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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정 Dec 12. 2019

버스 안의 공기, 끝이 아니라는 말

*2016 FIFA 파푸아뉴기니 U-20 여자월드컵을 취재한 당시 KFA 홈페이지에 게재한 글.


버스 안은 고요했다. 멕시코와의 2016 FIFA 파푸아뉴기니 U-20 여자월드컵 D조 1차전이 끝난 후 숙소로 돌아가는 버스 안에는 정적만이 감돌았다. 길 가의 파푸아뉴기니 사람들은 평소와 마찬가지로 팀 버스를 향해 손을 흔들며 반가움을 표했지만, 그들의 환호 소리도 버스 안의 정적에 가로막혀 튕겨나가는 듯했다.


0-2 패. 내용 면에서도 완패를 부인할 수 없었다. 한국은 멕시코를 상대로 단 한 번의 유효슈팅도 기록하지 못했다. 가장 중요하게 여겨온 경기에서의 패배라 더 쓰라렸다. 선수들은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거나 고개를 푹 숙인 채 있었다. 시내버스 형태의 팀 버스라 서로의 얼굴이 너무 잘 보이는 것이 이럴 땐 탈이었다.


홍혜지, 박예은, 남궁예지를 제외한 18명의 선수들에게 멕시코전은 생애 첫 월드컵의 첫 경기였다. 멕시코전을 앞둔 선수들의 마음은 설렘과 긴장의 연속이었다. 경기 날이 다가올수록 경기를 생각하면 몸에 소름이 끼친다는 선수도 있었다. 하루 전이었던 11월 13일 주장 홍혜지는 “아까 점심을 먹는데 (한)채린이가 ‘나 벌써 떨려’ 그러더라고요. 그래서 ‘벌써 떨리면 어떡해’ 그랬죠. 날씨도 걱정이고, 잔디도 걱정인데, 그런 거 자꾸 생각하면 끝도 없어요. 무조건 이긴다는 생각만 하고 있어요”라며 웃어 보였다. 그렇게 긴장감을 설렘 뒤로 감췄다.


경기 당일인 14일 오전에는 코칭스태프가 준비한 영상을 다 함께 시청하며 마음을 더욱 다잡았다. 위재은, 황혜수, 하슬기, 손화연, 권도희, 김진희 등 함께 땀 흘렸지만 끝까지 함께하지는 못한 선수들의 모습이 담겨있었다. 이번 대회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함께 노력했던 이들을 떠올리며 더 큰 힘과 사명감을 얻고자 함이었다. 2010년 U-20 여자월드컵에서 맹활약했던 선배 지소연의 응원 영상도 있었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시간이니, 후회 없는 경기를 하라”는 메시지였다.


준비한 만큼의 결실을 얻지 못하자, 다잡았던 마음들은 그대로 상실감이 된 듯했다. 숨겨뒀던 걱정들도 터져 나온 것일까? 숙소 도착 후 저녁 식사 시간에도 선수들은 저마다 생각 많은 표정으로 앉아있었다. 어두운 분위기는 가시지 않았다.


정적 속의 식사를 마치고 방에 돌아왔을 때, 마침 성인여자대표팀 주장 조소현으로부터 문자가 왔다. 성인여자대표팀은 같은 날 2017 EAFF 동아시안컵 2차 예선’을 마치고 홍콩에 머물고 있었다. 3전 전승으로 본선 진출을 확정한 뒤였다. ‘애들 분위기 어때?’ ‘우울하지...’ ‘이런...’ 조소현은 9년 전 2007 AFC U-19 여자챔피언십에 참가했고, 4위에 그쳐 U-20 여자월드컵에는 나가지 못했다. 하지만 축구는 계속됐고, 현재 조소현은 A매치 93경기를 뛴 베테랑 국가대표다. 2015 FIFA 캐나다 여자월드컵에서는 스페인과의 조별리그 3차전에서 동점골을 터트려 극적인 16강 진출의 발판을 만들었다.


몇 시간 뒤 조소현은 자신의 SNS에 짧은 글을 하나 올렸다.


‘끝날 때까지 끝이 아니다. 1패했다고, 끝난 게 아니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이기려고 하는 자에게 승리를 가져다준다. 다 필요 없고, 어린 만큼 즐겨! 힘힘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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