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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입력이 반복되면 나쁜 삶이 된다

Sales Forecast (매출 추정)

by 함태진
<2015년 8월 13일>
싱가포르에 온 지 거의 한 달이 되었다. (중략) 내 사무실은 다른 여느 임원들의 사무실과 같은 크기이지만, 나름 corner office인지라... 사무실의 반을 차지하는 통유리 벽을 통해서는 바쁜 싱가포르의 사거리 모습이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


2015년, 나는 새로운 회사로 이직했다. 쉽지 않은 일이었다. 10년 가까이 몸담으면서 나름 성공적으로 경력을 키워왔던 회사를 떠나야 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곳에서 많은 동료들과 정이 깊이 들었기에 더욱 마음이 무거웠다.


힘든 것은 가족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특히 이직과 함께, 말레이시아에서 싱가포르로 이사를 해야 했기 때문에 무엇보다도 아이들에게 미안했다. 미국에서 한국으로, 한국에서 말레이시아로, 그리고 다시 말레이시아에서 싱가포르로... 아이들은 학교에서 친구들을 사귀고 정을 붙일만하면 이사하는 일을, 아빠 때문에 다시금 반복해야 했다.


새로운 회사는 이전 회사처럼 미국에 본사를 둔 글로벌 제약회사였다. 그래서 이전 회사와 새로운 회사 사이에는 기본적으로 비슷한 점들이 많았다. 하지만 한 가지 큰 차이가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두 회사의 미래 성장 예측치의 차이였다. 이전 회사는 주요 제품들의 특허만료가 임박하면서 매출의 큰 폭의 하락이 예상되고 있었던 반면, 새 회사는 매년 20% 이상 성장하고 있었고 향후 몇 년간 성장은 더 가속화할 것으로 예상되었다.


매출하락 때문에 비용절감을 가장 큰 생존전략으로 내세우던 회사에서, 매출성장을 더 가속화시키기 위한 투자에 전력을 다하는 회사로 옮기고 나니, 전반적인 업무 분위기가 확연히 다르고 일하는데도 더 신바람이 났다.



의약품의 매출 전망 (Sales Forecast)


옮긴 회사에서 내가 맡은 일은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의 상업화 전략과 마케팅을 총괄하는 지역임원의 역할이었다. 한 나라의 사업 전체를 관리하던 지사장 역할을 하다가, 다시 특정 부서의 임원 역할로 돌아온 것이 조금 아쉽기도 했지만, 단일 국가가 아니라 거대한 아태지역 전체를 관리하는 일이라는 점에서는 새로운 업무에 대한 기대감도 컸다.


회사는 다수의 유망한 신약을 개발하고 있었고, 나는 이들 제품의 출시전략을 수립하기 위해 해당 신약들의 매출전망치를 추정하는 'Sales Forecast' 작업을 종종 해야 했다.


이를 위해서는, 보통 아래의 단계들을 거쳐야 한다.


1. 유병율: 가장 먼저, 신약의 치료대상이 되는 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들의 숫자를 추정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각종 역학자료를 참고한다.

2. 진단율: 질병을 앓고 있는 모든 사람이 병원에 가서 정확한 진단을 받는 것은 아니다. 병원에 가는 것을 꺼리거나 미루는 사람들도 있고, 설령 병원에 방문하더라도 정확한 진단을 받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이들을 감안해서, 궁극적으로 정확한 진단을 받게 될 환자들의 숫자를 추정한다.

3. 치료율: 질병이 진단되었다고 모두가 치료를 받는 것도 아니다. 부작용 등을 우려해서 치료를 거부하거나, 경제적인 이유로 치료를 포기하는 경우 등도 있다. 이런 분들의 비율을 추정해서 환자 숫자 계산에서 반영해야 한다.

4. 시장점유율: 질병이 정확히 진단되고 또 치료를 받기로 한 환자들 중에서, 몇 %의 환자들이 해당 의약품으로 치료받게 될 것인지를 추정한다.

