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리어, 비교, 그리고 성장의 리듬
어제 업계의 촉망받는 인재 A를 만나, 차 한잔 나누며 대화하는 소위 “커피챗”을 했다. 30대 후반, 여러 기관과 회사를 거치며 나름 탄탄한 경력을 쌓아온 전문가였다. 사실 그는 지금 우리 회사에서도 찾고 있는 인재의 조건을 고스란히 갖추고 있었기에, 나는 테이블 너머로 그를 더 유심히 바라보았다.
처음엔 가벼운 일상 대화로 시작했지만, 우리는 이내 A가 갖고 있는 커리어에 대한 복잡한 생각들을 이야기 나누게 되었다.
그의 고민과 감정들을 요약하자면 대략 다음과 같았다.
첫째, 이제는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라는 자각.
둘째, 그 변화가 현 직무 안에서 계속 진화할 것이냐, 혹은 재무나 마케팅 같은 새로운 영역으로 확장되어야 하는 것이냐는 선택의 문제.
셋째, 비슷한 연차의 동료나 업계 지인들과의 비교 속에서 느끼는 일종의 초조함.
특히 마지막 이야기를 나눌 때, 나는 문득 A의 콧등이 시큰해지고 눈가가 촉촉해지는 듯한 인상을 받았다. 비교는 누구에게나 예민한 화두이지만, 그에게는 그것이 감정의 중심축처럼 느껴졌다. 아마도 그 무게가 꽤 오래 누적되어 있었던 모양이다.
나는 A에게 몇 가지 이야기를 조심스럽게 건넸다.
“그 나이 즈음에는 누구나 커리어에 대한 불안을 겪어요. 저도 그랬습니다.”
“경험을 넓히는 건 물론 중요하지만, 방향성 없는 확장은 오히려 커리어를 흐리게 만들 수 있습니다.”
“빠르게 승진하는 것이 반드시 축복은 아닙니다.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주어진 자리는 때로는 짐이 되기도 하니까요.”
A와의 커피챗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그와의 대화를 머릿속으로 복기하면서 몇 가지 생각들이 더 떠올랐다.
하나는, 사람들이 다른 사람의 커리어를 부러운 눈으로 볼 때면 종종 마치 모든 것이 처음부터 계획한 대로 되었을 거라고 착각한다는 점이다. 하지만 누구에게나 현실은 냉혹한 법이다. 차곡차곡 쌓인, 흠결 없어 보이는 이력 뒤에조차도, 종종 예상하지 못했던 사건과 우연이 있었던 경우가 허다하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겪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고민과 불안, 실패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있었기 마련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것을 알지 못하고 그저 남의 커리어가 부러워 보이기만 할 뿐이다.
또 하나는, 커리어의 압축 성장이 항상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첫 직장인 CJ에서 한 번도 누락되지 않고 누구보다 빠르게 승진하고 과장 2년 차에는 임원급에 해당하는 보직을 맡으면서 동기들보다 빠르게 직위가 올라갔을 때, 나는 스스로 꽤 뿌듯해하며 짜릿함을 느끼기도 했었다. 하지만 그 자리에 앉고 나서야 깨달았다. 그 역할을 수행하기엔 내 경험과 내면의 준비가 턱없이 부족했다는 것을. 사람들은 내 자격을 의심하며 수군거렸고, 나 자신조차도 내가 내리는 결정 하나하나에 불안해하며 흔들려야 했다.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마주한 과도한 책임은, 축복이 아니라 커다란 스트레스였고 혼란 그 자체였다.
끝으로, 남과의 비교는 결코 나를 성장시키지 않는다. 비교는 판단을 흐리고, 방향을 흔들 뿐이다. 각자에게는 자신만의 리듬이 있는 법이다. 나만의 속도로 가는 것이 결국 가장 나다운 커리어를 만드는 길이라는 것을, 우리는 종종 여러 번 넘어지고 다치고 난 뒤에야 배우게 되곤 한다.
부디 A가 어제 우리의 대화를 계기로,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조금 더 명확히 바라볼 수 있기를, 그리고 타인의 기준이 아닌, 스스로의 삶과 가치에 기반해서 다음 발걸음을 선택하길 바란다. 그의 선택을 진심으로 응원한다.
(2025년 7월)
Photo Credit: Unsplash.com @frank_leuderalber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