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 시대가 몰고 오는 변화
명절을 앞두고 마지막 정리를 하면서, 회사 이메일에 자동회신 설정을 걸어 두었다.
“한국은 지금 설 명절로 연휴입니다. 다음 주에 업무 복귀하면 답장드리겠습니다. 급한 용건이 있으실 때는 직접 전화 주시기 바랍니다.”
“Thank you for your email. Korea is currently celebrating the Lunar New Year holidays. I will respond after returning to work next week. If you have an urgent matter, please call me directly.“
연휴 동안에는 일을 하지 않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담아, 업무용 휴대전화도 뒤집어서 책상 한쪽 구석에 밀어 놓았다. 마치 금단의 물건이라도 되는 양.
하지만 주말을 보내고 나서 명절이 시작되는 첫날부터, 머릿속에서는 두 개의 목소리가 싸우기 시작했다.
‘본사에서 급한 메일이 왔을 수도 있어.’
‘안돼. 연휴는 연휴다. 쉴 때는 쉬어야지.’
잠시 고민하다가, 충돌하는 두 개의 목소리도 잠재울 겸 커피 한잔을 손에 들고 뉴스를 읽기 시작했다.
딥시크(DeepSeek)
뉴스에는 온통 이 이름이 도배되어 있었다. 중국의 신생 인공지능 회사. 그들이 공개한 인공지능 모델이 전 세계를 충격에 빠뜨렸다고 한다. 그 영향으로 시총 기준 세계 최대기업인 인공지능의 총아, 엔비디아(NVIDIA)는 하룻밤 사이에 주가가 17%나 폭락해서 기업가치 800조 원이 증발해 버렸고, 나스닥 시장도 크게 휘청였다.
충격의 원인은 한마디로 엄청난 가성비였다. 인공지능은 무서운 속도로 발전하고 있지만, 우리는 그것이 거대한 자본을 갖춘 미국 빅테크의 전유물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딥시크는 훨씬 적은 비용과 시간으로 현존하는 최고 성능의 AI에 필적하는 모델을 만들어냈다. 이 말인즉슨, 앞으로 AI의 발전이 더 빠르게, 더 저렴하게 이루어질 수 있다는 의미다.
인공지능의 가파른 발전으로 인해, 이미 전 세계 많은 기업에서 업무 방식이나 조직구조에 큰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다수의 일자리가 사라지고 있고, 회사에서 필요로 하는 인력이나 역량에도 격변이 일어나고 있다.
딥시크의 출현은, 따라잡기조차 힘들 만큼 빠른 인공지능의 발전이 앞으로 더욱더 가속화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인공지능으로 인해 벌어질 세상의 변화, 특히 직업세계의 변화도 그만큼 더 크고 다양해질 것이다.
인공지능 이야기가 나올 때, 직장인들이 가장 궁금해하는 화두 중 하나는 이것이다.
“그래서 앞으로 어떤 직업,
어떤 직무가 살아남을 것인가”
처음 AI가 등장했을 때 사람들은 반복적인 업무, 혹은 규격화된 사무직이 가장 먼저 사라질 거라고 예측했다. 대신 전문직이나 창의성이 필요한 직군은 안전할 것이라고 보았다.
하지만 이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AI는 이미 법률, 의료, 회계 등 고도의 전문직을 보조하거나 대체하는 수준까지 발전했다. 창의성을 요구하는 예술분야도 예외가 아니다. AI는 그림을 그리고, 영상을 만들고, 음악을 작곡하며, 소설까지 쓴다. 심지어 그 퀄리티가 점점 인간을 넘어서는 듯하다.
후배나 젊은 직원들이 가진 경력개발과 관련된 고민을 듣다 보면, 항상 빠지지 않고 나오는 화두 중의 하나는 ‘전문가(Specialist)로 남을 것인가, 관리자(Generalist)로 변모할 것인가'였다. 대부분의 직장인은 처음에는 특정 직무분야의 실무자로 출발한다. 하지만 연차가 쌓이고 직급이 올라가면서, 점차 직접 실무를 하기보다는 다른 실무자들을 이끌고 관리하는 Generalist로서의 역할을 점점 더 요구받게 된다.
하지만 AI 시대가 본격화되면서 이 구도 자체가 흔들리고 있다. 기존의 Specialist 역할, 즉 전문지식이나 이에 기반한 업무수행이야말로 앞으로 AI가 가장 빠르고, 확실하게 대체할 수 있는 영역이다. 따라서 Specialist들에게 갈수록 더 필요한 역량은, 실무 능력을 놓고서 AI와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AI가 만든 결과물을 검토하고, 수정하고, 목표에 맞게 전략적으로 활용할 줄 아는 능력이 될 것이다.
결국 대부분의 직장인에게 일종의 관리자로서의 역할과 소양이 필요하게 될 수 있다는 말이다. 인공지능이 앞으로 엄청나게 많은 영역에서 인간보다 뛰어난 능력을 보이겠지만, 직장 내에서 사람들의 감정을 읽고, 갈등을 조율하고, 목표를 공유하고, 동기를 부여하는 등의 일, 즉 ‘사람을 상대하는 일’은 적어도 앞으로도 한동안은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일 것이기 때문이다.
뉴스를 읽다 말고, 고개를 돌려 책상 위를 쳐다봤다. 구석에 엎어놓은 내 업무용 휴대폰이 보였다. 나는 결국 휴대폰을 집어 들고 이메일을 확인했다. 내친김에 회사 노트북도 켰다. 수북이 쌓인 메일 속에서 몇 가지를 골라, 잠시 업무 모드에 돌입했다.
딥시크도, AI도, 자동화도 당장은 내 일을 대신하지 못한다. 물론 그런 날이 언제 올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아직은 나에게 할 일이 있고, 또 그 일을 내가 인공지능보다 더 잘 해낼 수 있다는 점에 감사하기로 했다.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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