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타할머니가 온 것이 문제였다
올해 역시 산타는 참 많은 일들을 해냈다. 전 세계 수 억 명의 말 안 듣는 아이들 우는 아이들을 단숨에 제압하며 부모들의 숨통을 틔워주었다. 아이들에게도 어른에게도 실로 고마운 존재가 아닐 수 없다.
그러니 이 귀한 존재를 우리는 보호해야 한다. 실제 전 세계의 어른들이 산타를 '지켜'내려 노력한다. 산타와 관련된 수많은 영화와 만화를 만들어내는가 하면 산타가 그 많은 짐을 들고 어떻게 전 세계 어린이들을 만날 수 있는지를 진지하게 계산하고 심지어 산타 이동경로를 만들어 공개하기에 이른다. 산타와 통화할 수 있는 앱은 거의 기본에 가깝다.
아이들이 때론 대체 산타라는 할아버지는 어째서 우리의 모든 것을 특히 나쁜 짓 하는 것을 다 알고 있는지 그 존재와 능력을 의심하긴 하지만 선물을 받고 나면 그런 의문은 단숨에 사라지고 만다. 아이들에게 산타 할아버지는 아무리 울어도 또 부모님 말을 안 들어도 결국 선물을 주고야 마는 고마운 사람이 아닐 수 없다.
나쁜 행동을 하면 선물을 주지 않는다고 협박하는, 지극히 부모 친화적 인물인 산타의 치졸함을 불평할 줄 모르는 아이들의 천진함이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사실 난 산타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다. 7살이었던 것 같다. 자고 일어나니 머리맡에 선물이 있었는데 그 선물이 다름 아닌 책이었다. 책 이라니... 과연 7살 어린아이가 받을 선물이란 말인가? 심지어 난 그때 글을 잘 읽지도 못했다.
책에는 짧은 글귀가 적혀 있었는데 산타할머니가 쓴 메모였다. 그 내용은 기억나지 않는다. 내용은 중요하지 않았다. 선물이 책이라는 사실 때문에 모든 것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눈물을 흘렸을지도 모른다) 오라고 한 것도 아닌 산타할머니가 온 것이 문제라고 생각했다. 산타할아버지는 분명 장난감을 선물로 주셨을 텐데 할머니가 와서 다 망쳤다고 생각했다. 그 충격이 지금도 생생하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만화책이었다는 점이 일말의 위로가 될 뿐이었다.
그러니 동료 산타들에게 제안한다. 아이의 교육을 위해 책을 준비할 계획이라면 그만두라고. 자칫 아이에게 평생 잊지 못할 트라우마를 줄 수 있다. 책을 주고 싶다면 장난감을 세 개쯤 준비하라고 제안한다. 그 정도는 되어야 책이 주는 충격이 상쇄될 것이다.
세상의 모든 아이들이 행복하고 건강하길 진심으로 바란다.
적어도 아이들에게만큼은 따뜻한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