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함태진 Jun 29. 2023

사장님의 생각이 자꾸 오락가락 바뀌는 이유

2023년 6월 28일 (수요일), 장맛비

‘윙~~’

알고 지내는 다른 회사 사장님들과 식사를 하던 중이었다. A 대표님의 핸드폰이 진동했다. 화면에 뜬 발신자 이름을 확인한 한 A 대표님은 밥 먹던 숟가락을 내려놓더니 서둘러 밖으로 나가셨다. ‘아마 중요한 전화인 모양이지?’


한참이 지나 음식이 다 식을까 봐 걱정할 즈음 돌아온 A 대표님은 특유의 유쾌한 표정으로 다시 자리에 앉으며 말했다.

“아이고, 미안합니다. 하하하“


전화를 한 사람은 회사의 주식을 보유하고 있는 개인 주주였다고 한다. 최근에 주식시장 상황이 좋지 않아서 그런지 비슷한 전화를 종종 받는다고도 했다.


“요즘 주가가 좀 출렁이기는 하는데, 이게 회사 내부 사정과는 아무 상관없이 단순히 외부적인 요인 때문에 그러는 거라 ㅎㅎㅎ...”


A 대표님은 별일 아니라는 듯 호방하게 웃으며 말했지만 나는 다시 술잔을 채우는 그의 모습에서 왠지 긴장하고 염려하는 표정이 살짝 스치는 것을 본 것 같았다.

 

회사 내부적으로 아무 문제가 없어서 전략이며 앞으로의 계획도 바꿀 것이 없다고는 하지만 ‘행여나 상황이 계속 안 좋아지면 어떻게 해야 할까’, ‘만에 하나 현재의 상황진단이 틀렸으면 어떻게 할까’ 등등을 생각하며 마음이 복잡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항상 밝고 듬직한 모습만을 보여주는 존경하는 업계 선배님인데, 오늘따라 그의 어깨가 왠지 무거워 보이고 짠하게 느껴졌다.




이런저런 모임들을 통해 많은 회사의 경영자들과 교류하고 있지만, 그분들 중에 흔히 “사장님”하면 떠올리는 자신만만함과 카리스마가 넘치는 분들은 의외로 그리 많지 않다. 오히려 늘 조마조마해 보이고 마음도 여려 보이는 분들이 더 많은 것 같다. <사장으로 산다는 것>이라는 책에서는 “리더의 새가슴에 대해 뭐라 할 일은 아니다. 새가슴이 되어야 리더가 되는 것인지 리더가 되어야 새가슴이 되는 것인지…” 라며 사장님들 중에는 ‘새가슴’인 분들이 많다고 하는데 내가 체감하는 바도 그와 비슷하다.


사실 부서장이나 스태프로 일할 때는 주로 업무 지시를 받는 입장이다 보니, 아무래도 상사가 확신을 가지고 일관성 있게 일을 추진하는 것이 좋았다. 만일 상사가 오늘 하는 이야기가 지난번에 했던 이야기와 다르면 ‘무슨 리더가 저렇게 오락가락하나’ 싶어서 짜증이 확 나기도 했었다.


하지만 막상 의사결정권자가 되고 보니 내 가슴은 새가슴이 되고 내 귀는 팔랑귀가 되어 마음이 오락가락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분명히 어제 내 입으로 내뱉었던 말이 있는데도, 밤사이에 보고 듣고 생각하다 보면 ‘그게 아닌 것 같은데…’ 싶어서 생각을 또 바꾸고 싶어질 때도 있다. 하지만 그럴 때는 눈치가 보인다. 맞다. 아무리 사장이라도 눈치가 보인다. 임원의 눈치도 보이고 직원들의 눈치도 보인다. 그러면 ‘아… 생각을 바꿔? 말어?’ 밤새도록 뒤척이며 고민하게 된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 것은 세계 최고 기업의 CEO들도 그렇다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아마존(Amazon)의 설립자 제프 베조스(Jeff Bezos)가 그렇고, 애플(Apple)의 설립자 스티브잡스(Steve Jobs)도 그랬었단다.


베조스는 ‘옳은 판단을 잘 내리는 사람은 생각을 자주 바꾸는 사람들이다’라고 말한다. 그들은 항상 새로운 관점, 새로운 정보, 새로운 아이디어, 또는 자신의 사고방식에 대한 반박이나 도전에도 늘 열려있어서 이미 답을 얻었다고 생각했던 사안에 대해서까지도 끊임없이 다시 생각하고 자신의 생각을 수정한다는 것이다. ("People who were right a lot of the time were people who often changed their minds... The smartest people are constantly revising their understanding, reconsidering a problem they thought they’d already solved. They’re open to new points of view, new information, new ideas, contradictions, and challenges to their own way of thinking.")


