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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함태진 Feb 11. 2023

신경 끄기의 기술

2023년 2월 10일 (금요일), 흐림

회사 그만두고 백수 생활을 즐기고 있는 A. 밤낮없이 주말도 없이 일에만 몰두하고 살았는데, 어느 날 문득 좀 쉬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란다. 회사를 떠난 지 꽤 되었기에 그동안 잘 지내고 있었는지도 궁금하고, 또 그토록 원하던 '쉼'이라는 것이 어떤 느낌인지도 물어보고 싶어서 안부인사를 건넸다가 차 한잔을 같이 하게 되었다.


"그래, 쉬어보니 좀 어때요?"


일에서 해방되자마자 처음 든 생각은 '이제 진짜 잘 좀 쉬어야겠다'였단다. 그래서 여행도 가고, 배우고 싶었던 것도 배우는 등등의 계획을 알차게 세우고 그것들을 한동안 열심히 수행(?)했단다. 하지만 한참을 그러고 났더니 쉬는 것조차 '제대로 잘' 하지 못할까 봐 전전긍긍하고 있는 자신이 조금씩 보이더란다. 그냥 아무 계획 없이 멍 때리며 시간을 보내게 되면 불안해하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 것이다. 그리고는 점점 '내가 왜 이렇게까지 하고 있을까?'라는 자문을 하게 되었단다. 지금은? 이제는 '그냥 아무것도 하는 것 없이 하루가 지나가도 괜찮아'라고 스스로를 다독이고, 또 조금씩 그것을 편하게 받아들이는 단계로 접어들고 있다고 한다.


얘기를 듣고 보니, 꽤 심오하다. 보리수 밑에서 득도하는 수준까지는 아니더라도, "쉼"이란 게 나름의 깨달음을 주었구나 싶어서 나쁘지 않은 경험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A의 이야기가 이어졌다. 생각해 보니 자신은 회사에서 일을 할 때도 항상 그랬단다. 주어진 일을 완벽하게 잘 해내야 한다는 강박이 무의식 속에 늘 자리 잡고 있었던 것 같단다. 그래서 퇴근을 해도, 주말에 집에 있을 때에도 업무와 관련된 생각이 머릿속을 계속 맴돌고, 안 보려고 일부러 꺼두었던 노트북이나 핸드폰도 어느새 열어서 다음날 출근하면 해야 할 일에 대해 이것저것 고민했었다는 것이다. 그러니 쉬어도 쉬는 것 같지가 않았겠지.




해외 출장 중에 서점에 들렀다가 제목에 욕이 적힌 책을 발견하고는 깜짝 놀랐던 적이 있다. 그것도 서점에서 가장 잘 보이는 곳에 버젓이 전시된 책이었다. '이게 뭐지?'라는 호기심에 잠시 집어 들고 읽었다가 그 거침없는 직설에 매료되어서 책을 사서 내리 다 읽어버렸었는데 책 제목이 <The Subtle Art of Not Giving a F*ck>이었다. 나중에 이 책이 한국에도 번역되어 들어왔는데 한국판의 제목이 <신경 끄기의 기술>이다. 번역 한번 신박하게 잘했다.


이 책에서 말하는 '신경 끄기(Not Giving a F*ck)'란 그저 매사에 열정 없고 무관심하게 사는 것을 말하는 게 아니다. 오히려 인생에서 신경을 써야 할 일에 제대로 신경을 쓸 수 있도록, 그렇지 않은 일에는 신경을 끔으로써 에너지를 아끼라는 것이다. 그리고 신경을 꺼야 할 대표적인 것들로는 모든 일을 완벽하게 해내려는 생각이나 내 주변에 일어나는 일에 대한 무한한 책임감, 실패나 실망을 용인하지 못하는 것 등이 있다고 한다. 대체로 성격이 철두철미하고 책임감이 강한 사람들이 잘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들 아닐까?


"대표님은 저보다 훨씬 오랜 기간 쉬지 않고 일하셨는데, 어떻게 그렇게 하세요? 비결이 있으신가요?"


A의 허를 찌르는 갑작스러운 질문에, 잠시 허공을 바라보다가 웃으며 내가 대답했다.


"글쎄, 나는 신경 끄고 사는걸 잘하나 봐요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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