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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정 Jan 31. 2020

처음의 기억

 기억하는 한 나는 무척 어렸을 때부터 조용하고 말이 없었다. 단적인 예로 네다섯 살 즘의 나는 어린이집에서 출석을 부를 때 '네'라는 한 음절의 대답을 하지 못했다.


 왜 그랬을까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아마도 생각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1차적으로 나는 선생님이 아이들의 이름을 한 명, 한 명 부르고, 아이들이 그에 맞춰 대답하는 그 행위가 이해되지 않았다. 고작 10명 남짓인 아이들의 존재를 그 행위 없이는 확인할 수 없는 걸까? 선생님은 분명 내가 이 자리에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왜 내 대답을 듣고 싶어 하는 걸까? 이해할 수는 없지만 어찌 됐건 나도 그 장단에 맞춰야 한다는 것을 안 이후에는 조금 더 실제적인 생각들이 이어졌다. 어느 타이밍에 대답해야 하지? 선생님이 내 이름을 부른 뒤 바로? 0.5초 뒤에? 0.7초 뒤에? 목소리는 어떻게 해야 하지? 어떤 크기로? 어떤 톤으로? 어떤 발성으로? 몰아치는 생각 속에 괴로워하다 보면 결국 나는 타이밍을 놓치고 끝내 '네'라는 한 음절을 내뱉지 못한 것이다.


 출석 부르는 시간에 대한 스트레스를 극복한 것은 우연에 가까웠다. 옆 자리 친구가 보여준 무언가에 정신이 팔려있을 때 내 이름이 불렸고, 나는 얼떨결에 "네" 하고 대답했다. 깜짝 놀란 선생님은 반 아이들을 선동해 내게 박수까지 쳐줬다. 인생에서 최고로 민망했던 기억 베스트 파이브 정도에 들어가는 순간이다. 아마도 그때부터 깨닫기 시작한 것 같다. 인간의 행동 모두에 합당한 이유가 있는 것이 아니며, 어떤 행동들은 아무 생각 없이 해야 할 필요도 있다는 것. 사회화란 그런 행동들을 괘념치 않고 습관적으로 할 수 있게 되는 과정을 포함한다는 것. 안타깝게도(?) 나는 한국 문화 기준 사회성이 결여된 성인으로 자랐다. 나름의 치열한 고민 끝에 성인이 된 이후로는 내 사회성 결여에 대해 스스로 문제 삼지도 않았다. 내 힘으로 사회를 살아낼 수 있을 만큼의 매뉴얼만 만들어 지키면 되니까.


 축구기자가 된 이후로는 매뉴얼에서 벗어나는 상황이 많아졌다. 어린이집 출석 확인 시간에 대한 오래된 기억을 떠올리게 된 것도 축구기자가 된 직후였다. 첫 믹스드 존(Mixed Zone) 인터뷰. 경기를 마치고 팀 버스를 타기 위해 걸어가는 선수를 불러 세워 인터뷰를 해야 했다. 나를 모르는 사람이 길을 가는데, 그의 이름을 불러 말을 건다? 20여 년 인생 미증유의 상황이었다. 일상생활에서는 지금도 도무지 (그가 미셸 브랜치나 해일리 앳웰이 아닌 이상)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어쨌든 일이었기에, 나는 당시 전남드래곤즈 소속이었던 북마케도니아 선수 스테보를 출입구 바로 앞에서 간신히 잡아("스...스...스테보!") 인터뷰를 할 수 있었다. 다행히 그는 친절했고, 내 첫 믹스드 존 인터뷰는 나쁘지 않은 기억으로 남았다.


 믹스드 존에서 선수 이름을 부르는 행위는 (인터뷰라는 목적을 빼고) 그 자체로만 보면 어린이집 출석 확인 시간에 대답을 하는 행위의 고난도 버전 같다. 그래도 그나마 쉬운 편이다. 축구기자를 계속하면서 더 높은 난도의 상황이 매일 생겼다. 나는 매뉴얼에 없던 사회성을 발휘하기 위해 매일 분투했다. 사회성이 발달된 사람이라면 이해할 수 없겠지만(나도 그들을 이해할 수 없기에), 잘 모르는 사람에게 전화를 걸어 나를 소개하고 기사에 필요한 멘트를 받거나 경기장 안팎을 돌아다니며 왠지 말을 잘할 것 같은 사람을 골라 대뜸 인터뷰를 요청하는 등의 일은 내게 엄청난 에너지 소모를 일으켰다. 그러고 나면 마치 원기옥을 쓰고 난 손오공이 된 느낌이었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지만, 여러 번 한다고 해서 꼭 쉬워지지는 않는다. 어느 때에는 조금 쉬워진 것 같다가도, 어느 때가 되면 다시 어렵다. 어느 때에는 달라진 내 모습에 스스로 깜짝 놀라다가도, 어느 때에는 여전한 내 모습이 한심스럽다가도, 어느 때에는 변함없이 한결같은 내가 귀엽다. 놀랍게도. 6년 정도 됐으면 축구기자용 새 매뉴얼을 만들 법도 한데, 요즘 나는 그저 한 문장만을 되뇌고 있다. 때로, 생각은 행동의 적이다. 어떤 행동들은 아무 생각 없이 해야 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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