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2월 19일 (일요일), 맑음
한가한 주말 오후, 사람 구경도 좀 하고 책도 읽으면서 빈둥거릴 요량으로 계룡산 자락의 경치 좋은 신상 카페를 찾았다. 경관이 특히나 좋을 것 같은 2층에 올라가니 아니나 다를까 빈자리가 별로 없다. 잠시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다행히 창가의 꽤 괜찮은 자리가 비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 아싸!
하지만 냉큼 앉자마자 그 자리가 비어있었던 이유를 금세 알 수 있었다. 천장에 달린 온풍기에서 머리 바로 위로 더운 바람이 쏟아지는 자리였던 것이었다. 혹시 온풍기를 끌 수 있을까 하고 스위치를 찾아 주위를 두리번거렸지만 없다. 에고, 아깝지만 할 수 없지. 나는 다른 자리를 찾아 옮겨 앉았다.
잠시 후 중년의 한 아주머니가 2층으로 올라오더니 나처럼 창가의 빈자리를 발견하고는 그리로 향한다. 그리고 잠시 후, 일행 중 한 명에게 머리 위로 손을 휘저으며 뭐라고 이야기한다. 아마도 온풍기 바람이 거슬린다는 얘기일 것이다. 그들도 나처럼 자리를 곧 옮기겠거니 생각하며 보고 있으니 역시나 아주머니가 자리에서 일어난다. 하지만 잠시 어딘가로 자리를 비웠던 아주머니는 곧 제자리로 돌아와 그 자리에 그대로 앉는다. 그리고 천장의 온풍기는 어느새 꺼져있다.
아마 아주머니가 1층 프런트에 가서 온풍기를 꺼 달라고 했나 보다. 어떤 이는 ”아줌마의 힘“이라며 웃어넘길 수도 있겠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나를 포함해서 그곳에 있던 대부분의 사람들은 똑같은 상황에서 문제를 그저 회피한 반면 그 아주머니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움직인 셈이다. 모르긴 해도 직원에게 가서 ‘불편해서 그러는데 혹시 저 자리의 온풍기를 꺼줄 수 있느냐?’라고 묻지 않았을까?
예전에 함께 일했던 임원 Y가 내게 자주 했던 말이 있다.
"Taejin, asking is free, right? (태진, 물어보는 것은 돈이 들지 않아, 그렇지?)"
CFO였던 그는 외부의 업체나 이해관계자들을 상대할 때 종종 자신이 원하는 것을 소소하게 덧붙여서 얻어내었는데, 그럴 때마다 그는 은근 자랑스러워하며 나에게 보고하곤 했다. 그리고 그의 비결은 단지 그저 ‘그렇게 해도 되는지를 상대방에게 물어보는 것‘이었다고 한다.
사실 나도 그렇지만 많은 사람들이 간단한 부탁이나 요청하는 것을 본능적으로 불편해한다. ‘상대방이 나를 까다롭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상대방이 나를 구차하다고 싫어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무의식적으로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물어봐서 손해 나는 경우는 많지 않다. 오히려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자신에게 별다른 해가 되지 않는 한 기꺼이 다른 사람을 도와주려고 한다. 내 경험상 그랬다.
사실 이건 내가 비싼 돈 주고 MBA 하며 배운 고급진(?) ‘협상의 기술‘ 에도 있는 내용이다. <어떻게 원하는 것을 얻는가 (원제: Getting More)>라는 책으로 소개된 바 있는 와튼스쿨 다이아몬드 (Stuart Diamond) 교수님의 ‘협상학’ 강의에서는 복잡한 협상이론을 다루지만, 결국 핵심은 내가 원하는 것을 상대방이 줄 수 있는지 ‘잘 물어보라’는 것이다. 그것이 상대방에게는 그리 어렵지 않고, 손해가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이기 때문에.
그래서 ‘물어보는 것’은 원하는 것을 얻는 매우 중요한 방법 중의 하나다. 물어보는 것은 공짜다. 행여나 물어봤는데 안된다고 하면? 밑져야 본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