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춘이 지났다는 소식에 가벼운 옷차림을 준비해 보지만, 현실의 공기는 여전히 완고한 겨울이다. 계절의 경계에서 마음만 급해지는 요즘, 가방에 매달린 분홍색 체크리스트를 가만히 들여다본다. 스트레칭, 물 마시기, 영양제 챙기기... 어른의 일상이라기엔 지나치게 소소해서 가끔은 민망해지는 목록들이다.
돌이켜보면 나는 늘 무언가에 서툴렀다. 남들은 성큼성큼 앞서가는 것 같은데, 나는 제자리에 서서 이 작은 노란 버튼 하나를 옆으로 밀어내는 것조차 버거워 쩔쩔매곤 한다. '발전하는 사람'이라는 근사한 수식어는 여전히 나에게는 먼 옷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요즘의 나는 거창한 도약보다 '뒷걸음질 치지 않는 법'을 먼저 배우기로 했다. 완벽하지 못한 하루였더라도, 몸이 힘들다는 핑계로 마음의 미소를 잃어버린 순간이 있었더라도, 이 작은 체크리스트의 버튼 하나를 '딸깍' 소리 내어 오른쪽으로 옮기는 그 고집만큼은 지켜내고 싶다.
비록 오늘도 나는 철없는 어른의 모습으로 이 작은 플라스틱 장난감에 의지하고 있지만, 이 소소한 움직임들이 모여 나의 계절을 지탱하고 있다고 믿는다. 거창한 성공은 아닐지라도, 적어도 어제보다 반 걸음만 더 나아갈 수 있다면, 혹은 그 자리에 단단히 서 있을 수만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차가운 겨울바람 속에서도 기어코 봄은 오고 있다. 나의 노란 버튼들도 하나둘 자리를 옮기며 나만의 작은 봄을 준비하고 있다. 오늘도 나는 나 자신에게 조용히 읊조려 본다. "뒷걸음질 치지 않았으니, 오늘 하루도 참 잘 버텼다"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