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값이 78억 원이라고요?

(Ep.3) “미국서 세계 최고가약 허가”

by 함태진
“한 번에 20억, 국내 최고가약 첫 투약”

작년 8월에 실렸던 기사의 제목입니다. 한국에서 가장 비싼 약으로 승인된 척수성근위축증(SMA, Spinal Muscular Atrophy)이라는 질환의 치료제인데 약값이 무려 19억 8000만 원이라고 합니다. 입이 떡 벌어지시나요? 그나마 다행인 것은 한국에서는 국민건강보험이라는 좋은 제도 덕분에 환자부담금은 단돈(?) 598만 원밖에 안 한다는 것이지요. 나머지는 보험공단이 모두 부담합니다.


“약값이 78억? 세계최초 유전자 가위 신약, 최고가 깰 듯”


몇 달 전 한 신문기사의 제목입니다. 올해 안으로 미국에서 시판허가가 날 이 약의 가격은 한방에 78억 원이 될 전망이라고 합니다. 겸상적혈구 빈혈이라는 질병의 치료제입니다. 여기에 비하니 앞서 언급한 20억 원짜리 SMA 치료제는 오히려 싸게 느껴질 지경입니다. 이미 허가가 난 약들 중에서 세계에서 최고로 비싼 약은 45억 원 하는 혈우병 치료제입니다. 이 외에도 ‘억!’ 소리가 나는 약들은 요즘 꽤 여럿 있습니다. 웬만해서는 이제 더 이상 뉴스도 아닐 정도입니다.




왜 이렇게 비쌀까요? 여러 가지 복잡한 고려사항이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그만한 ‘가치(value)’가 있다는 사회적 합의가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앞서 언급한 척수성근위축증(SMA) 치료제는 1살이 채 되지 않은 아기들에게 사용합니다. 이 질병을 갖고 태어난 아기들은 일반적으로 1-2살을 넘기지 못하고 사망합니다. 그런데 이제 이 약 덕분에 단 한 번의 주사로 아기가 정상적이고 건강한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습니다. 정말 기적과도 같은 일이지요. 진짜인지 궁금하면 유튜브 같은 곳을 검색해 보시면 됩니다. 고개조차 가누지 못하고 죽을 수밖에 없었던 아기들이 건강하고 정상적인 아이로 성장해 가는 모습을 보실 수 있을 겁니다.


자, 이제 이런 약의 가격은 얼마가 적당할까요? 만일 내 아이가 이 약을 필요로 한다면요? 아마 누구도 함부로 “얼마가 적당하고, 얼마는 비싸다”라고 쉽게 말하기 힘들 겁니다. 그것은 마치 사람의 생명에 값어치를 매기는 것과 비슷할 테니까요. 수십억을 넘는 약값이 타당하다는 말을 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아무리 죽을 사람을 살리는 약이라도 가격이 과도해서는 안되니까요. 문제는 과연 그 “적당한” 가격이라는 것은 누가 어떻게 정해야 하느냐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요즘 이런 뉴스를 접할 때마다 제 생각이 복잡해지는 이유입니다. 기적과도 같은 신약이 개발되었다는 것은 치료제를 기다리던 환자들과 그 가족들에게 너무나 좋은 소식입니다. 하지만 그 약을 정말 쓸 수 있도록 하려면 약의 가격이 얼마가 적당하다는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데 그것을 도출하는 과정이 너무도 순탄치 않기 때문입니다.


이 일이 너무 험난하다 보니 (앞선 글에서 설명했던) 길고도 힘든 개발과정을 겨우겨우 성공적으로 마치고 규제기관으로부터 시판허가(marketing authorization)까지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끝내 한국에서는 환자들이 사용할 수 없게되는 약들도 상당히 많습니다. 지난 10년간 전 세계에서 허가된 약들 중에 한국에서 사용할 수 있는 약은 33% 밖에 안된다는 보고도 있습니다. 환자나 그 가족들 입장에서는 참으로 기가 찰 노릇이겠지요.




