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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정 Dec 12. 2019

파푸아뉴기니, 첫인상 너머로

*2016 FIFA 파푸아뉴기니 U-20 여자월드컵을 취재한 당시 KFA 홈페이지에 게재한 글.


파푸아뉴기니는 여행경보 2단계(여행자제) 국가다. 수도 포트모르스비의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외교부로부터 여행경보안내 문자가 날아왔다. 외국인 대상 각종 범죄가 빈번하니 신변 안전에 각별한 주의를 요한다는 것이다. 이곳에서 11월 13일부터 2016 FIFA 파푸아뉴기니 U-20 여자월드컵이 열린다.


남태평양 서쪽 끝에 위치한 뉴기니섬의 동반부에 걸쳐있는 파푸아뉴기니는 그렇게, 조금은 무섭고 두려운 첫인상을 가졌다. 그것은 총기 사고, 강도 등의 신변 위협과 뎅기열, 말라리아 등 질병에 대한 우려를 넘어 전혀 알지 못하는 세상, 미지의 세계에 대한 두려움이기도 했다.


지난 6일 포트모르스비에 도착한 한국 U-20 여자대표팀은 훈련 시간을 제외한 모든 시간을 숙소에서만 보내고 있었다. 숙소인 ‘스탠리호텔’은 포트모르스비 시청과 인접해 시내 중심가에 위치했다고 볼 수 있지만, 개인적으로 호텔 밖으로 나가려는 용기는 선뜻 생기지 않는다. 호텔과 연결된 실내 쇼핑몰이 유일한 산책로(?)다.


12일 오후 쇼핑몰 길 건너에 마련된 FIFA 팬존이 문을 열었다. 현지인과 외국인 관광객들에게 대회를 홍보하는 동시에, 축구팬들이 직접 축제에 참여할 수 있도록 독려하는 장소다. 마침내 숙소 밖으로 나온 선수들은 “조금이라도 나와서 걸으니까 좋다”고 했다. 파푸아뉴기니 원주민 전통 의상을 입은 어린이들을 보고 “귀여워!”를 연발하며 함께 사진을 찍었다. 한국 U-20 여자대표팀의 첫 바깥나들이는 그렇게 10여분 만에 끝났다.


처음으로 가까이서 본 현지인들의 모습은 결코 무섭지 않았다. 오히려 순박하고 친근했다. 곧 ‘그래, 여기도 어쨌든 사람 사는 곳인 걸’하며 경계심이 다소 누그러졌다. 파푸아뉴기니 사람들은 한국 U-20 여자대표팀을 비롯한 외국인들이 보일 때마다 환한 얼굴로 손을 흔들며 인사를 건넸고, 몇몇은 함께 사진을 찍자고 요청하기도 했다.


내셔널풋볼스타디움에서의 공식 훈련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오던 때는 저녁 9시. 깜깜한 밤인데다 도로에는 자동차도, 가로등도 많지 않았다. 그 가운데 경찰차 한 대의 호위를 받으며 가는 풍경은 제법 긴장감 있어 보였는데, 그보다 더 생경했던 것은 길 가에서 팀 버스를 발견한 남녀노소 현지인들이 손을 흔들며 환호하는 모습이었다. 맞은편에서 오던 차들은 경적으로 환영했다. 대회가 열리는 경기장 중 하나인 바바파크를 지날 때는 파푸아뉴기니 U-20 여자대표팀의 공식훈련을 보기 위해 한쪽 관중석을 가득 메운 현지인들이 동시에 한국 팀 버스를 향해 손을 흔들어 보였다.


현지인도 외국인도 서로를 신기해하는 이곳에서 월드컵이 열리는 것은 FIFA와 UNICEF(유니세프:유엔아동기금)가 이번 대회를 통해 함께 준비한 캠페인 ‘#ENDviolence(폭력을 끝내자)’관계가 있다.


파푸아뉴기니처럼 치안이 낙후된 국가에서 가장 많은 피해를 입는 이들은 여성과 어린이 등 사회적 약자들이다. FIFA에 따르면 태평양 지역의 어린이 중 80퍼센트가 직접적인 폭력이나 학대를 경험했으며, 남태평양 지역의 여성 중 57퍼센트는 배우자나 애인으로부터 폭력을 당한 경험이 있다고 한다. ‘#ENDviolence’는 여성과 어린이에 대한 폭력의 심각성을 대중들에게 인식시키고, 이를 근절하기 위한 사회문화적 의식 개선에 초점을 둔 캠페인이다.


‘#ENDviolence’에 대한 FIFA 홈페이지의 설명을 읽고 나자, 팬존과 거리에서 만났던 파푸아뉴기니 어린이들의 맑은 눈망울이 떠올랐다. 3주간의 짧은 축제가 이들의 삶을 얼마나 극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FIFA와 UNICEF를 비롯한 여러 단체들이 이번 U-20 여자월드컵의 역할과 의미에 어떠한 기대를 걸고 있는지는 분명하다. 한국 팀 버스를 향해 보내던 파푸아뉴기니 사람들의 열렬한 환영의 인사 역시 마찬가지의 기대와 희망을 담고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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