5. 치료유지율: 치료를 받다가 부작용이나 기타 여러 가지 이유들로 인해서 중간에 치료를 중단하는 경우가 생길 수 있다. 이런 비율 역시 추산해서 전체 환자 숫자에 반영해야 한다.

6. 환자당 사용량: 계산된 전체 환자의 숫자에, 환자 1명당 사용하게 될 약물의 용량을 곱해서 해당 의약품이 각 연도별로 얼마나 쓰일 것인지 전체 예상사용량을 산출한다.

7. 약가: 사용량과 더불어서 의약품의 가격도 추정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의약품의 가격은 출시한 이후에 약가 관련 규제 혹은 경쟁상황 등으로 인해 점차 감소하는 경향이 있다. 이것을 최대한 정확히 연도별로 예측해야 한다.

8. 매출 추정: 위와 같은 과정을 통해서 산출한 각 연도별 예상 사용량과 예상 가격을 곱하면 매출 추정을 완성할 수 있다.



쓰레기를 넣으면, 쓰레기가 나온다

“Garbage In, Garbage Out”


이처럼 매출을 추정할 때는 무수히 많은 데이터 혹은 가정(assumption)이 반영된다. 문제는 이 가정들 중에서 단 몇 개만이라도 현실과 동떨어질 때는, 그 결과가 완전히 엉망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이다. 아무리 예측 모델을 정교하게 만든다고 해도, 입력하는 데이터가 부실하다면 그 결과는 신뢰할 수 없는 무의미한 숫자에 불과한 것이 되고 만다.


그래서 데이터 과학이나 비즈니스 분석에서는 이런 표현을 흔히 쓴다.

“Garbage In, Garbage Out.”
“쓰레기를 넣으면, 쓰레기가 나온다.”


모든 가정을 철저히 검증하는 것은 너무도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 학술 논문을 열심히 찾아서 분석하고, 정부 혹은 공신력 있는 기관의 통계를 활용하는 것은 기본이다. 비싼 예산을 들여서 시장조사를 실시하기도 하고, 의료전문가들과의 인터뷰를 진행하기도 한다.


unsplash.com/@pathdigital




그런데 생각해 보면 이것은 단순히 데이터 과학 혹은 비즈니스의 문제만은 아니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어떤 면에서 사람은 결국, 자신이 소비하는 것들의 총합이다. 그것이 신체적으로든, 감정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말이다. 예컨대,


신체: 우리 몸에 건강한 음식을 먹으면, 건강한 몸을 얻는다. 반대로 불량식품이나 정크푸드를 먹으면? 몸이 망가진다.

감정: 긍정적이고 바른 인생관을 가진 사람들과 어울리면, 그 에너지가 우리에게도 긍정적인 영향을 끼친다. 반대로 부정적이고 불평 가득한 사람들과 어울리면? 나도 그렇게 변한다.

정신: 매일 가짜 뉴스나 음모론, 극단적인 주장과 자극적인 콘텐츠만 소비하다 보면,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점점 왜곡된다. 편견과 잘못된 정보에 익숙해지면? 우리의 판단력도 근본적으로 흐려질 수밖에 없다.


지금처럼 부정적이고, 자극적이며, 왜곡된 정보가 넘쳐나는 시대일수록, 우리는 무엇을 받아들일지 더욱 신중해야 한다. 미디어 알고리즘이 편견과 편향을 강화하고, 거짓정보에 우리를 무차별적으로 노출시킬 수 있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쓰레기 같은 정보가 우리에게 반복적으로 입력되게 내버려 둔다면, 결국 우리도 '쓰레기'가 될 수 있다.


비즈니스에서처럼, 좋은 인생 역시도 결국 좋은 입력값에서 시작된다. Garbage In, Garbage Out.


(2025년 3월)



Cover Image: unsplash.com/@alesiaska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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