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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정 Dec 12. 2019

포트모르스비의 바람과 꽹과리 소리

*2016 FIFA 파푸아뉴기니 U-20 여자월드컵을 취재한 당시 KFA 홈페이지에 게재한 글.


내셔널풋볼스타디움에 바람이 거세게 불었다. 11월 17일 2016 FIFA 파푸아뉴기니 U-20 여자월드컵 D조 2차전이 열린 곳이다. 관중석 꼭대기 미디어석에서는 책상에 놓인 노트북이 바람에 들썩거릴 정도였다. 한국과 베네수엘라의 경기에 앞서 열린 독일과 멕시코의 경기에서는 바람을 타고 전반전을 시작한(바람 방향=공격 방향) 독일이 3-0 승리를 거뒀다.


한국의 경기는 현지시간으로 저녁 7시에 시작됐다. 7시가 다가오자 태극기를 손에 든 교민과 현지인들이 속속 관중석에 입장했다. 멕시코전 패배로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었던 상황. 한국 U-20 여자대표팀 주장 홍혜지가 독일과 마찬가지로 바람을 타는 진영을 선택하는 것을 지켜보며 기사 마지막에 들어갈 결과란에 ‘대한민국 3-0 베네수엘라’를 미리 적어 넣었다. 김세인 한국 미디어오피서는 “지켜보니 이기는 팀 미디어오피서들이 경기 날 정장을 입었더라”며 정장을 꺼내 입었다.


경기가 시작되자 지난 14일 멕시코전과 마찬가지로 꽹과리 소리, 북소리, 소고 소리, 그리고 ‘대~한민국’ 소리가 내셔널풋볼스타디움을 가득 채웠다. 멕시코전과 다르게 한국의 공격이 쉴 새 없이 이어진 덕에 꽹과리 소리도 쉴 새가 없었다. 특히 프리킥, 코너킥 상황에서 경기장 전체를 둥둥 울리는 북소리는 경기의 긴장감을 한껏 고조시키기에 충분했다.


교민 응원단 반대편 관중석에는 역시 멕시코전과 마찬가지로 파푸아뉴기니 어린이들로 이뤄진 현지 응원단이 모여 앉아 응원을 펼쳤다. 다른 점이 있었다면 ‘리퍼블릭 코리아’를 연호하던 것에서 한 경기 만에 ‘대~한민국’ 구호의 발음과 박자를 정확히 소화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후반 32분 남궁예지의 페널티킥 골과 후반 35분 한채린의 골, 후반 45분 김성미의 골이 터지면서 양쪽 관중석의 ‘대~한민국’ 소리는 더 커져갔다. 미리 적어둔 ‘대한민국 3-0 베네수엘라’를 수정할 필요가 없어졌다. 미디어오피서의 정장과 승리 간의 상관관계에 대한 분석도 유효해졌다.


지난 멕시코전을 치르고 난 뒤 많은 선수들은 월드컵의 무게와 많은 관중이 내뿜는 열기에 부담감과 긴장감이 엄습했다고 밝혔다. 관중들의 함성에 묻혀 선수 간 의사소통에도 어려움을 겪었다. 그래서 경기 시작 휘슬과 함께 다시 울려 퍼지기 시작한 꽹과리 소리에 살짝 겁이 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과정도, 결과도 전혀 달랐다. 한 번의 실패를 경험한 선수들은 긴장감을 내려놓고 더 자신감 있게 움직였다.


경기장에서 그라운드와 관중석은 상보적인 관계다. 그라운드에서 좋은 경기가 펼쳐지면 관중이 힘을 얻고, 관중이 열정적인 응원을 펼치면 그라운드의 선수들이 힘을 얻는다. 한국 U-20 여자대표팀 선수들은 대체로 관중이 거의 없는 환경에서 경기를 해, 이런 상보적 관계가 익숙하지 않았을 뿐이다. 단 두 경기 째였지만 선수들이 어느 순간 관중석의 열기를 즐기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경기가 끝난 후 상기된 표정으로 태극기를 정리하던 이는 주 파푸아뉴기니독립국 대한민국 대사관의 김철호 참사관이었다. 김철호 참사관에 따르면 포트모르스비에는 약 100명의 한국 교민들이 살고 있으며 주로 건설업, 발전업 등에 종사한다고 한다. 교민 응원단에 많은 현지인들이 함께인 이유를 묻자 “교민들이 운영하는 회사의 현지 직원들이다. 이들도 다 한국 팬”이라고 설명했다.


21일 열리는 독일과의 3차전에도 꽹과리 소리는 계속된다. 김철호 참사관은 “파푸아뉴기니에서 한국 선수단을 만난 것 자체도 반가운데, 오늘 이기니까 더 반갑다. 독일전에서도 이길 수 있도록 교민들과 대사관 직원들이 일심동체로 응원하겠다. 우리 동포들이 열렬히, 열렬히 응원한다는 걸 선수들이 기억해줬으면 좋겠다. 목이 터져라 응원하겠다”며 활짝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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