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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가 완벽할 필요가 없는 이유

<서울자가김부장>에게 배우는 부자관계 발전의 비결

by 함태진

1.

휴가를 내고 부산에 내려갔다. 광안리 바닷가의 한 카페에서 광안대교가 정면으로 보이는 커다란 통창 앞에 있었는데, 맞은편에 아버지와 아들로 보이는 두 남자가 마주 앉아 있는 모습이 계속 눈에 들어왔다. 아버지는 오십 대 후반이나 육십 대 초반쯤, 아들은 이십 대 후반이나 삼십 대 초반쯤 되어 보였다.


두 사람의 대화 내용은 잘 들리지 않았지만, 아들은 회사나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하는 듯했고, 아버지는 인생과 일, 행복 같은 주제로 이야기하는 것 같았다. 평일 낮, 남녀 커플이 앉을 법한 예쁜 자리에 부자(父子)가 마주 앉아, 그것도 두 시간이 넘도록 편안하게 대화를 주고받는 모습은 정말이지 낯설고도 인상적이었다.


문득 ‘언젠가 나도 우리 아들과 저렇게 나란히 앉아 데이트하듯 이야기를 나눌 날이 올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아들은 너무도 착하고 속이 깊지만, 아직은 10대 특유의 ‘쿨함’이 잔뜩 남아 있어 내가 뭘 물어보면 주로 “네”, “아니요” 정도의 단답형으로 짧게 대답한다. 나는 아들과 카페에서 담소 나누는 내 모습을 잠시 상상했다가 울컥했다. (요즘 확실히 에스트로겐 과다상태다.)


2.

며칠 전에 최종화가 나온 화제의 드라마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 부장 이야기>에 나오는 주인공 50대 가장과 그의 아들 ‘수겸이’가 떠올랐다. 수겸이는 명문대를 다니는 성실하고 착한 아들이다. 하지만 드라마 초반에 보면 아버지 김 부장은 아들이 못 미더운 듯, ‘서울 자가에 대기업’이라는 자기 세대의 성공 기준을 은근히 아들에게 강요했고, 아들은 그런 아버지의 생각이 절대적으로 옳은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면서 힘들어한다.


두 사람의 관계가 회복되는 과정의 계기는 다름 아닌 아버지의 위기다. 늘 가족 앞에 당당한 모습만 보이기 위해 아등바등했던 김 부장은 직장에서 밀려나고, 퇴직금 사기를 당해 재정적 기반을 잃고, 결국 집까지 팔면서 그가 붙들고 있던 ‘서울 자가에 대기업’이라는 자존심의 토대가 무너진다. 그리고 그제야 자신이 항상 당당하고 완벽한 모습만 보여주려 했던 태도가 오히려 가족과의 소통을 어렵게 했다는 사실을 마주하게 된다.


부모가 사랑하는 자녀에게 자신이 체득한 성공방정식을 가르쳐주려 하고, 또 자녀에게 든든한 울타리 역할을 하려는 것은 너무도 이해가 가지만, 그것은 오히려 벽이 될 수 있다. 부모도 틀릴 수 있고, 실패할 수도 있고, 회사에서 밀려날 수 있다. 사실 자녀들도 커가면서 이미 부모가 완벽하지 않다는 사실을 눈치채기 때문에, 오히려 그것을 지나치게 감추는 태도는 오히려 부모와 자녀 간의 신뢰를 약하게 만들 수도 있는 것이다.


3.

생각해 보면 가정에서만 그런 것도 아니다. 멋져 보이고 싶고, 잘 난 사람으로 보이고 싶은 욕구는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그런 태도는 관계가 건강하게 형성될 여지를 줄인다. <당신과 나 사이>에서 정신과의사인 김혜남 작가는 이렇게 말했다.

“누구나 부족하고 허술한 면이 있고 약한 구석을 가지고 있기에 우리는 서로를 필요로 하는 것이고, 서로의 존재에 대해 감사할 수 있다. 만약 완벽한 인간이 있다면 그는 어떤 관계도 필요로 하지 않을 것이다.”

맞는 말이다.


카페에서 보았던 그 아버지는 어쩌면 오래전부터 자신의 약점이나 실수를 자연스럽게 드러내며 아들과 지냈을지 모른다. 항상 옳을 수는 없다는 사실을 스스로 인정하기 때문에, 아들에게 자신의 생각을 말하더라 강요하지 않고, 아들의 의견에도 귀 기울이는 태도가 몸에 배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런 방식이 두 사람의 관계를 오래도록 편안하고 단단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없다. 그래서 완벽해 보이는 사람에게는 오히려 아이러니하게도 신뢰가 잘 생기지 않는다. 또 스스로 완벽하다고 믿거나 완벽한 척하는 사람에게는 거리가 느껴지기도 한다. 결국 좋은 사람, 유능하고 멋진 사람처럼 보이려는 가면을 내려놓고, 그냥 ‘나’로 사는 법을 배우는 것이 자신에게도, 그리고 나와 가까운 사람들에게도 좋은 일이다. 다만 머리로는 알겠는데, 행동으로 옮기기가 쉽지 않은 게 또 현실이다.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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