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가발전형 인재 (Self-Starter)
초창기 임원이던 시절, 인재평가 미팅에 처음 들어갔을 때였다.
회사 내에서 일 잘한다고 알려진 직원들의 프로필이 스크린에 띄워지고, 임원진들의 의견이 오가고 있었다. 그때 한 부서장이 내뱉은 말이 사장의 심기를 거슬렀다.
"직원 A는 어느 모로 봐도 탁월한 인재입니다. 그런데 회사가 그에게 충분한 동기부여를 하고 있는지 의문입니다."
그러자 사장이 미간을 찌푸리며 단호하게 말했다.
"동기란 회사나 다른 사람이 부여하는 게 아닙니다. 스스로가 부여해야 하는 겁니다. 스스로 동기부여도 못하는 사람을 어째서 인재라고 부릅니까?"
나는 그 발언에 적잖이 놀랐다. 다소 냉정하게 들리기도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 말의 의미를 곱씹게 되었고, 결국 동의하게 되었다. 회사가 줄 수 있는 건 기회와 보상일 뿐, 그것을 동기로 삼을지 말지 여부는 결국 개인의 선택이기 때문이다.
심리학의 '자기 결정이론(Self-Determination Theory, SDT)'에 따르면 사람에게는 활동 자체에서 즐거움을 얻는 내재적 동기와 외부 보상에서 비롯되는 외재적 동기가 있다. 이 가운데 내재적 동기가 삶의 만족도에 더 큰 영향을 미친다.
그리고 내재적 동기를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세 가지 기본 욕구가 충족되어야 한다.
자율성(autonomy): 스스로 선택하고 통제할 수 있다는 느낌
유능감(competence): 발전하고 있고 능력을 발휘하고 있다는 느낌
관계성(relatedness): 타인과 연결되고 소속되어 있다는 느낌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면, 직장인들이 일에서 얻고자 하는 것들 역시 대체로 이 세 가지 범주 안에 있다.
자율성 —> 경제적 안정 혹은 가족에 대한 부양
유능감 —> 직업적 성장
관계성 —> 사회적 인정이나 사회에 대한 기여
직장을 단순히 취미로 다니는 사람도 있겠지만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사람들), 우리 대부분은 먹고살기 위해,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경제적으로 안정된 삶을 위해 일한다.
이것은 언뜻 보면 ‘외재적 동기’처럼 보이지만,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 깊은 ‘내재적 동기’로 전환될 수도 있다. 대표적인 방법이, 자신을 단순한 직원이 아니라 “가족을 위한 대리인” 혹은 “‘나’라는 인재를 대리하는 에이전트”라고 정의해 보는 것이다. 이를 경제학이나 조직학에서는 ‘대리인 이론(Agency Theory)’이라고 부른다.
스스로를 ‘가족이나 자기 자신의 삶을 지켜주는 대리인’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일을 대하는 느낌이 달라진다. 책임감과 용기가 더 커지는 것이다. 예를 들어, 직장에서 불편한 상황을 맞닥뜨려도, 감정에 즉각적으로 반응하기보다 한번 더 생각해 보며 전략적으로 대응하게 된다. 혹은 회사를 상대로 연봉협상 등을 할 때, ‘가족‘ 혹은 '나'라는 '나의 고객'을 대신해 더 과감한 요구도 할 수 있게 된다.
젊고 유능한 직원들일수록 새로운 것을 배우고, 더 큰 무대에서 인정받으며, 전문성을 확장하는 과정에서 에너지를 얻는다. 하지만 '회사가 나를 성장시켜야 한다"는 생각은 착각이다. 회사는 직원을 성장시키기 위해 존재하는 곳이 아니다. 다만 성장하기 좋은 여건을 제공할 수 있을 뿐이다. 성장을 위한 열쇠는 회사에 맡길 것이 아니라, 일하면서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본인이 주도적으로 모색해야 한다.
어떤 프로젝트를 맡을 때면 "이 경험에서 어떤 역량을 키워 다음 커리어 단계로 이어지게 할 수 있을까"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보고서를 작성하는 단순한 일도 “더 짧고 설득력 있게 요약하고 정리하는 법”을 훈련하는 기회로 삼을 수 있는 것이다.
내가 하는 일이 누군가의 삶에 영향을 주고, 사회에 긍정적 변화를 만든다는 확신은 일의 피로도 이겨내게 할 정도로 힘이 크다. 하지만 이를 위해서 내가 하는 일이 반드시 거창한 사회공헌활동이나 대단한 직무여야 할 필요는 없다.
예컨대, 병원에서 아픈 환자를 치료하는 것은 의사이지만, 그 병원의 청소부나 주차관리원을 포함한 모든 사람들도 마찬가지로 자신이 하는 일이 궁극적으로는 아픈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는 소중한 일이라고 의미 부여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다른 이들의 평가보다, 스스로 찾아낸 일의 의미에 집중해야 한다. 내가 정말로 사회에 해악을 끼치는 조직에 속해 있지 않은 이상, 깊이 생각해 보면 자신이 지금 하는 일이 사회에 어떤 의미가 있고 어떤 기여를 하고 있는지를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발견하는 순간, 일은 또 다른 에너지를 얻는다.
조직은 스스로 동기부여할 줄 아는 사람을 높이 평가한다. 누군가가 끊임없이 채찍질하거나 보상하지 않아도, 스스로 목표를 정하고 움직일 줄 아는 사람을 기업에서는 흔히 ‘self-starter’, 혹은 ‘자가발전형 인재(self-driven)’라고 부른다. 이들은 외재적 동기만이 아닌, 내재적 동기로 스스로를 움직인다.
회사는 직원들을 위한 다양한 외재적 동기, 즉 보상체계나 복지제도 등을 만들어야 하지만 제 아무리 좋은 회사라 해도, 마음속의 불꽃은 내가 붙이지 않으면 꺼지기 마련이다. 아무리 유능하더라도 외부의 인정과 보상에만 기대는 사람은 한계가 있다.
식당에서 물은 셀프이듯이, 직장에서 동기부여도 셀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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