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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실의 최후통첩이 남긴 후폭풍

GxP (Good OOO Practice)

by 함태진
<2017년 5월 4일>

대만지사에 대표로 새로 임명되고 나서, 바쁘지만 보람찬 첫 한 주를 보냈습니다. (중략) 여러분이 보여주신 놀라운 집중력 덕분에, 온갖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주요 과제들이 착실하게 진행되고 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 모두에게 감사와 축하의 인사를 전하고 싶습니다.

這是我開始擔任台灣總經理的第一周,而過去的幾天非常的忙碌與充實… 儘管遇到了所有的挑戰,你們依然表現出的強烈韌性使得大多數重點工作可以持續順利的進行。我想利用這個機會致上我的感激與祝賀。


2017년 초 어느 날, 싱가포르의 사무실. 나의 상사였던 T가 다급하게 나를 찾았다.

“태진. 대만에 큰일이 났어.”
“무슨 일이요?”
“이번에 정기감사에서 심각한 문제들이 발견되었어. 본사에서 조만간 지사장과 사업본부장을 해고할 거야. 그리고 3개월 뒤에 감사를 다시 실시해서 그때까지 문제가 획기적으로 개선되지 않으면, 대만에서 사업을 아예 철수할 거래.”
“정말요??”
“그래서 말인데, 네가 이번에 대만을 맡아서 이 문제를 좀 해결해 줬으면 해.”
“...”


갑작스러운 제안이라 당혹스러웠다. 당장 큰 불이 나서 집이 홀라당 타버릴지도 모르는데, 불구덩이에 뛰어들어 진화작업을 하라는 것처럼 들렸기 때문이다. 자칫 잘못했다가는 나에게도 큰 불똥이 튈 수 있다고 생각했다.


반면 지사장 역할을 다시 할 기회가 왔다는 것에 대해서는 약간의 욕심이 나기도 했다. 이전 회사에서 지사장 역할을 충분히 길게 하지 못했던 것이 아쉽기도 했던 차였다. 게다가 대만이라는 새로운 나라를 직접 경험해 볼 수 있다는 것도 좋은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고민 끝에 T의 요청을 수락했다. 그리고 그 즉시 대만으로 날아갔다.


대만의 직원들은 갑작스러운 사장 교체에 당황하고 불안해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나는 본능적으로 그들을 다독이며 조직을 차근차근 안정화시키고 싶었다. 하지만 시간이 많지 않았다.


3개월이 채 남지 않은 시간 동안 챙겨야 할 것이 많았다. 다음번 감사에서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있도록 많은 규정들을 재검토하거나 새롭게 수립해야 했고, 또 이를 직원들이 완벽하게 숙지하게끔 교육해야 했다.


그게 다가 아니었다. 비록 감사 준비가 조직의 명운을 가를 가장 중요한 일이기는 했지만, 그 와중에도 비즈니스는 계속 돌아가야 했다. 연초에 세워두었던 여러 가지 사업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흐트러진 조직의 전열을 다시 가다듬을 필요가 있었다. 노력과 자원을 집중할 우선순위를 직원들과 함께 정의하고 공유했다. 또, 직원들이 자신감과 즐거움을 되찾을 수 있게 하려고도 애썼다.




내부 감사 (Internal Audit)


일정 규모 이상의 대부분의 기업들은 회사 내부에 독립적인 감사기능을 수행하는 조직을 두고, 전 세계의 지사 및 사업장들에 대해 주기적으로 감사를 실시한다. 이를 통해서 회사가 지켜야 하는 다양한 내부통제시스템이 적절하게 갖춰져 있고, 또 이를 규정에 맞게 제대로 시행하고 있는지를 점검한다.


회사에 리스크를 조금이라도 줄 수 있는 분야는 모두 감사의 대상이라고 볼 수 있고, 대개 감사의 결과는 발견된 문제의 심각성, 조직에 미치는 영향, 그리고 시정 조치의 긴급성에 따라 ‘중요 (Critical)’, ‘주요 (Major)’, 혹은 ‘경미 (Minor)’로 분류한다.


지사가 정기감사의 대상이 되면 지사장들은 그 결과에 대해 신경이 예민하게 곤두설 수밖에 없는데, 이는 곧 감사결과가 지사장의 관리 능력에 대한 평가로도 연결되기 때문이다. 보통 ‘경미’한 사항 몇 가지만 지적받는 경우 전체적으로 우수한 결과라고 할 수 있는 반면, ‘중요’한 지적사항은 한 개라도 있으면 크게 문제가 될 수 있다.


그래서 감사가 공식적으로 종료되기 전에, 발견된 지적사항들을 놓고서 ‘중요’, ’주요’, ’경미’ 중 어떤 등급으로 꼬리표를 달 것인지를 놓고 감사팀과 지사장 간에 치열한 논쟁이나 협상이 벌어지기도 한다. 실제로 이런 일을 두고 지사장과 감사팀이 얼굴을 붉히고 씩씩거리며 크게 설전을 벌이는 모습을 본 적도 있다.


