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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정 Dec 12. 2019

아직도 축구기자 하고 있습니다

 축구기자가 됐다고 했을 때, 나를 아는 주변 사람들의 반응은 극과 극으로 나뉘었다. "네가 결국!" 아니면, "네가?"


 전자는 축구기자의 '축구'에 반응한 것이고, 후자는 축구기자의 '기자'에 반응한 것이었다. 이 극단적으로 갈린 첫 반응은 내가 축구기자로 활동해온 6년 가까운 시간의 부대낌을 고스란히 설명해준다. 나는 왜 축구기자가 됐을까? 왜 아직도 축구기자를 하고 있는 걸까?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청소년기에 2002 한일월드컵을 보낸 많은 사람들이 그렇듯, 나는 당시의 그 광기에 가까운 몰입의 순간에 매료됐다. 월드컵이 끝나고 대다수의 친구들은 한 여름밤의 꿈에서 서서히 깨어나는 듯했지만 나는 그렇지 못했다. 프로스포츠라고는 전혀 즐길 수 없던 지방 소도시에 살았지만, 언젠가는 거대한 축구경기장 안에서 열광에 찬 사람들 속에 오롯한 내 자리를 차지할 것이라 믿었다. 그때만 해도 좋아하는 것을 일로 삼으면 행복하게 일할 수 있으리라는 순진한 생각을 했더랬다. 역시, 겪어보지 않으면 모른다.


 축구기자가 된 것은 우연에 가까운 일이었다. 한창 취업을 알아보던 시기에 눈에 띈 채용공고가 모 축구전문매체의 기자 채용이었던 것뿐이다. 부담 없이 지원했고, 무리 없이 합격했다. 글쓰기에 대한 자신도 있었고, 간단한 외신을 번역할 수 있을 정도의 영어 실력도 있었다. 석사 논문을 쓰며 개발한 자료 수집 능력도 있었다. 무엇보다 축구는 내가 좋아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실상 축구기자는 '축구'보다 '기자'에 방점이 찍힌 직업이었다. 나를 유혹했던 '축구'라는 단어는 사실 괄호 안에 가둬도 무방하다. 그래서 안타깝게도 축구기자가 됐다고 했을 때 받은 첫 반응, "네가?"는 내가 나 스스로에게 묻는 질문이 됐다. '기자'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지 않은 탓이다. 기자가 갖춰야 할 덕목, 예를 들어 쉼 없는 취재원 관리나 인간관계 확장에 따르는 적당한 넉살과 적당한 섬세함 같은 것들. 내가? 이토록 내향적이고,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하고, 규율에 얽매이는 것을 싫어하는 내가? (축구)기자를 한다고?


 오랜만에 현장에서 만난 선배가 묻는다. "어? 너 아직 안 그만뒀니?" 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축구기자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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