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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태진 May 31. 2019

인생은 온통 후회 투성

호갱이라니. 내가 호갱이라니

  초등학교 2~3학년 때였던 걸로 기억한다. 복도가 긴 아파트에 살던 시절인데 우리 집은 긴 복도를 걸어 끝에서 두 번째에 위치해 있었다. 집 앞 현관 옆에는 복도에 물이 차지 않도록 배수관이 설치되어 있었는데 문득 그 배수관이 궁금했다. 세상의 모든 것이 신기하던 어린 시절이라서 그렇다. 그리고 그 호기심이 늘 문제를 일으킨다. 


이것과 비슷하게 생겼던 것 같다


  난 멈춰서 그 배수관을 살피기 시작했다. 두드려도 보고 주위에 있는 작은 알갱이들을 넣어도 보았다. 그러다 문득 열쇠가 그 작은 배수관 틈 사이로 들어갈까 의문이 들었다. 왜 이딴 의문이 들었는지 나란 존재가 의문스럽지만 결국 난 열쇠를 집어넣었고, 빗물 따위를 흘려보내야 할 작은 구멍으로 열쇠는 잘도 들어갔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작은 손은 열쇠를 놓치고 만다. 이제 나란 꼬마는 손에서 사라진 열쇠와 잠긴 현관문 사이에서 큰 고뇌에 잠기게 된다.  울어야 할까? 주위에 아무도 없으니 울어도 소용없을 것 같고. 아빠 엄마는 집에 없고. 번호키는커녕 휴대전화도 없던 시절이니 꼬마는 순식간에 공포에 휩싸였다. 손에 열쇠를 쥐고 있는 것과 없는 것의 차이가 얼마나 큰 문제를 일으킬 수 있는지를 피부로 실감하며 열쇠의 중요성을, 어린 나이였지만 느닷없이 깨달았다. 그리고 그제야 왜 이런 멍청한 짓을 한 걸까 후회하기 시작했다. 


  30년 가까이 지난 일인데 지금도 생생히 기억한다. 나는 왜 이렇게 바보 같을까 라고 한탄했던 그때 그 순간을. 짧은 인생에서 가장 큰 후회의 순간이었던 거다. 하지만 어른이 된다고 후회할 일을 안 하는 것도 아니다. 인생은 온통 후회 투성이고 지금도 바로 어제 한 일을 후회한다. 


  "위약금도 없고 24개월 약정에 추가 할인 여기에 경품까지 드립니다."

  "그러니까 공짜라는 말이죠?"

  "제가 설명드렸잖아요. 공짜나 마찬가지라니까요."

  “공짜는 아니지만 공짜나 마찬가지라고요?”

  “거의 공짜라는 거죠. 


  새로 산 휴대폰을 소중한 아기 다루듯 하며 곰곰이 생각해봤다. 아무래도 뭔가 이상한 것 같다. 24개월 약정이라고 했던 것 같은데 할부는 36개월이라니? 따져보니 이래저래 한 달에 만원씩은 할부금으로 내야 하는 것 같은데, 36개월을 내면 이게 대체 얼마지? 그렇다면 그가 강조하던 공짜는 뭐였던 걸까? 다시 가서 환불해야 하나? 하지만 이미 앱도 다 깔고 전화번호도 새로 다 저장하고 사진도 막 찍었는데. 다시 지워서 가져갈까? 가만, 이게 바로 '호갱'이란 건가? 

  국어사전에서 '호갱'을 찾아보니 어수룩하여 이용하기 좋은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라고 나온다. 심지어 영어로도 해석된다. Stupid customer라고. 

  호갱이라니. 내가 호갱이라니.


  큰 후회를 하면 이런 생각을 한다. 평생을 살며 또 얼마나 많은 후회를 할까? 이런 후회를 하지 않으려면 난 또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 과연 그 방법이란 게 있을까? 물론 그 방법이란 건 있을 수가 없다. 결국 삶은 후회로 가득할 것이고 그 후회를 줄이는 방법은 그저 조심하고 조심하는 것뿐이다.

  그런데 조심한다고 실수를 하지 않는 것도, 위기에 빠지지 않는 것도 아니다. 매일 아침 한 방송국에서 CCTV나 자동차 블랙박스에 찍힌 사고 영상을 보여주곤 했는데 영상 속에서 보여주는 사고들은 아무리 조심해도 피할 방법이 없어 보인다. 반대편 차선에서 중앙분리대를 뛰어넘으며 달려오는 자동차는 예지력을 갖지 않는 이상 세상 누구도 피할 수 없다. 

  그래서 하는 얘기는, 아무리 정신을 바짝 차려도 휴대폰 매장 직원의 빼어난 속임에는 넘어가지 않을 자신이 없다는 거다. 그는 교묘하고 갑작스럽게 내 정신을 흩어 놓는다. 중앙선을 넘어 달려오는 자동차 마냥 무섭다. 커다란 자동차 사고가 아니라 휴대폰 가게에서 일어난 작은 사고라는 것을 다행으로 생각하며 스스로 합리화할 뿐이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너 날 원망하는 눈치인데."

  "원망이라뇨. 이 정도는 고마운 액땜이죠."

  "그래 좋게 좋게 생각하자."


  참 잊어버릴 뻔했는데 열쇠를 잊어버려 집에 들어갈 수 없었던 꼬마의 뒷 이야기를 더하자면. 회사에 계시던 아버지가 아파트 단지 경비 아저씨에게 전화를 했고 경비 아저씨는 다시 열쇠 수리공을 불렀다. 그런데 급히 달려온 열쇠 수리공 아저씨는 현관 자물쇠를 부수려다 몸집이 작은 나를 보고 창문 쇠창살을 끊고 들어가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어렸던 나는 큰 잘못을 저질렀다는 죄책감에 떨고 있었지만, 쇠창살을 뚫고 들어간다는 사실이 멋져 보여 제안을 승낙했다. 아저씨는 쇠톱으로 곧장 쇠창살을 잘라냈다. 생긴 건 세상 다단해 보였는데  의외로 약한 창살을 보며 놀랐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난 잘린 창살 사이로 순식간에 들어갔다. 한 마리의 제비마냥 재빠르고 멋있게. 

  이후 잘린 쇠창살 구멍은 개구멍이 되어 열쇠가 없을 때 자주 사용하는 유용한 출입구가 되었다. 좋게 좋게 생각하자면, 이게 바로 전화위복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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