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근깨 빼빼 마른 빨강머리 앤

앤 셜리 커스버트

by 태정

예쁘지는 않지만 사랑스러워.


얼추 학교에 들어갈 나이가 됐을 무렵부터 내 얼굴엔 주근깨가 생기기 시작했다. 작은 연갈색 반점들이 하나둘 올라오더니 금세 두 뺨과 콧잔등으로 번졌다. 또래 친구들의 얼굴을 눈을 씻고 살펴봐도 나처럼 주근깨가 있는 아이는 아주 드물었다. 엄마는 햇볕을 많이 보면 주근깨가 생기는 거라고 설명해 줬지만, 내가 다른 친구들보다 특별히 더 많이 나가 논 것도 아니었기에 좀 억울했다. 오빠는 내가 자는 동안 파리가 앉아 똥을 싸고 간 거라며 놀렸는데, 그럴 리 없다는 걸 알았음에도 나는 분해서 벅벅 세수를 하곤 했다.

그즈음 KBS에서 캐나다 소설가 루시 모드 몽고메리의 소설 <Anne of Green Gables>을 원작으로 한 일본 만화영화 <빨강머리 앤>이 방영됐다. 빨강머리의 고아 소녀 앤이 초록지붕 집에 사는 커스버트 남매에게 입양돼 함께 살아가는 이야기다. 수채화 느낌의 따뜻한 전원 풍경이 아름답게 그려진 이 작품은 주제가에서부터 내 마음을 단숨에 사로잡았다.


'주근깨 빼빼 마른 빨강머리 앤, 예쁘지는 않지만 사랑스러워. 상냥하고 귀여운 빨강머리 앤, 외롭고 슬프지만 굳세게 자라...' 사실 첫 칠음절 '주근깨 빼빼 마른'이면 충분했다. 이 일곱 글자 덕에 앤의 주제가는 나의 주제가가 됐고, 나는 앤이 됐다. '주근깨 빼빼 마른'만 빼면 나와 앤은 비슷한 구석이 전혀 없었는데도 말이다.

닛폰 애니메이션 <빨강머리 앤(赤毛の アン)>


수다스럽고 산만한(지금 생각해 보면 ADHD가 의심될 정도로) 앤은 첫 화부터 줄곧 자신의 못생김에 대해 떠들어댔는데, 그것부터가 놀라웠다. 당시 나는 빨강머리가 콤플렉스가 되는 이유를 모르기도 했거니와, 첫 만남에서부터 자신의 약점들을 숨기기는커녕 줄줄 늘어놓는 앤이 이해되지 않았다. 나는 스스로 못생겼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주근깨가 나를 좀 못생기게 만들었다고는 생각했던 것 같다. 한참 거울을 들여다보면서 어른이 되면 피부과에서 주근깨 제거 시술을 받겠다고 마음먹었던 것이 기억난다. 주근깨는 확실히 내 약점이었고 누가 그걸 갖고 놀리면 부아가 치밀었다.


앤이 나와 달랐던 또 다른 점. 그는 참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조용하고 차분한 편이었던 나는 앤의 거침없는 언행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얼굴이 화끈거리고 식은땀이 났다. 내 기준에서 앤은 지나치게 솔직하고 용감했다. 앤은 스스로가 못생겼다고 꾸준히 말하면서도, 다른 누군가가 자신의 외모를 흉보면 버럭 화를 내며 무례함을 일갈했다. 상대가 처음 만난 어른이라 할지라도. 어린 나는 그런 앤의 모습에 난생처음으로 대리만족을 느꼈는지도 모르겠다. 특히 석판으로 동급생 남자애의 머리를 갈겨버리는 그 유명한 장면은! 나는 몇몇의 얼굴을 떠올리며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내게는 그런 용맹함은 없었지만, 어쨌든 나는 앤과 그의 주제가 덕분에 예쁘지 않아도 사랑스럽고 귀여울 수 있다는 걸 알았고 그건 큰 위로가 됐다. 주제가 가사 그대로 앤은 사랑스러운 아이였다. 주근깨가 있든 없든, 빨강머리든 검정머리든(허수아비 머리든), 마르든 통통하든, 앤은 앤인 채로 사랑스러웠다. 솔직하고 용감하며 명석하고 감수성이 풍부한 앤은 그만의 매력으로 매튜 아저씨를 녹였고, 마릴라 아주머니에게 스며들었고, 다이애나를 사랑에 빠지게 했다(그건 분명 사랑이었다!).


넷플릭스 시리즈 <빨간 머리 앤(Anne with an E)>


2017년 넷플릭스 시리즈 <빨간 머리 앤>이 공개됐을 때 나는 어린 시절 친구를 다시 만난 것만 같아 무척 반가웠다. 극 중 앤을 연기한 에이미베스 맥널티의 모습은 마치 만화영화를 뚫고 나온 듯 앤 그 자체였다. 과장된 말투와 몸짓으로 내 얼굴을 화끈거리게 하는, 귀엽고 불쌍하고 또한 용맹하고 정의로운, 사랑스러운 내 친구. 내가 미취학 아동에서 어른이 되는 동안 '주근깨 빼빼 마른' 말괄량이 앤이 거기 그대로 있었다.


그 시절 만화영화에서 앤의 주근깨는 십 대 후반이 되자 자연히 사라졌다. 나 역시 살짝 희망을 품은 적도 있지만 그 후로 많은 시간이 흘러 어른이 된 지 한참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내 얼굴엔 주근깨가 있다. 내게서 자연히 사라진 건 오히려 어른이 되면 주근깨 제거 시술을 받겠다는 결심이었다. 주근깨는 더 이상 내 약점도 콤플렉스도 아니고 그저 나의 작은 일부다.


드라마로 다시 만난 앤을 보며 생각했다. 그 시절 앤을 만나지 못했다면 내가 지금의 나일 수 있었을까? 아마 어려웠을 것이다. 일찌감치 앤을 만나지 못했다면 주근깨가 짙어지는 동안 주근깨에 대한 고민도 짙어졌을 테다. 고민이 옅어져 사라지는 동안 먼 길을 돌아왔을 지도, 아예 다른 길을 갔을지도 모르겠다.


앤에게서 받은 건 그뿐이 아니다. 박공지붕 집에 살아보고 싶다는 로망이 생긴 것도, 빅토리아풍 가구와 인테리어, 식기에 향수를 느끼는 것도 앤 덕분. 아주 작은 것에도 의미를 부여하는 것, 꽃과 나무와 풍경에 이름을 붙이는 것, 요정을 믿는 것, 공상에 빠지는 것, 이야기를 쓰는 것, 비극적인 이야기의 주인공이 되어 보는 것, 상상만으로도 울고 웃는 것, 그래도 괜찮다는 것, 거창한 생각을 표현하려면 거창한 단어를 써야 한다는 것... 모두 앤이 알려준 것들이다. 앤에게 많은 걸 빚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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