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4월 20일 (목요일), 맑음
최근에 연구개발 부서에서 좋은 연구결과들이 많이 나왔다. 축하도 할 겸 팀원들 격려도 할 겸 밥 한번 먹자고 했더니 해당 부서 팀장이 쏜살같이 회사 근처의 샤부샤부 식당을 예약한다. 역시 밥 사준다고 하면 동작이 전광석화처럼 빠르다. 평균 연령 30대 초반의 젊은 연구원들 10여 명이 식당 테이블에 둘러앉아서 시끌시끌 신나게 대화하며 만들어내는 소음이 참 듣기 좋다.
맛있는 음식을 앞에 두고서 이야기는 최근에 휴가를 다녀온 직원의 휴가지에서 있었던 이야기로 시작해서 결혼을 앞둔 직원의 결혼 준비 뒷 이야기 등으로 옮아가다가 인공지능 이야기에 이르렀다. 그 순간 내 눈이 반짝했다. 안 그래도 요즘 한창 챗GPT와 노는데 맛을 들인 나인지라, 우리 직원들한테도 언젠가 인공지능 활용법을 좀 가르쳐줘야겠다고 생각했던 터였기 때문이다.
나: "여러분, 챗GPT 써봤어요?" (별로 안 써봤겠지?)
직원들: "네~ 물론이죠!"
나: (엇, 그래? 의외로군) "아, 써 봤구나. 그걸로 메일 교정도 하고, 문서 요약도 하고 할 수 있는데, 그건 알아요?"
직원들: "네~, 당연하죠!"
나: (좀 당황하며) "하하하 알고들 있구나 ^^;;"
직원 1: "대표님, chatGPT 말고 chatPDF는 아세요?"
나: (더 당황하며) "아니요. 그게 뭐예요?"
직원 2: "PDF문서를 업로드한 다음에 문서에 대한 내용을 대화하듯이 물어보고 답을 들을 수 있는 도구예요. 논문 같은 것 내용 파악할 때 엄청 좋아요."
나: (돌 깨지는 소리) "아... 그런 게 있어요?"
직원 3: "ㅎㅎㅎ 대표님 모르셨구나. 그럼 Quillbot은 아세요?"
나: (땀을 삐질거리며) "아... 아니요, 몰라요... 그건 또 뭐예요?"
직원 4: "그럼 Perplexity 는요?"
직원 5: "혹시 Consensus는 아세요?"
나: "아니... 사실 난 챗GPT 밖에 몰라요. 지금 말한 것들이 뭔지 좀 가르쳐주세요 ㅠㅠ."
요즘 정기적으로 나가는 어떤 모임에서 한 교육학자로부터 "초역전의 시대"라는 표현을 들었었다. '초연결의 시대' '초융합의 시대' '초지능의 시대' 등등 '초OO의 시대'라는 말은 많이 들어봤지만 '초역전의 시대'는 또 처음 들어본다고 생각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그 표현은 연자가 직접 지어낸 말이라고 한다. 자식이 부모보다, 사원이 임원보다 똑똑한 세상이 되었기에 기성세대가 젊은 세대에게 배워야 하는 시대라는 뜻이라는데 생각해 보니 그리 틀린 말이 아니다.
챗 GPT 좀 써봤다고 얄팍한 지식으로 직원들을 가르치려고 들었다가 거꾸로 우리 직원들이 나보다 얼마나 더 똑똑한지를 절감했던 것처럼, 집에서도 이제는 아이들에게 물어보는 것이 빠른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서준아, *** 하는 법 좀 가르쳐 줘"
"서현아, ***은 어떻게 하는 거야?"
한때는 나도 소위 '테크세비 (tech-savvy)'한 사람이었는데 이제는 아이들을 따라 잡기도 힘들다. 때로는 아이들한테 물어봐도 설명이 좀 복잡하고 길어지면 당최 무슨 소리인지 이해를 못 하고 마는 경우도 있다. 가끔 팔순이 넘으신 어머니가 핸드폰의 기본적인 기능조차 잘 몰라서 나한테 물어보시면 답답해서 한숨이 나오곤 하지만, 따지고 보면 아이들이 보기에는 나도 매한가지인 셈일 테다.
혹자는 태어날 때부터 정보화기기에 둘러싸여 태어난 아이들을 ‘디지털 네이티브 (Digital Natives)'라고 부르면서 그들은 우리 같은 기성세대, ‘디지털 이미그런트(Digital Immigrants)’와는 출발선상에서부터 다르다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가 아이들에게 혹은 청년세대들에게 물어보고 배워야 하는 것은 꼭 디지털 정보기기와 관련된 것들만은 아니다. 아이들이 자라면서 '얘가 이런 것도 할 줄 알아?' '이런 생각도 해?' 하며 놀랬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듯이, 사회에서 젊은 청년들의 새로운 시각이나 통찰력 있는 의견에 깜짝깜짝 놀랄 때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특히 그들은 기성세대에 비해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아이디어가 번뜩이고, 다양성과 변화에도 더 포용적인 듯하다.
다만 아쉬운 것은, 고등학생이 된 아들내미는 그 나이 또래 남자아이 특유의 '쿨함 (aka. 말수 적음)' 때문에 좀처럼 길게 말하는 것을 듣기가 힘들고, 회사의 젊은 직원들은 직장상사 앞에서 자기 생각을 말하는 것을 불편해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그들의 거침없는 생각을 원하는 만큼 많이 접하기가 힘들다. 그래서 그들의 이야기를 더 많이 듣고 그들에게서 더 많이 배우려면 더 자주, 더 끈질기게 물어봐야 한다. 그리고 마침내 그들이 입을 열었을 때는 중간에 말 끊지 말고 그들의 말을 진심으로 잘 들어야 한다.
초역전의 시대... 챗GPT한테도 물어봐야 하지만, 젊은 세대에게도 더 많이 물어봐야 하는 세상이 되었다. 이래저래 잘 물어보는 것이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