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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무 스트레스가 한없이 하찮게 느껴지던 순간

Top Line & Bottom Line (매출목표, 이익목표)

by 함태진
<2014년 8월 22일>
오늘은 MH17 비행기 추락사고 희생자들을 기리는 국가애도의 날이다. 일상의 바쁜 스케줄을 잠시 멈추고 삶과 죽음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본다. 아무리 골치 아파 보이던 문제들이라도, ‘삶과 죽음’ 앞에서는 너무나 작아지는 것을 느낀다.


2014년 7월 17일. 네덜란드에서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로 향하던 말레이시아항공 17편 여객기가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국경지대에서 추락했다. 탑승자 298명이 전원 사망했다. 사고 원인은 우크라이나 반군의 지대공 미사일에 의한 격추였다. 전 세계가 충격에 휩싸였다.


추락장소가 분쟁지역이었던 까닭에, 반군의 방해와 위협으로 인해 수습작업이 지연되었다. 결국 승객들의 시신은 사고가 난 지 한 달이나 넘은 8월 22일에야 처음으로 가족들에게 인계되었다. 말레이시아 정부는 이날을 ‘국가애도의 날 (National Day of Mourning)’로 지정했다.


사실 그해 3월, 말레이시아는 이미 엄청난 비행기 사고를 겪은 터였다. 239명을 태운 말레이시아항공 370편이 지구상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졌던 것이다. 비행기가 납치되었다는 이도 있었고, 조종사가 의도적으로 자살 비행을 했다는 설도 있었다. 하지만 몇 년에 걸친 광범위한 수색작업에도 비행기의 정확한 행방은 밝혀지지 않았고, 그 사건은 오늘날까지도 전대미문의 미스터리 미제사건으로 남아있다.




그 해에는 회사에도 유난히 커다란 일들이 많았다. 연초에 터진 대형 사건을 수습하느라 많은 이들을 징계하고, 내보내고, 승진시키고, 새로 영입하는 것만으로도 정신이 없었다.


하지만 그게 다가 아니었다. 본사는 그해 여러 건의 기업구조조정 조치를 단행했다. 다른 회사의 사업부를 인수하고, 그 사업부를 기존 사업부와 합병한 후 분사시키고, 그 직후에는 또 다른 사업부를 다른 회사에 매각하는 등 회사를 쪼개고 사고파는 작업이 쉴 새 없이 몰아쳤다. 본사의 조치들은 모두 지사장에게는 고스란히 실행해야 하는 숙제로 내려왔다.


이런 온갖 구조조정 와중에 Business Planning(경영계획)까지 해야 했다. 당시 업무 스트레스가 꽤나 극심했다.



Top Line & Bottom Line (매출목표, 이익목표)


매년 글로벌 제약회사의 지사장들은 이듬해의 매출과 이익 목표를 정하는 작업을 한다. 이것은 단순한 성과목표 설정이 아니다. 오히려 지사와 본사 사이의 치열한 논리 싸움이 벌어지는 전쟁터에 가깝다.


비즈니스 플랜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은 Top Line과 Bottom Line이다.

Top Line: 기업의 총매출을 의미한다. 손익계산서의 최상단에 위치하기 때문에 흔히 ‘Top Line’이라 불린다. 회사의 성장성을 나타내는 지표로, 신제품 출시, 마케팅 전략, 시장 확장 계획 등으로 뒷받침되어야 한다.

Bottom Line: 기업의 순이익을 의미한다. 손익계산서의 최하단에 위치하기 때문에 ‘Bottom Line’이라 불린다. 매출에서 모든 비용과 세금을 제외한 후 남은 이익을 나타내는데, 비용 절감과 운영 효율성이 핵심 요소다.


이 목표를 설정하는 과정은 크게 Top-Down 방식과 Bottom-Up 방식 두 가지로 진행될 수 있다.

Bottom-Up: 지사에서 먼저 목표를 제안하고, 본사가 이를 검토 및 조정하는 방식.

Top-Down: 본사에서 목표를 먼저 제시하고, 지사에서는 이를 달성하기 위한 계획 위주로 작성하는 방식.


보통은 이 두 가지 방식이 혼합되어 쓰이는데, 그 과정에서 본사와 지사는 매년 밀고 당기는 협상을 치열하게 반복한다. 너무 낙관적인 목표를 설정할수록 이를 달성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에 지사는 매출 목표를 가급적 보수적으로 설정하려는 경향이 있는 반면, 본사는 주주가치 제고를 위해 최대한 공격적인 목표를 제시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매출뿐만 아니라, 비용 예산을 놓고도 치열한 공방이 벌어진다. 지사는 충분한 예산을 확보해두길 원하지만, 본사는 불필요한 비용을 최대한 줄이려고 한다. 그렇게 해야 이익률이 높아진다.


이런 협상과 논의는 보통 몇 달에 걸쳐서 진행되기 일쑤이고, 그 절정은 본사와 지사 간의 대면 리뷰 미팅이다. 4~5시간씩 걸리기도 하는 이런 미팅은 남북정상회담에 비견될 정도로 긴장감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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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해의 경영은 예년과 달리 유난히 빡세고 힘들었다. 회사가 주요 제품의 특허 만료로 인한 매출 급감을 앞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본사가 사업부 인수, 합병, 매각 등 대규모 구조조정을 여러 차례 진행했던 이유이기도 했다.


Business Planning에서도 이런 기조가 반영되었다. 회사는 예년과 달리 Bottom-Up이 아니라 Top-Down 방식으로 목표를 일방적으로 결정했다. 시장의 평균 성장률을 감안할 때 지나치게 높은 목표치가 내려왔고, 이에 최선을 다해서 저항(?)했지만 결과는 딱히 바뀌지 않았다.


그렇게 정해진 목표치를 받아 들고서, 나는 며칠 동안 스트레스를 받았다. 회의실 벽에 수많은 숫자와 도표를 그려가며 매출을 단 몇 % 라도 더 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지 고민했다.


하지만 "말레이시아항공 17편. 탑승객 298명. 생존자 0명”이라는 숫자와 오열하는 유가족들의 모습을 뉴스에서 보는 순간, 내가 하던 모든 고민들이 갑자기 깃털보다 가볍고 하찮게 느껴졌다. 오히려 그런 것들 때문에 극심한 스트레스를 느끼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부끄럽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우리가 안고 살아가는, 아무리 커다랗게 보이던 문제들도 대부분 ‘삶과 죽음’ 앞에서는 그 무게를 잃고 만다. 어쩌면 우리는, 오직 살아있음만으로도 기뻐하고 감사해야 할지도 모른다.


(2025년 2월)



Cover Image: https://unsplash.com/@ramonkag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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