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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함태진 Dec 16. 2019

초심 - 올랜도(Orlando)에서

무언가를 다시 시작해야 한다면

올랜도 (Orlando). Disney World, Universal Studios, SeaWorld 등 세계적인 놀이공원이 가득한 꿈의 도시. 오랜만에 이곳을 다시 찾았다. 휴가라면 얼마나 좋을까만 그건 아니고 미국 혈액학회 (ASH: American Society of Hematology) 연례 학술대회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이곳 Orlando에는 ASH 같은 대규모 국제학술행사를 유치할 수 있는, 미국에서도 몇 안 되는 초대형 컨벤션 센터가 있어서 이런 큰 행사가 종종 여기에서 열린다. 전면 가득 큰 유리로 되어있는 다소 독특한 건물 모양을 바라보자니 내 옛날 기억이 소환되는 느낌이다.

2005년, 그러니까 14년 전, 이곳에서 열렸던 미국 임상 암학회(ASCO: American Society of Clinical Oncology)에 참석하기 위해 Orlando를 처음 방문했었다. 7년의 직장 생활을 뒤로하고 뭔가 새로운 일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으로 미국 유학을 결행했던 나는, 당시 1학년 과정을 막 마친 후 여름방학 동안 다국적 제약회사의 항암제 담당 Global Marketing 팀에서 인턴으로 일하는 중이었다. Orlando에서 학회가 열리는데 함께 가지 않겠느냐는 팀장님 말에 왠지 마음이 들떴던 기억, 막상 와서는 학회장과 호텔만 왔다 갔다 하다가 다시 집으로 돌아가면서 약간 허탈해(?) 했던 기억, 그리고 어마어마한 미국의 학회 규모에 압도당했던 기억 등이 지금도 생생하다.

당시 30대 초반이었던 나는 안정적이던 대기업을 떠나 미지의 세계에 발을 디뎌 놓은 터였고, 앞으로 과연 어떠한 경력을 쌓아갈 수 있을지에 대한 불확실성에 다소 불안하고 초조해하고 있었다. Internship이 끝나갈 무렵에는 한국지사의 사장님이 미국에 출장을 왔다가 나를 면담하고 갔었는데 그때 회사는 나를 채용할 것을 고려하면서 내가 앞으로 어떤 식으로 경력을 개발하기 원하는지 물었었다. 생각해보면 그때 나의 대답은 어쩌면 그분이 기대했던 것에 비해 무척 작고 소박한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당시의 나는 그저 미국에서 직장 경험을 한번 쌓아보고 싶다는 것 외에는, 그 이상 내가 얼마나 더 멀리 얼마나 더 높이 갈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 그야말로 ‘no idea’였기 때문이다. 그 무렵 경력개발에 대한 조언을 주던 학교 선배 한 명은 나에게 그래서는 안된다며 “aim high (목표를 높게 가지라)”하라고 얘기했었지만 그 시절의 나에게는 그 말의 의미가 잘 와 닿지 않았었다.



진로에 대한 고민을 하며 다국적 기업에서의 career의 첫걸음을 내딛던 그 시절. 그 무렵의 추억이 14년 만에 다시 돌아온 Orlando에서 새록새록 떠오르며 약간의 감상에 젖게 되는 것은 지금의 내가 그때의 나와 많이 달라져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어쩌면 오히려 그때의 상황과 지금의 상황이 묘하게 비슷한 구석이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달라진 점이라면 그 시절의 내가 넘치는 패기에 비해 경험이 너무 부족했던 반면 지금은 그 비율이 다소 역전되었다는 것? 지나온 시간 동안 다행스럽게도 다양한 경험과 과분한 기회들을 많이 누릴 수 있었고 당시에 내가 꿈꿨던 것 이상의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 참 감사한 일이다.

반면 14년 전의 나와 지금의 내가 비슷한 점은 우리 둘 다(?) 진로의 불확실성과 다시 한번 마주하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 회사가 동종 업계의 다른 회사에 팔린다는 충격적인 발표가 연초에 있고 나서 나는 올 한 해 내내 인수합병을 위한 지사 차원의 준비과정을 관리해 왔었고 이제 그 임무의 끝이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살면서 당장 내일 어떤 일이 있을지도 확실히 모른다는 점에서 불확실성은 늘 공기와도 같이 우리를 감싸고 있는 것이긴 하지만, 20년 넘게 직장생활을 하면서 회사를 딱 두 번 옮겨본 나로서는 새로운 진로에 대해 이런저런 생각을 다시금 해보게 되는 지금의 상황이 분명 자주 있는 일은 아니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Orlando에 돌아와서 예전 그 시절 내가 품었던 고민을 떠올리는 것은 뭔가 내가 원점으로 돌아와 다시 출발선상에 선 것 같은 느낌도 들게 한다.

어디로 갈 것인가? 무엇을 할 것인가? 내가 잘하는 것은 무엇이고 내가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 다행히도 14년 전과 달리, 지금의 나는 지나온 시간 속에서 내가 경험해 온 일들로부터 배운 교훈이 중심을 잡아주고, 지금처럼 내가 길 한가운데 멈춰 서서 어디로 가야 할지 고민하게 될 때 방향타가 되어주는 느낌이다.

큰 꿈을 꾸기 (Aim High). 남들 따라 하지 않기 (Think Different). 포기하지 않기 (Keep Trying). 즐길 줄 알기 (Have Fun). 감사할 줄 알기 (Be Grateful)… 지금 다시 이곳 Orlando에서 ‘초심 (初心)’으로 돌아가야겠다고 다짐해본다.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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