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태진 Mar 19. 2020

#0. 모두 저마다의 게임 역사가 있다

그 시작은 우연이었다

  나의 게임 역사는 특별할 것도 없는 그저 대세를 따르는 정도였다. ‘패밀리’라는 콘솔 게임이 기억에 남고 친구들과 어울려 다닌 오락실에서 ‘스트리트 파이터’와 ‘1945’를 동전 쌓아놓고 즐기는 정도였다. 이후 컴퓨터 게임으로 ‘삼국지’와 ‘프린세스 메이커’를 그리고 다시 시간이 흘러 대한민국의 국민이라면 모두가 즐기던 ‘스타크래프트’를 몇 년 간 격렬하게 소비하였다. 그리고 나이가 들어 뜬금없이 모바일 게임 ‘애니팡’과 ‘클래시 오브 클랜’에 잠시 심취하였던 것이 그나마 최근 일이다. (물론 그 사이사이 기억이 잘 나지 않는 게임들이 몇 개 있었지만 특별히 애정이 가는 정도는 아니었다) 

  새삼 돌이켜보니 특별할 것 없는 내 인생만큼이나 즐겼던 게임들 역시 일반적이었던 것 같아 갑자기 조금 씁쓸하다.  


아주 꼬마였을 때 친구집에서 즐겨했던 게임 '마성전설'. 제목이 아직도 생각나네.

  

  하여튼 이렇게 내 게임 인생은 마감을 향하고 있었다. 게임이 거기서 거기 아니겠냐고. 반복되는 플레이로 아까운 시간을 낭비하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모든 게임에서 눈과 귀를 돌렸다. 하지만 모든 사건은 우연에서 시작되듯, 끝날 것 같던 나의 게임 이야기는 다시 시작된다. 다행이다... ‘게임이야 뭐 애들이나 하는 거지’, 그저 아이들이나 즐기는 시간낭비의 문화라고 터부시 하다 꼰대소리 좀 들을 뻔 했다.

  더구나 이렇게나 즐겁고, '특별한 세상'이 있다는 것조차 모르고 '그냥' 살았다면 그 또한 스스로에게 비극이 아닐 수 없다. 맞다 비극이라고 표현할 만큼 게임의 세계는 거대하고 화려했다.


  그 시작은 우연이었다.

  주말을 맞아 찾아간 처가댁에서 종이 백 안에 ‘가만히’ 들어있는 박스를 발견하였다. 얼핏 보니 친구 집에서 본 적 있던 ‘플레이스테이션’이라는 게임기였다. 처남이 샀나 보네 하고 박스를 들어보니 웬걸 묵직했다. 빈 상자가 아닌 것 같은데? 박스를 들어보며 궁금해 하는데 처남이 다가왔다.


  “형님 가지실래요?”

  “응?”

  “제가 하려고 샀는데 할 시간도 없고 어머니가 게임하는 걸 별로 좋아하지도 않으시고 해서요. 

  “어... 그럴까 그럼.”


  이렇게 나는 내 돈 주고라면 결코 사지 않았을 플레이스테이션을 우연히 갖게 되었다. 돈 많고 착한 처남이 선뜻 줬다. 공짜인데 받지 않을 수 없었다. 고마웠지만 그때는 이게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몰랐다.

  집으로 가져온 게임기를 TV에 연결하고 함께 준 몇 가지 시디를 플레이어에 넣고 잠시 기다렸다. 뭔가 다운로드와 업그레이드를 반복하더니 이내 새로운 세상이 나를 '당겼다'. 별로 갈 마음이 없었는데 그 묘한 움직임과 진동, 이야기에 끌려간 거다.  


플레이스테이션 광고 중 한 장면


  그리고 며칠 뒤. 나는 플레이스테이션 중고 가격을 검색한 후 처남에게 돈을 보내주었다. 마음 같아서는 몇 푼 더 얹어서 주고 싶었지만 주머니 사정이 넉넉하지 못했다. 새로운 세계를 알려준 것에 대한 고마움의 표시였다.


  우연히 던진 돌에 개구리가 죽는다는 말이 있다. 나의 경우에는 우연히 던진 플레이스테이션에 나의 생각이 깨졌다고 하면 될 것 같다. 낡고 오래된 편협한 생각이 깨진 거다. 그래서 그 생각들을 좀 풀어보려고 한다. ‘재미있다’라는 단순한 단어로는 표현될 수 없는 그 '가능성'을 이야기하고 함께 게임은 유해한 컨텐츠라는 잘못된 오해를 조금이나마 풀고 싶어서다.  


  현재 나는 초보 게이머다. 어떤 게임이든 낯설고 서툴다. 'easy'는 당연한 선택이며 심장이 떨려 아무렇게나 총을 갈겨댄다. 죽고 죽기를 반복하지만 다시 듀얼쇼크를 잡아들고 침을 삼킨다. 

  화려하며 즐거운, 짜릿한 그 세계로 들어가기 위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