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5월 20일 (토요일), 맑음
볼 일이 있어 방문한 한 건물의 지하주차장. 계단 옆에 비어있는 공간이 있기에 후진하며 주차하는데 갑자기 ‘부-욱!’하고 어딘가 긁히는 소리가 났다.
”헐... 뭐지??“
황급히 내려서 차를 살펴보았다. 이럴 수가. 아까운 내 차 뒷좌석 지붕이 심하게 긁혀 있는 것 아닌가. 우이씨... ㅠㅠ
범퍼나 문도 아니고 어떻게 이런 곳이 긁힐 수가 있나 싶어서 살펴보니 주차공간 옆에는 지상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돌출형태로 나있는데 그 계단의 높이가 차량 지붕높이보다 애매하게 살짝 낮다. 주차하려고 후진할 때 차를 미리 일자로 정렬하지 않고 나처럼 방향을 꺾어서 들어가려 하면 긁히기 딱 좋은 구조인 것이다. 화가 났다.
“아니, 무슨 주차장을 이딴 식으로 만들어놨어?”
내 차도 그렇지만 요즘 차에는 온갖 센서가 여기저기 달려있어서 사실 웬만해서는 주차하다가 어디 일부러 긁으려고 해도 쉽지 않을 정도다. “삐삐삐”하는 경고음은 물론이려니와, 어느 정도 거리 이하로 주변 구조물과 가까워지면 자동으로 브레이크가 걸려서 차가 아예 안 움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무리 온갖 첨단 장치가 있다 한들 그것이 존재하는 모든 위험으로부터 내 차를 100% 지켜줄 수는 없었던 셈이다. 특히 차량의 천장 높이에 있어서 잘 보이지 않는 위험에 대해서는.
“보이지 않는 위험.” 1999년에 개봉했던 스타워즈 시리즈의 제목이다. 그 유명한 루크 스카이워커의 아빠, 아나킨이 어린 시절에 어떻게 오비완을 스승으로 맞아 제다이 기사로 성장하게 되는지에 관한 서사가 담겨있다. (서준이 덕분에 스타워즈 영화는 나도 꽤 어지간히 봤다 ㅎㅎㅎ) 영화의 한국어 제목 ‘보이지 않는 위험’은 원래 제목인 The Phantom Menace(’유령같은 위협‘이라는 의미)의 의역인 듯하다.
보통 사업을 하거나 어떤 큰 일을 하고자 할 때면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고들 하는데 이때 말하는 위험은 보통 어느 정도 예측 가능한 범주에 있는 ‘보이는 위험’인 경우들이 많다. 그래서 이에 대해서는 어떤 종류의 위험이 예상되는지, 또 그 일이 벌어졌을 때 입을 피해의 규모는 어느 정도일지, 그러한 위험을 최소화하거나 회피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이 있는지, 그리고 성공적으로 위험을 회피하고 원하는 목적을 달성했을 때 얻을 수 있는 실익은 무엇인지 등을 미리 꼼꼼하게 따져서 소위 ‘계산된 위험감수 (calculated risk-taking)’를 하는 것이 필요하다.
하지만 살면서 정말 당황스러운 것은 예상하지 못했던, 보이지 않던 위험이 등장했을 때다. 예측가능한 범주를 뛰어넘는 ‘블랙스완(Black Swan)’ 같은 돌발적인 악재는 사실 어떻게 피하느냐를 논하는 것은 부질없는 일이다. 그보다는 어떻게 대처하느냐가 훨씬 더 중요하고, 최대한 침착하게 상황에 맞는 조치를 취하는 유연성과 대범함이 필요할 뿐이다.
그리고 보이지 않는 위험은 대개 달갑지 않지만 때로는 우리에게 예기치 않은 경험과 배움의 기회를 제공하여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만들어 주기도 한다. 혹은 우리가 몰랐던 새로운 발견을 하게끔 해 주기도 한다. 우연한 만남이 인연이 되거나, 페니실린의 탄생처럼 실수나 실패가 의도하지 않은 중요한 결과로 이어지는 소위 세렌디피티(serendipity)도 그런 셈이다.
예전에 재미있게 보았던 <개그콘서트>의 코너 중에 ‘깐죽거리 잔혹사’라는 것이 있었다. 여기에 나오는 엉터리 무림고수이자 조직의 보스는 상대방으로부터 예기치 않게 훅! 들어오는 공격을 막으려 애쓰며 “당황하지~ 않고~!”를 늘상 외쳤었는데, 나는 그 우스꽝스러운 모습이 그렇게 웃기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안쓰럽기도 했었다.
좋든 싫든 위험은 우리 인생의 일부이다. 그것을 다 피해 가기란 불가능하지만, 위험에 대처하는 우리의 태도는 우리가 선택할 수 있다. 그래서 오늘도 외쳐본다.
“당황하지~ 않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