사정이 이러하다 보니, 새로운 국가에 파견이 결정된 지사장이 현지에 부임하기 전에 미리 해당 지사에 대한 감사를 먼저 요청하는 경우도 있다. 이럴 경우, 새로 취임하는 지사장으로서는 지사의 숨어있던 문제들을 파악하고, 전임자의 오류들을 승계하지 않고 새롭게 시작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GxP (Good OOO Practice)


감사의 대상이 되는 분야 중에는, 어떤 산업분야에 있는 회사이건 상관없이, 거의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분야들이 많다. 예컨대 부패방지 및 윤리규정 준수, 재무보고 및 회계처리의 정확성, 개인정보보호 및 데이터 보안, 공정경쟁규약 및 반독점법 준수, 노동법 및 근로기준법 준수 여부 등등이다.


하지만 이와 달리 제약회사에만 요구되는 독특한 규정들도 있는데, 이를 통칭해서 "GxP"라고 부른다. GxP는'Good OOO Practice"의 약자로, 의약품의 안전성과 효능 및 품질을 보증하기 위해 제약회사가 반드시 지켜야 하는 일련의 규정들을 가리킨다. 대표적으로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GMP (Good Manufacturing Practice, 우수 제조 관리 기준) - 의약품 안전성과 유효성을 보장하기 위해 지켜야 하는 생산 과정 전반에 걸친 품질 관리 시스템

GDP (Good Distribution Practice, 의약품 유통 관리 기준) - 의약품의 보관, 운송, 취급 등 유통과정에서 품질을 유지하기 위해 지켜야 할 지침

GVP (Good Pharmacovigilance Practice, 약물감시 관리 기준) - 의약품이 시판되는 동안 부작용 보고, 안전성 정보 수집 및 평가, 위험 관리 등 안전성 모니터링을 위해 지켜야 하는 절차에 관한 기준

GCP (Good Clinical Practice, 임상시험 관리 기준) - 임상시험의 계획, 수행, 모니터링, 기록, 분석 및 보고에 관한 국제적 윤리 및 과학적 품질 기준

GLP (Good Laboratory Practice, 비임상시험 관리 기준) - 의약품의 비임상시험의 신뢰성을 보증하기 위해 지켜야 할 시험의 계획, 수행, 모니터링, 기록, 보고 등 전 과정에 대한 품질 관리 시스템


unsplash.com/@amstram



감사(Audit)가 끝난 후 드는 생각들


"감사(監査)"라는 이름으로 한바탕 전쟁을 치르고 나면, 큰 숙제를 끝냈다는 안도감과 후련한 마음이 찾아온다. 그리고 조금 더 시간이 지나 차분해지면, 나름 그 속에도 우리의 삶과 커리어에 적용할 수 있는 교훈이 몇 가지 숨어 있다는 생각이 든다.


1. 기본 원칙을 지켜야 한다

감사는 특별한 것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당연히 지켜야 할 원칙과 규정이 제대로 지켜지고 있는지를 확인하는 것일 뿐이다. 응당 지켜야 할 원칙을 잘 지키고 있다면, 아무것도 걱정하거나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우리 삶도 마찬가지다.


2. 작은 실수도 방치하면 큰 사고로 이어진다

작은 실수라도 바로잡지 않고 방치하다 보면 중대한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특히나 생명을 다루는 의약품의 경우, 제조 공정에서의 사소한 실수가 수백, 수천 명의 환자에게 피해를 줄 수도 있다. 인생에서도 "별일 아니겠지"라고 넘긴 순간이 돌이킬 수 없는 문제가 되기도 한다. 사소한 방심과 태만을 경계해야 한다.


3. 과정이 중요하다

예전에 한 유명 제약회사가 허가된 제조방법을 지키지 않은 의약품을 유통시키다가 적발되자, 방법은 다르지만 결과물은 동일하다며 항변한 적이 있다. 하지만 과정의 투명성과 적법성이 없다면, 그 결과물 자체도 신뢰할 수가 없다. 일에서건 개인의 생활에서건, 올바른 태도로 올바른 단계를 밟아나가는 과정이 최선의 결과를 만드는 가장 확실한 지름길이다.




예정대로 3개월 뒤에 감사가 다시 이루어졌다. 다행히도 '중요(Critical)' 혹은 '주요(Major)' 지적사항은 하나도 없었다. '경미(Minor)'한 지적사항만 3개 있을 뿐이었다. 본사에서 나온 감사팀은 짧은 시간 내에 괄목할만한 개선이 이루어졌다며 놀라움을 표했다. 모두가 기뻐했다.


지사가 통째로 문을 닫을 수도 있다는 불안감과, 생존권의 위기에까지 내몰리면서 받았던 직원들의 자부심에 대한 상처가 조금은 만회가 되는 것처럼 보였다. 어려운 고비를 넘기고 나자, 직원들은 더 똘똘 뭉쳐서 놀라운 성과들을 하나 둘 연이어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그해 연말, 한해를 결산하는 회사의 모임은 완전히 잔칫집 분위기였다. 우리는 함께 이루어낸 성과를 하나씩 나열해 가며 다 같이 축하했고, “Ready to Fly”를 함께 외치며 이듬해는 더 크게 날아오르자고 서로를 다독였다. 다 함께 우스꽝스러운 파티복장을 하고서 크게 웃었고, 영화 ‘첨밀밀’의 주제곡을 한국어로, 중국어로 같이 목청껏 부르기도 했다.


그때를 떠올리면 지금도 입가에서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2025년 3월)



Cover Image: unsplash.com/@milan_malko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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