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5월 10일 (수요일), 맑음
Google의 CEO, 순다르 피차이(Sundar Pichai). 요즘 그의 연봉이 뉴스를 통해 사람들 입방아에 오르내리고 있다. 2022년 한 해 동안 받은 보상의 총액이 무려 2억 2,600만 달러나 된다고 하는데 한화로 치자면 약 3,000억 원에 달하는 금액이다. 어마어마하다. 사실 그는 나와 세 가지 공통점이 있는데 (1) 나이가 같고, (2) 같은 학교에서 MBA를 했고, (3) 직책이 CEO다. 그렇다면 내 연봉도 그를 닮았으면 얼마나 좋을까. 아니, 그의 100분의 1만 닮았어도... ^^;;
"인도 최대의 수출품은 CEO"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요즘은 글로벌 기업의 CEO 자리에 인도인들이 넘쳐난다. Google의 순다르 피차이뿐만 아니라 마이크로소프트, 아도비, IBM, 트위터, FedEx, MasterCard 등의 CEO도 모두 인도인이다. 내가 예전에 몸 담았던 Eli Lilly에서도 CEO까지는 아니더라도 본사의 중역 자리에는 인도인들이 다수 포진해 있었다. 도대체 글로벌 회사에서 인도인들이 그렇게 잘 나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내가 경험한 바로는 인도인들은 똑똑하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말이 많았다. 한국인의 관점에서는 다소 과하다 싶을 정도로. 어떤 면에서는 공격적이라고 느껴질 때도 있었다. 미국에서 유학할 때 수업시간에 보면 인도인 친구들은 항상 발표도 가장 많이 하고 질문도 가장 많이 하는 부류였다. 수업의 대부분이 토론식으로 진행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들의 존재감은 가히 장난이 아니었다. 사실 머리 좋은 것으로만 치자면 한국인들도 누구 못지않지만, 상대적으로 과묵한 한국 학생들에 비해 적극적으로 질문하고 자기 생각을 표현하는 것에 능숙한 인도인 친구들은 때로는 넘사벽이라는 느낌마저 들었던 것 같다. 그러면 인도인들의 이런 특성은 어디에서 기인한 것일까?
최근에 한 방송사에서 인도공과대학(IIT, Indian Institute of Technology)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방영하기에 유심히 보게 되었다. IIT는 Google이나 마이크로소프트의 CEO를 포함해서 세계적으로 크게 성공한 인도인들의 상당수를 배출한 인도 최고의 명문대학이다. 인도는 카스트제도라는 계급에 따른 차별이 아직 엄연히 존재하는 나라이지만 이 학교의 졸업생들만은 글로벌 회사에서 서로 데려가려고 하기 때문에 IIT 합격은 본인은 물론 그 집안 전체까지 삶이 바뀔 수 있는 신분상승의 기회로 여겨질 정도라고 한다. 그러니 학교의 위상이 얼마나 높은지, 그리고 여기에 들어가기 위한 경쟁이 얼마나 치열할 것인지는 상상을 초월하지 싶다.
그래서였을까. 나는 방송에서 비치는 학교와 학생들의 겉모습에 적잖이 놀라고 말았다. 의외로 너무나 초라해 보였던 것이다. 학교 건물들은 한국의 삐까번쩍하는 대학 캠퍼스와는 비교할 수가 없을 정도로 낡고 지저분해 보였고, 학생들의 옷차림도 허름하기 짝이 없었다. 하지만 잠시만 생각해 보면 이해도 가는 것이, 사실 인도는 국민 1인당 GDP가 아직 몇천 불 밖에 안될 정도로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방송에서는 학생들이 생활하는 기숙사를 보여주는데 어찌나 부실해 보이는지 심지어는 기숙사 방안에 책상조차 없어서 방에서 공부를 하려면 침대 위에 올라앉아서 해야 한다고 했다. 어쩌면 인도인들의 다소 과해 보일 정도의 적극성과 강한 자기주장은 그토록 어렵고 열악한 환경 속에서 치열하게 공부하며 살아남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몸에 밴 것일지도 모른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인 말콤 글래드웰(Malcolm Gladwell)의 책 <다윗과 골리앗>에는 자수성가한 부모들이 갖는 딜레마가 나온다. 크게 성공하여서 자녀들에게 무엇이든 해 줄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이들이 정작 자녀에게 줄 수 없는 것이 한 가지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결핍의 경험’이다. '결핍'이란 겉보기에는 커다란 제약이자 방해물 같지만, 그것을 극복하는 과정을 통해 배우게 되는 삶의 가치들은 궁극적으로 성공적인 삶을 사는데 커다란 도움이 되는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자수성가한 부자들은 정작 그것을 자신의 자녀들에게 물려줄 수가 없다는 것이다. 말 그대로 돈주고도 살 수 없는 것인 셈이라 아이러니하다. 책에서는 이를 "약점의 유리함, 강점의 불리함 (Advantages of Disadvantages, Disadvantages of Advantages)"이라고 표현한다.
어쩌면 인도 학생들이 보다 도전적이 되고 그 결과 더 성공적이 되는 것은 '약점의 유리함 (Advantages of Disadvantages)' 덕분일지도 모른다. 반면 한국에서는 부와 사회적 지위가 자신의 노력이나 도전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소위 '금수저'로 태어났느냐 '흙수저'로 태어났느냐에 따라 이미 결정되었다고 생각하고, 그래서 금수저이건 흙수저이건 주어진 것에 안주하려는 경향이 알게 모르게 몸에 배어 버린 것은 아닐까?
그래도 다행인 것은 사람들이 '개천에서 용이 나오는 시대는 지났다 ‘라고들 하지만 여전히 주위를 둘러보면 어려운 환경을 꿋꿋하게 이겨내며 그 결과 일과 삶에서의 행복과 성공에 이르는 사람들도 아직 많이 볼 수 있다는 점이다. 확률의 문제일 수도 있겠지만, 앞으로도 그런 사람들을 계속 많이 볼 수 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