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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태진 May 29. 2019

한 번만 살기에 인생은 너무 어렵다

죽고 나면 다음날 일어나지 않아도 된다


  자전거를 논두렁에 세워두고 잠시 숨을 돌렸다. 애초에 이 더운 여름날 자전거를 끌고 나온 게 잘못이다. 해가지면 조금은 선선해질 거라 기대했는데 더위가 수그러들 기세가 아니다. 


  몇 달 전 받은 건강검진 결과표에 충격을 받아 되도록이면 자전거로 출퇴근하려고 노력 중이다. 어느 날 갑자기 허무하게 쓰러져 죽을 순 없으니까. 더구나 딸린 식구가 적지 않으니 죽고 싶어도 자격이 안 된다. 죽음을 생각하기에는 아직은 젊은 나이이지만 매년 그 수치가 나빠지는 건강검진표를 보면 새삼 죽음을 떠올리게 된다. 그러고 보니 갑자기 심장이 콩닥콩닥 거리는 게 제대로 뛰고 있는 거 맞지? 뭔가 갑자기 무서워진다...


  내일 당장 죽는다면 어떨까? 가장 먼저 삶을 정리하고 싶을 것 같다. 아마 대부분의 물건들은 버릴 테고 얼마 안 되는 재산은 가족에게 전해질 것이다. 정리가 끝난 후에는 사랑하는 이들과 작별의 시간을 가질 텐데, 험한 세상 무탈하게 지내다 가라는 말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걸 보니 역시 세상은 만만한 곳이 아니다. 남겨진 이들의 삶이 걱정스러워 마음이 침울하게 가라앉는다. 

  하지만 누가 그랬다. 죽고 나면 내 자리를 대신할 더 좋은 남편 더 좋은 아빠가 나타날 것이니 걱정 말라고. 기뻐해야 하는 것인지 슬퍼해야 하는 것인지...


  죽음은 그야말로 끝이다. 매일 잠들고 아침에 일어나지만, 아니 일어나야 하지만 죽고 나면 다음날 일어나지 않아도 된다. 하룻밤의 기억이 없는 것 정도의 문제가 아니다. 잠드는 순간부터 영원히, 우주가 폭발해 사라지는 순간까지 어떤 기억도, 생각도 없다. 하지만 당연히도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은 여전히 살아갈 것이고 그뿐인가 그들의, 자식의 자식의 자식들이 언젠가 찾아올 외계인들과 사랑에 빠져 결혼을 할지도 모른다. 내가 죽은 뒤에도 수많은 일들이 벌어질 테지만 나란 존재는 사라져 버린 후다. 죽는 순간 이후로 영원히. 

  조금 가혹하다는 생각도 든다. 영겁의 시간이 있는데 나에게 주어진 시간은 길어야 100년이라니. 100년 너무 짧다. 세상에는 재미있고 즐거운 게 얼마나 많은데 고작 100년이라니. 더구나 100년 정도를 채우려면 운도 많이 따라야 한다. 온갖 병을 이겨내야 하고 갖가지 사건 사고를 피해야 하고 돈도 많아야 한다. 

야박한 신에게 다음 기회는 없는 거냐고 묻고 싶어 진다. 


  "100년이 뭡니까!"

  "그것도 쉬운 건 아닐걸."

  "정말 이러깁니까?"

  "그런 인생 더 살아서 뭐 하려고?"

  "보자 보자 하니까 이 사람이... 아니지 이 신이…" 


  사실은 이런 상상을 하기도 한다. 죽고 나니 누군가가 다가와 인생 예행연습을 마쳤으니 이제 본격적으로 다음 생을 살라며 등을 토닥여 주는 상상. 아마 모두가 하는 상상이 아닐까 싶다. 한 번만 살기에 인생은 너무 어렵고 또 너무 짧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사후세계를 보장한다고 해도 일단 지금은 죽고 싶지 않다. 되도록 오래오래 살고 싶다. 이것 역시 모두 같은 생각이겠지. 아마도. 


  죽음에 대한 생각은 늘 이렇게 꼬리에 꼬리를 물고 결국 죽음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철학적 의문에 휩싸여 골치가 아프기 시작한다. 아픈 머리를 쥐어뜯으며 혹시나, 죽음에 대한 해답을 알려주길 기대하며 한때 유행했던 셀리 케이건의 『죽음이란 무엇인가』를 펼쳐 든 적도 있다. 죽음에 대해 명확한 해답을 들려줄 것 같은 제목이었기에 큰 기대로 집어 든 책이었는데 기대와는 달리 책은 마지막 장까지 ‘죽음이란 무엇인가’만 묻다 끝났던 것으로 기억한다. 사후 경험을 했다든지 죽음의 문턱에서 살아 돌아온 사람들의 인터뷰나 혹은 죽었다 다시 살아난 사람들의 극적인 이야기를 기대했었는데 책은 감당하기 힘들 만큼 철학적이었다. 


  평생을 죽음에 대해 공부한 철학자이자 미국 명문대학교의 교수 역시 ‘죽음’을 밝혀내지 못했다면 세상 그 누구도 죽음 이후의 세상에 대해서는 모른다는 것일 거다. 그러니 죽음에 대해 알아보겠다는 생각은 이쯤 해서 그만하자. 

  죽음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지만 운동을 하면 죽음을 조금은 더 늦출 수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니 다시 땀을 흘리며 자전거 페달을 밟는다.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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