애플의 현재 CEO인 팀쿡(Tim Cook)도 창업자 스티브잡스에 대해 회고하면서 ‘그는 하루 전날 바로 자기 자신이 180도 반대되는 이야기를 했었다는 것도 까먹을 만큼 빠른 속도로 생각이 바뀌곤 했다’고 말했다. 만일 내가 잡스의 부하직원 입장이었다면 아마 돌아버렸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팀쿡은 ‘바로 그것이 스티브잡스의 특별한 재능이었고, 그것은 자신이 틀렸다는 것을 인정할 수 있는 용기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He would flip on something so fast that he would forget he was the person taking a 180 degree different position the day before... This is a gift, because things do change. It takes courage to admit that you weren’t right. It takes courage. And he had that.")




펜실베이니아 대학교 와튼스쿨의 아담그랜트(Adam Grant) 교수가 쓴 <씽크어게인 (Think Again)>이라는 책에 따르면 생각이 자주 바뀌는 것은 무지함과 약함의 증거라기보다는 오히려 현명함과 용기의 결과일 수도 있다고 한다. 어떤 분야에 대해 ‘조금’ 아는 사람들은 오히려 스스로의 지식이나 능력을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있고 그러다 보니 이미 머릿속에 박혀버린 얼마 안 되는 지식이나 고정관념을 내려놓기가 쉽지 않은 반면, 정말 지혜로운 ‘고수’들은 이전에 학습이나 경험으로 배운 것들에 얽매이지 않고 빠르게 새로운 관점으로 다시 생각하는 것을 잘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오늘날처럼 변화무쌍한 세상에서는 그렇게 다시 고쳐 생각할 줄 아는 것이 중요한 능력이라고 한다.


자신이 안다고 생각했던 것을 내려놓고 (unlearn) 생각을 바꾸는 것은 (rethink) 정말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이 틀릴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겸손함', 틀렸을 때는 그것을 솔직하게 인정할 줄 아는 '용기', 그리고 틀렸더라도 빠르게 생각을 바꿈으로써 최선의 결정을 내려서 좋은 결과를 내고야 말겠다는 ‘굳은 의지’ 같은 것들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내 고향 부산 영도의 태종대에 가면 모자상(母子像)이 있는 전망대가 하나 있다. 사실 그 자리는 예전에는 ‘자살바위’라고 불리던 곳인데 내가 어릴 때 친구들은 이곳에 관한 한 가지 웃픈 농담을 하곤 했었다. 사람들이 하도 이곳에 와서 목숨을 끊으려고 절벽에서 뛰어내리기에 누군가가 절벽으로 가는 길목에 “부디 다시 생각해 보십시오”라는 팻말을 세워두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어느 날 이곳에서 자살을 하려고 마음먹고 왔던 어떤 사람이 눈앞에 광활하게 펼쳐진 바다를 한참 동안 바라보다가 ‘그래, 힘들더라도 살아내야지 ‘라고 생각을 고쳐 먹고 돌아섰는데 아뿔싸… 그 팻말이 눈에 들어왔다는 것이다. 결국 그는 ’다시 생각해 ‘ 본 끝에 원래 계획대로 절벽에서 뛰어내렸다나 뭐래나…


생각이 오락가락하는 것은 더 좋은 결정을 내리고 싶은 마음의 발로이다. 그리고 지금까지의 내 생각이 틀렸다면 그것을 기꺼이 인정할 용기가 있다는 증거이다.


옛사람들은 나이 40만 되어도 ‘불혹’이라며 '흔들리지 않는다'라고 했건만, 나를 포함해서 한참 전에 40이 넘은 많은 사장님들은 오늘도 밤새도록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며 ‘새가슴’에 ‘팔랑귀’를 달고서 까만 밤하늘을 팔랑팔랑 오락가락 날고 있을지도 모른다. 어디 사장님들만 그러겠는가. 중요한 결정을 앞둔 사람이라면 누군들 그러지 않을까?


누군가 생각이 자꾸 오락가락 바뀐다면 짜증은 나겠지만 그 사람을 너무 미워하지는 말일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