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함태진 Nov 10. 2022

Philadelphia 단상

Wharton Reunion & Vulnerability

미국 대학에서는 5년 단위로 졸업생들이 모이는 행사를 하나보다. ‘Reunion’이라고 부르는데 한국으로 치면 ‘홈커밍(home coming)’ 같은 건가? 아무튼 나는 MBA를 마친 지가 올해로 16년 되었는데, 이번에 학교에서는 우리 학번을 포함해서 코로나 때문에 작년에 대면으로 reunion 행사를 할 수 없었던 학번들을 모아서 Wharton Reunion "Reimagined”라는 이름으로 뒤늦은 행사를 열어주었다. 웬만해서는 이런 이벤트에 참여할 엄두를 못 내었을 나는 마침 이러저러한 일들로 미국 동부에 출장 갈 일이 있던 터라 참가 신청을 하게 되었다.


와튼스쿨(The Wharton School)은 항상 전체 학생들의 30-40% 정도가 외국인 학생으로 구성되지만, 막상 reunion 행사에는 아직 코로나의 영향 탓인지 외국에서 방문한 친구들은 그리 많지가 않고 대부분의 참가자가 미국에 살고 있는 친구들이었다. 덕분에 나는 인도, 일본, 필리핀 등에서 온 친구들과 함께 “가장 멀리서 찾아온 동문”이라며 참가자들의 박수를 받기도 했다.


출국하기 전에 한국에 있는 동문들에게도 혹시 reunion 행사에 참가할 예정인지를 물었는데 뜻밖의 대답을 들었었다. 일단 아무도 안 가는 것은 물론이려니와, 미국의 사교문화가 학교 다닐 때도 충분히 힘들었기 때문에 이제 와서 그것을 굳이 다시 겪고 싶지는 않다는 것이었다. 나는 학교에 다닐 당시 이미 애 딸린 30대, 그것도 소위 ‘토종’ 한국 중년 남자였는지라 ‘파티(party)’로 대표되는 미국의 사교문화가 적응하기 쉽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나와 달리 다른 친구들은 나보다는 훨씬 더 그런 문화를 편안하게 즐긴다고 생각했었는데 사실 그게 아니었나 보다. 의외였다.




Reunion의 공식행사는 토요일 하루였지만, 각지에서 졸업생들이 모여드는 목요일 저녁부터 분위기는 달구어지기 시작했다. WhatsApp(우리로 치면 카톡)에 “Class of 2006” 동문 단톡방이 생겼고, 미리 도착한 친구들끼리 술집이나 레스토랑에서 만나자는 약속들이 정신없이 잡히기 시작했다. 주로 학교 다닐 당시 요즘 말로 “인싸"였던 친구들이 지금도 단톡방의 대화를 주도하며 약속들을 만들어 갔는데, 다행히 나도 친하게 지내던 친구 P, S와 함께 저녁에 만나기로 미리 약속해 둔 터라 ‘어느 그룹에 끼어서 밥을 먹나’ 하는 고민을 덜 수 있었다.


P와 S는 나중에 합류한 B와 함께 내가 와튼에서 얻은 손에 꼽는 "lifelong friends (평생 친구)"들이다. 모두 미국애들이고 졸업 후에 대면으로는 거의 처음 다시 만나다시피 한 것이었지만, 보자마자 헤어졌던 형제, 자매를 만난 듯 마음 한편이 따뜻해지는 진심 어린 포옹을 나눌 수 있었다. 내게 그런 친구들이 있다는 사실이 새삼 자랑스럽고 내 자신이 대견하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그리고 절친인 P, S, B와 함께 있다 보니 다른 많은 친구들과도 다시 자연스럽게 재회할 수 있어 좋았다.


Reunion의 하이라이트는 늦은 밤까지 이어진 “Pub Reimagined”라는 이름이 붙은 행사였다. “Pub”은 학교 다닐 때 매주 수백 명의 학생들이 넓은 홀에서 피자와 음료를 즐기며 시끄러운 음악 속에서 네트워킹하던 행사였는데, 그 추억의 행사를 재현한 것이었다. 예전 학창 시절 때도 그랬지만 시끄러운 음악 속에서 수백 명의 사람들이 집단 최면에라도 걸린 것처럼 끊임없이 누군가를 붙잡고 이야기 나눌 때 내뿜는 소음과 에너지는 실로 엄청났다. 한국 동문 친구들이 힘들어한 미국 사교문화의 대표적인 모습이 이런 것이기도 하다.



