흰머리가 희끗해진 부모님의 뒷모습에서 문득 나의 초상을 본다. 그럴 때면 가슴 한구석이 찡해지면서, 알 수 없는 무력감이 밀려오곤 한다.
하지만 오늘도 나는 무거운 마음을 추스르고 부모님과 함께 병원 문을 나선다. 비록 병원은 여전히 무섭고 '보호자'라는 이름은 어깨를 짓누르지만, 이 시간을 기어코 잘 이겨내고 싶다. 그저 부모님이 건강하게, 아주 오래오래 내 곁에 머물러 주시길 바라는 마음뿐이다.
차가운 병원 복도에서 마주했던 수많은 얼굴들. 저마다의 짐을 지고 버티고 있는 그들을 보며 나 또한 조금은 더 단단해져야겠다고 다짐해 본다. 흰 가운 공포증도, 현실적인 부담도, 그리고 미래에 대한 불안감도 결국은 부모님과 함께하는 이 시간 속에 녹아들 테니까.
오늘 저녁은 부모님이 좋아하시는 따뜻한 밥 한 끼를 함께 나누어야겠다. 병원 냄새 대신 고소한 온기가 가득한 집에서, 부모님의 평안을 빌며 아주 작은 행복이라도 꼭 붙들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