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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태진 Nov 04. 2020

'친구'라는 환상에서 벗어나다

안녕, 나의 소울메이트 - 친구를 가져야 한다는 인식이 예전과 달라졌다

  친구, 정확히는 친구를 가져야 한다는 인식이 예전과 달라졌다.

  한때 우리는 친구는 많아야 좋은 것이고 우정이야 말로 실로 가족만큼이나 중요한 것이라 여겼다. 내 기억으로는 불과 십여 년 전까지는 대체로 그런 분위기였다.

  그런데 이제는 그렇지 않다. 친구는 몇 명으로도 족하고 그마저도 내키지 않으면 만들지 않는다. 혼자서도 행복하기만 하면 그만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실제로 TV 속에 등장하는 연예인들 역시 자신은 친구가 없다고 태연하게 말한다. 대중 또한 그런 그들의 말을 대수롭게 여기지 않는 시대가 되었다.

  우정을 위해 애인을 포기하고 돈을 빌려주고 심지어 담보를 서주기도 하던 친구들은 영화 속에나 등장하는 철없던 시대의 '전설'이 되어 사라져 간다.

  우리는 모두 '친구'라는 환상에 빠져있었던 게 아닐까?


  나 역시 그렇다. 한때는 친구와 가족을 비슷한 것쯤으로 여겼었는데 이제는 안다. 친구는 가족이 될 수 없다는 것을. 물론 여자 혹은 남자 혹은 동성 사람 친구와 결혼하면 가족이 되긴 하지만 그건 우정이란 탈을 쓴 사랑이었으니 별계다.

  이제 나에게 친구는 같은 전투에 참여한 전우 정도가 된 것 같다. 우린 모두 삶이라는 전쟁터에 있으니 말이다. 모두 살아남기 바쁘니 만남은 요원하다.


  먹고살기 바빠 연락을 못한다던 선배들의 말을 이제 내가 한다. 흔한 변명이지만 실제 그렇기도 하다. 그리고 놀 땐 쉬기 바쁘다.

  물론 여전히 보고 싶고 안부가 궁금한 친구들이 있지만 거절이 두려워 연락하는 것도 망설여진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친구들과의 시답잖은 대화가 그립기도 하다. 술 한잔도 그립고. 하지만 그렇지 못하기에 그저 현실에 순응한다. 결혼을 돌잔치를 장례를 핑계로 겨우 만날 뿐이다.


  친구를 잃어서 슬픈 건지, 아쉬운 건지 모르겠다. 혹은 별 감흥이 없는 건지, 그 조차도 잘 모르고 산다.

그럼에도 친구들이 생각난다. 만날 수 없으니 혹은 만나기 귀찮으니 생각만 한다.

  미안하다. 친구들아. 너희들도 미안하니?


영화 <안녕, 나의 소울메이트> 중 한 장면

  

  영화 <안녕 나의 소울메이트>는 주동우의 영화를 전부 찾아보다 알게 되었다.(맞다. 난 주동우의 팬이 되기로 했다) 덕분에 오랜만에 최근의 중국 영화들을 접하게 되었는데 나름 '순수함'이 있었다. 다소 넘치는 문학적 감수성이랄까? 뭔가 닭살 돋지만 또 그냥 보게 되는 묘한 매력 말이다. 더불어 중국의 근현대 일상을 엿볼 수 있다는 점도 보는 재미를 더한다.


  하여튼, 영화는 이제는 좀처럼 보기 힘든 진한 '우정'을 그린다. 그 우정이란 이름의 관계가 다소 복잡하지만 오랜만에 끈끈하다 못해 절절한 우정을 목도하니 낯설고 반갑다. 또 우정 사이에 낀 사랑, 이 흔한 클리셰 역시 오랜만이다. 그리고 사랑도 우정도 아닌 반전은 다소 놀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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