그 자리에 있는 동안은 나도 혼자 바보같이 멀뚱 거리며 서 있지 않으려고 끊임없이 새로운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큰 소리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잘 모르는 사람과 인사하며 흥미 있는 대화를 나누려 애쓰는 것만으로도 진이 빠진다. 거기다 고막이 떨어지도록 시끄러운 가운데 모국어도 아닌 언어로 이야기해야 하는 것은 더더욱 고역이다. 무슨 말인지 잘 알아듣지 못하는 경우가 태반이지만, 그렇더라도 못 알아듣는 티를 내기보다는 다 알아들은 것처럼 고개를 끄덕이거나 남들 웃을 때 눈치껏 큰 소리로 함께 웃기도 한다. 나름 그런 환경에서 생존하기 위해 습득한 나의 노하우다.


새벽 늦게까지 이어진 Pub을 뒤로하고 다음날 아침, 몇몇 친한 친구들과 헤어지기 전에 마지막 브런치를 함께 하기로 했다. 다들 나처럼 목소리가 완전히 쉬어 있어서 우스웠다. 모두들 Pub에서 소리 꽤나 질렀었나 보다.


간밤의 일들을 이야기 나누다가 B가 의외의 말을 했다. “나 사실 어제 그런 분위기는 좀 싫었어. 십수 년 만에 친구들 만났는데, 우리가 이제 이팔청춘도 아니고 좀 차분하게 그동안 서로 살아온 이야기들을 듣고 싶지, 거기서 노래하고 춤출 것은 아니었잖아?” 그러자 S가 보탰다. “나는 너무 시끄러워서 누가 내 귀에 대고 큰 소리로 말해주지 않으면 뭐라고 하는지 알아들을 수도 없었어. 그래서 거의 대부분의 대화는 그저 알아듣는 척 고개를 끄덕이거나 분위기 봐 가며 웃는 척하거나 했던 거 같아.”


B와 S는 둘 다 미국인 친구들이다. 나는 그들이 둘 다 전날 밤에 너무 편안하게 다른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을 보았었기에 그 둘의 이야기가 무척이나 뜻밖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사실 그 둘이 하는 말은 정확히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이기도 했다. ‘오호라, 그게 나만 그랬던 게 아니었구나.’




와튼에 다니는 동안 많은 외부 연자의 강연을 들었는데 그중에 Keith Ferrazzi라는 저술가이자 기업가가 했던 “Vulnerability helps build relationship quickly.”라는 말은 내 뇌리를 떠나지 않던 말이다. 우리말로 “취약성은 관계를 빨리 형성하게 도와준다” 정도로 번역될 수 있을까? 사람은 자신의 내면의 나약한 면을 숨기려는 것이 본능이지만, 사실 자신의 나약함을 보여주는 것은 오히려 상대방으로 하여금 나에 대한 경계나 오해, 의심 등을 내려놓게 도와줘서 관계의 형성에 도움이 된다는 얘기다.



15년 만에 (아니, 정확히는 16년 만에) 다시 만난 친구들은 배경도, 국적도, 하고 있는 일들도 모두 너무들 달랐지만, 그래도 묘하게 비슷한 구석들이 있다는 느낌을 주었다. 그게 무엇일까 Philadelphia를 떠나는 내내 생각해 보았는데, 아마 그것은 vulnerability와 관련 있었던 것 같다. 보통 와튼스쿨 출신이라고 하면 떠 오르는 이미지는 ‘유능’이나 ‘성공’ 같은 것일 텐데, 사실 내가 이번에 다시 만나 개인적으로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던 친구들의 대부분은 그들의 삶 속에 ‘승승장구’만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 개인의 삶으로서든 professional career로서든 각자 어려움과 굴곡이 있었다. 그런데 그런 점들을 약점이라 생각하지 않고 가감 없이 당당하고 담담하게 이야기하는 모습은 오히려 그들이 더 강인해 보이고 더 호감이 느껴지게 했다.


미국에 살면서, 특히 학교나 직장에서 “Be Yourself” 하라는 말을 많이 들었었다. “내”가 아닌 다른 어떤 사람의 이미지를 나에게 투영시키려 하지 말고, 나 자신의 있는 모습 그대로를 당당하게 보이라는 의미이다. 내가 와튼을 졸업한 이후 지난 16년 동안 살아오면서 항상 그렇게 했었다고 자신 있게 말하지는 못하겠다.


짧았던 Reunion 행사에서 예전의 절친들을 만나고 돌아서면서, 무엇보다도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런 내 모습을 부끄러워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학교에 돌아와서 옛 교훈을 다시금 되새긴 셈인가.


"Be yourself, everyone else is already taken. (당신 자신이 되어라, 다른 사람의 자리는 이미 차 있다.)"

-Oscar Wilde(오스카 와일드)-


(2022년 11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