약값을 결정하는 과정에는 복수의 기관들이 관여합니다. 가장 직접적으로는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라는 기관과 국민건강보험공단이 관여합니다. 이들은 직접 약을 개발한 회사와 접촉하며 자료를 검토하고 협상을 합니다. 또 이들을 관할하는 보건복지부도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더 넓게는 건강보험료를 포함한 전체 정부재정을 관리하는 기획재정부도 관여하고, 이들 행정부가 따르는 법을 만드는 국회도 관여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해당 질병으로 고통받고 있는 환자와 그 가족들도 중요한 이해관계자입니다. 이들도 직접 혹은 간접적인 방법으로 협상에 영향을 줍니다. 마찬가지로 해당 질병을 치료하는 전문가들인 의사나 관련 학술단체 등도 그들의 전문가적인 소견을 통해 전체 과정에 영향을 끼칩니다.


약값이 정해지는 과정은 이처럼 수많은 이해관계자들과 그들의 수많은 욕구가 용광로처럼 버무려지는 과정과도 같기 때문에 시간도 오래 걸리고 무엇보다 ‘합의’를 도출하는 과정이 너무너무너무 피를 말리도록 힘듭니다. 제가 직접 해봤기 때문에 경험을 통해 드릴 수 있는 말씀입니다.

그 과정과 단계를 일일이 설명하기는 너무나 복잡할 뿐 아니라 또 너무 전문적이기도 한지라 여기서는 간략히만 언급하고 건너뛰도록 하겠습니다. 대신 그 안에서 벌어지는 숨 막히는 협상의 막전 막후 이야기들은 언젠가 하나씩 별도의 글을 통해 소개드려보고 싶네요. 물론 비밀유지 의무를 위반하지 않는 선에서 말이지요.


약의 가격이 정해지는 복잡한 상황을 아주아주 간단히 말씀드리자면, 정부입장에서는 좋은 약을 한국의 국민들이 쓸 수 있게 하되 그것을 한정된 재원 안에서 관리해야 한다는 제약이 있습니다. 때문에 어떻게든 재정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자 노력하게 되지요. 그래서 해당 질병이 있는 환자가 대략 몇 명이 있는지도 따져보고, 그 질병에 사용가능한 다른 약이 있는지, 만약 있다면 그런 약들은 얼마인지도 따져봅니다. 또 새로운 약이 어떤 면에서 얼마만큼 더 좋은지를 분석한 다음 이를 금액으로 환산하게 됩니다. 그러려면 좋든 싫든 사람의 건강에 금액을 붙이는 과정이 따르게 되는데 논란의 여지가 많을 수 있는 이런 논의들은 ‘경제성평가’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약물경제학’을 전공한 전문가들이 ‘삶의 질을 보정한 1년 수명연장의 가치‘인 QALY(Quality Adjusted Life Year), 즉 완전히 건강한 상태로 1년을 더 살 수 있는데 대해 지불할 용의가 있는 가격의 상한선을 매겨서 이를 근거로 약값이 과연 ‘비용효과적’인지 아닌지 여부를 따지게 됩니다.


여기서 사람의 수명에 가격을 매기는 것이 온당한지에 대한 도덕적인 질문이 자연스럽게 생겨납니다만 가격을 결정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인 듯합니다. 결국 여러분과 나의 ‘완전히 건강한 상태로의 1년의 수명연장’에 적정하다고 매겨지는 ‘가격’은 나라에서 정하지만 정확한 수치는 공식적으로 알려주지 않습니다. 다만 1인당 GDP도 하나의 고려사항이라는 것은 공공연한 힌트입니다.


간단하게 말씀드린다고 했는데도 꽤 길어졌네요. ㅠㅠ 이어지는 글들에서는 약의 가격에 영향을 주는 또 다른 요소, 즉 신약의 개발비용 등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세줄 요약>

- 요즘 새로 나오는 약들은 가격이 수억 원이 넘는 것이 부지기수다.

- 약의 가격을 매기는 과정은 그 약이 줄 수 있는 ‘가치 (value)’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는 과정이다.

- 여기에는 무수히 많은 이해관계자들이 관여하고, 또 이는 우리의 생명에 가격표를 붙이는 것과도 관련이 있는 만큼 대단히 민감하고 조율하기가 힘들다.


<Reference>

1. 수억 원대 초고가의약품 시대 열렸다 | 의학신문 (2022)2. 일본 30개 할 때 고작 5개…한국 신약 도입 더뎌 | 한국경제 (2023)

3. 국민건강보험 요양급여의 기준에 관한 규칙 | 보건복지부

4. 약제의 결정 및 조정기준 | 보건복지부

5. 약제의 요양급여대상여부 등의 평가기준 및 절차 등에 관한 규정 | 건강보험심사평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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