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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는 자들을 위한 죽음 수업

빌려쓰는 몸

by 함태진

한 달쯤 전부터 오른손이 조금 불편하다. 딱히 통증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손가락 관절마디가 저릿한 느낌이 들어 나도 모르게 반대편 손으로 꾹꾹 누르고 있곤 한다.


그 모습을 몇 차례 목격한 아내가 걱정이 되었는지, 나에게 병원에 가보라고 잔소리를 했다. 하지만 바쁘다는 핑계로 차일피일 미루다가 드디어 동네 정형외과를 찾았다.


손 모양과 각도를 달리 해가며 엑스레이를 여러 장 찍었다. 나중에 진료실에서 의사가 내 손 뼈의 사진을 컴퓨터 화면에 띄워서 보여주는데, 가슴 엑스레이 사진은 많이 보았지만, 내 손의 뼈 모양을 그렇게 자세히 본 것은 처음이었다.


장비의 성능이 좋아서 그런 것인지, 뼈 끝부분의 주름이나 질감이 엑스레이 사진임에도 마치 실제로 꺼내놓은 뼈를 직접 보는 것 같은 느낌마저 들어 신기한 듯 사진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얘들이 50년 넘게 날 위해 수고해 준 애들이구나...’


문득 내 손의 뼈들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미안함도 조금 밀려왔다.

‘내가 글을 쓰고, 밥을 먹고, 운전을 하고, 무거운 물건을 들 때마다, 너는 늘 조용히, 반항 한번 하지 않고 내가 시키는 대로 일해왔구나.’



최근에 법의학자 이호 교수가 쓴 <살아있는 자들을 위한 죽음 수업>이라는 책을 읽었는데, 거기에 이런 글귀가 있었다.


”우리가 지닌 이 몸조차도 딱 한순간만 소유할 뿐이다. 죽은 이들을 보다 보면 더욱 그런 생각이 든다.“


어쩌면 내 몸은 내 소유물이라기보다, 내가 사는 동안 그저 잠시 나에게 맡겨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막상 우리는 ‘내 몸’이라 부르지만, 사실 그건 살아있는 동안만 잠시 빌려 쓰는 것일 뿐, 언젠가는 반납하고 떠나야 하는 대상이기 때문이다.


내 손뼈의 엑스레이 사진을 바라보며 나도 모르게 속으로 중얼거렸다.

“수고 많았어. 고마워.”




내가 나 자신을 아끼고 사랑하는 것은 회복탄력성의 출발점이라고 한다. 그리고 나를 사랑하는 마음은 다른 사람을 더 온전히 사랑하기 위한 밑거름이기도 하다.


앞으로 내 몸에 좀 더 자상하고 친절하게 살아야겠다. 그러다가 언젠가 이 몸을 조용히 돌려줄 날이 오게 되면, 그때 “그동안 빌려주셔서 감사했습니다. 최대한 나름 아껴가며 잘 썼습니다”라고 인사할 수 있도록 말이다.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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