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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함태진 Dec 22. 2024

스키장에서 몇 바퀴 구르면서 드는 생각들


겨울방학마다 아이들과 스키장에 온다. 일 년에 딱 한 번. 그나마도 스노보드 타는 법은 작년에 처음 배웠기에, 1년 만에 다시 보드를 타려니 시작부터 난관이다. 스노보드를 신는 법도 가물거려서 출발 전부터 낑낑거렸다. 겨우 준비를 완료하고 기억을 되살리기 위해 우선 초급 코스에 올랐다.


하체에 힘을 잔뜩 주었더니 허벅지 근육에 알배기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앞으로 넘어지고 뒤로 자빠지며 초급 코스를 세 번 정도 내려온 후에야 겨우 몸이 기억을 되찾았다. 이제는 중급 코스로 올라갈 차례다. 경사도 더 가파르고 거리도 더 길다. 한참을 내려오다 보면 다리가 후들거리고, 한번 넘어질 때마다 몸의 에너지가 순식간에 확확 증발해 버리는 느낌이다. 중간중간 슬로프 한가운데 털썩 주저앉아서, 다시 내려갈 용기를 모으는 데까지 시간이 꽤 필요하다.


하지만 아이들은 다르다. 처음엔 나처럼 어설프게 내려오는 듯하더니, 어느새 스르르 코스를 누비며 저만치 앞서서 슬로프를 미끄러지듯 내려간다. 다치지 않을까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바라보는 아빠의 시선과 달리, 아이들은 그야말로 슬로프를 즐기고 있다. 저만치 멀어져 가는 아이들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이젠 다 컸구나' 싶은 대견함과 함께 약간의 질투(?)가 섞인 감정이 인다.



직활강금지


스노보드를 타면서 문득 든 생각. 스노보드를 잘 탄다는 것은 속도를 빨리 내는 것이 아니라, 속도를 줄일 줄 아는 능력에 달려있다. 원하는 순간에 원하는 만큼 속도를 줄일 수 있는 능력, 그리고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방향을 전환할 수 있는 능력이 있을 때 비로소 슬로프를 자신 있게 누빌 수 있는 것이다.


인생도 마찬가지다. 필요할 때 적절하게 속도를 줄이고, 주변 상황에 맞게 부드럽게 방향을 전환할 줄 아는 능력이 중요하다. 전속력으로 직진만 해서는 사고 나기 십상이다.


한 해가 저물어간다. 나는 올 한 해 얼마나 속도를 조절하며 살았던가? 가속 페달만 냅다 밟으며 앞만 보고 내달렸던 것은 아닌지, 때때로 브레이크를 밟아가며 주위의 흐름에 맞춰서 적절하게 방향도 바꾸는 여유를 가졌었는지 되돌아본다.




잠시 멍 때리고 있는 사이에 아이들이 다가오더니 이제는 중상급 코스에 가보고 싶다고 한다. 놓아줄 때가 된 모양이다. 덩치도 나보다 더 크고 에너지도 넘치는 아이들을 보며, 내가 아이들과 보조를 맞추기엔 이제 무리다 싶었다.

"얘들아, 미안하지만 아빠는 여기서 빠질게. 너희들끼리 마음껏 즐기렴. 대신 조심하고, 너무 빨리 달리려고 하지 말고."


물론, 아빠의 잔소리 따위는 필요 없을 것이다. 아이들은 내가 걱정했던 것보다 훨씬 잘하고 있다. 스노보드도, 인생도.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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