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태진 Oct 22. 2019

“조그만 게 제법이네.”

심학산, 194미터라고 만만히 보면 큰 코 다침

  출판단지 옆으로 심학산이 자리 잡고 있다. 아니 심학산 자락 일부에 출판단지가 자리 잡은 것이라고 하는 게 맞을 것 같다. 해발 194m에 불과해 이걸 산이라고 해야 할지 큰 언덕이라고 해야 할지 헷갈리지만 주변에 산이 없어서인지 꽤나 높아 보인다. 특히 산의 끝자락, 가파른 고개 숨이 차오른다. 정상을 앞두고 아내에게 말했다.


  “조그만 게 제법이네.”

  “여유로운 말투 치고는 너무 헐떡이는 거 아니야?”

  "그냥 조금 거칠게 숨을 몰아쉬는 거야..."

  "그걸 헐떡인다고 하는 거야."


  

  심학산 정상에는 정자가 세워져 있는데 정자 위에 올라서면 한강의 색다른 모습을 볼 수 있다. 거대한 물줄기와 그 웅장한 흐름이 한눈에 보이는데 꽤나 감동적이다. 날씨가 좋을 때는 멀리 인천대교와 강화도, 이북의 송악산까지 보인다고 하는데 지리가 어두워 어디가 어디인지 몰라 찾아볼 순 없었다.

  

  오래전 등산가들을 쫓아다니며 영상 촬영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다. 무거운 카메라를 들고 등산가들을 앞서거니 뒤서거니를 반복하며 산을 뛰어다녀야 하는 고된 일이었다. 더구나 쫓아다녔던 이들은 둘째가라면 서러운 베테랑 등산가들이었다. 그들은 쉬운 코스는 거부한다며 부러 고난의 등산 코스를 자처하기도 하고, 하루에 한 봉우리는 아쉽다며 연속으로 두 봉우리를 오르기도 했다. 원망과 욕설이 입속에 가득했지만 뱉어낸 적은 없었다. 지금 생각하면 일종의 극한 알바가 아니었나 싶다. 당시 한 달에 두 번 혹은 세 번 2년 정도 산악 팀을 따라 등산을 했으니 제법 많은 산을 경험할 수 있었다.

  다행이었던 건 내가 처음부터 등산을 좋아했다는 거다. 산을 왜 오르는지 모르겠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적어도 나는 아니다. 어머니가 태몽으로 미친 듯이 뛰어다니는 망아지를 보셔서 그런 게 아닌가 싶다.


  그렇게 등산을 하고부턴 등산의 매력에 빠져 종종 휴일을 이용해 산을 찾아다녔고, 언젠가 아내를 꼬셔 갈대가 유명하다는 명성산을 간 적이 있다. 한 시간 정도면 충분히 오르내릴 수 있다고 거짓말하고 끌고 올라갔다. 물론 여유롭게 왕복 4시간이 필요한 산이었다. 해발 920미터로 대충 오를만한 코스도 아니었다. 그저 빨리 정산을 밟고 싶다는 마음에 최단 코스를 정해서 올랐다. 물론 최단코스는 최단코스인 만큼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했다. 더구나 오르는 길이 자갈로 되어 있어 사실 초심자가 오르기는 버거운 코스였다. 하지만 늘 체력에 자신 있어하는 자칭 체력장 1급의 아내이기에 이 정도는 가뿐히 오를 수 있을 거라 믿고 강행했다. 결론적으로 아내는 산을 오르다 코피를 흘렸고 나는 죽지 않을 만큼 시달리며 등산을 해야 했다. 물론 산의 정상에선 기쁨을 가장하며 사진을 찍었고 웃는 모습은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심학산은 천천히 산책하듯 올라올 수 있는 둘레길과 단숨에 정상을 정복하고자 하는 이들을 위한 등산길 두 가지 코스를 만들어두었다. 하지만 등산에 자신이 있었던 나는 당연히 힘든 코스를 골랐다. 이런 산 따위 가볍게 비웃어주며 단숨에 올라주겠다고 생각했다. 함께 오르기로 한 아내 역시 끌려온 등산인만큼 최대한 빨리 끝내고 돌아가길 원했다. 또 아무리 힘든 코스라고 해봐야 해발 194미터밖에 안되니 힘들면 얼마나 힘들겠어 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이래 봐도 명성산을 정복한 여자라고 자신하며.

  20분이면 충분할 거라고 만만히 얘기했는데 2시간이 걸렸다. 산의 절반쯤 올랐을 때 정상에 올라서 먹자고, 근처 분식집에서 샀던 주먹밥을 먹어야 했다. 날은 추웠고 엎친대 덮친 격으로 비까지 내렸다. 그래서인지 에너지가 금방 떨어졌다.

  손을 호호 불어가며 먹는 주먹밥은 맛있었다. 하지만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한 등산이라 주먹밥이 부족했다. 달랑 두 개만 사 왔던 것이다. 아내와 나는 배가 너무 고팠고 서로의 입으로 들어가는 주먹밥을 감시하며 신중히 나눠먹었다. 심학산 입구에서 팔던 찐 옥수수를 사지 않은 게 그토록 후회될 수 없었다. 아내는 그래서 사 오자고 하지 않았냐며 나를 구박했고 당장이라도 내려가 찐 옥수수를 다섯 개쯤 사 먹고 싶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심학산 중턱에 위치한 약천사라는 절을 들르기로 했다. 종종 절에서 밥을 얻어먹은 기억 때문에 혹시나 하는 마음에 절을 찾기로 했다. 아내는 나물이 가득 담긴 절 밥을 좋아했다. 하지만 약천사에서는 밥을 주지 않았다. 시간 때를 잘 못 맞춘 건지 밥을 제공하는 절이 따로 있는 건지는 무신론자인 나로서는 모르겠지만 부처님의 자비를 경험하지 못했다. 대신 커다란 불상을 볼 수 있었다. 남북통일 여래불이라고 하는데 남북통일과 중생의 병고, 빈궁, 재난, 고통 등을 구제하기 위해 2008년에 조성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 높이가 무려 13미터다. 그 웅장함이 제법 볼만하다.

  좀 더 자세히 살펴보고 부처님의 정기도 좀 받고 싶었지만 우린 배가 너무 고팠기에 서둘러 내려와야 했다. 심학산 아래에는 맛집임을 자랑하는 음식점들이 줄줄이 자리 잡고 있다. 배가 고팠지만 그래도 맛있는 걸 먹기 위해 신중히 식당을 골랐다. 그렇게 한 가게를 정했고 오늘의 고생을 보상받겠다는 심산으로 비장한 마음으로 가게로 들어갔다. 음식이 나오기 무섭게 허겁지겁 반찬과 공깃밥을 비웠다. 배가 불러오니 비로소 마음의 여유가 생겼고, 그제야 웃음이 났다. 그래도 산을 오르고 나니 기분은 좋다는 말도 나왔다. 산을 올라서 기분이 좋았던 건지 맛있는 갈비찜을 먹어서 기분이 좋았던 건지는 불분명하지만 그래도 아름다운 추억이다.


  싱그러운 여름 수풀이 우거질 때쯤 새로 생긴 두 식구에게도 심학산을 경험시켜줄 생각이다. 지칠 줄 모르는 아이들이 환하게 웃으며 뛰어노는 모습이 눈에 선하다.


작가의 이전글 인생은 온통 후회 투성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