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존재 자체가 악당이다
'디트로이트 비컴 휴먼', 한 작가와의 인터뷰에서 추천받은 게임이었다. 요즘 이 게임 때문에 잠을 못 이루고 있다고 하니 궁금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곧장 찾아보고 인터넷에서 정보를 찾았다.
‘인터렉티브 게임’이라는 낯선 장르였다. 이런 게임은 처음이지만 사실 아주 오래전 이와 비슷한 방식의 플레이를 책으로 경험한 적이 있었다. 난 게임보다 책을 좋아하던 '착한' 아이였다.
어린이들을 위한 탐정 소설의 일종이었는데 여러 가지 선택의 순간이 주어졌고 그 선택에 따라 지시하는 페이지로 넘어가야 했다. 그곳에서 서로 다른 이야기가 전개되었고 다시 반복하여 나아갈 방향을 선택했다. 그리고 내 선택에 따라 결말이 달라졌다. 그 낯선 진행방식이 즐거웠고 여전히 당시의 기억이 생생할 만큼 신선한 경험이었다.
'디트로이트 비컴 휴먼'은 바로 그런 장르의 게임이다. 물론 훨씬 진화된 장르이고 심지어 현실인지 그림인지 구분되지 않을 정도로 정교해진 그래픽 기술을 보여준다.
하지만 내가 정작 놀랐던 건 게임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메시지였다. 게임은 인간과 거의 같아진 인공지능, 심지어 감정을 갖게 된 ‘그것’들 혹은 ‘그들’이 자신들의 권리와 자유를 요구하기 시작했을 때 벌어지는 일들을 이야기한다. 이때 그들을 향하는 인간들의 대응은 비이성적이고 비논리적이다. 그것도 모자라 때로는 ‘비인간적’이기까지 한다. 그런 인간이 과연 그들을 판단하고 처벌할 자격이 있을까?
소설 중에 이런 소설이 있다. 맨부커상 수상작가 이기도 한 가즈오 이시구로 작가의 『나를 보내지마』 라는 소설을 보면 인공지능은 아니지만 복제된 인간들, ‘클론’이 등장한다. 클론은 인간의 장기 기증을 위해 만들어졌고 때가 되면 자신의 장기를 원래의 주인(?)에게 제공하고 죽어야 되는 운명을 갖고 있다. 필요해 의해 만들어지고 그 필요가 다했을 때 죽어야 하는 그들의 운명을 보고 있자니 꽤나 불편했다.
이렇듯 인간은 언제나 이기적이다. 인간을 제외한 지구상의 거의 모든 존재들에게 악당이다. 잘못하고 있다는 걸 직감적으로 알지만 멈추지 못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인간의 악행은 눈덩이가 커지듯 불어나고 있다.
다시 게임 이야기로 넘어오면 모든 인생이 선택의 연속이 듯 게임 역시 수많은 선택을 강요하고, 그 선택을 돌이킬 수 없다. 그러니 매번 아쉬움과 후회가 남는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게임은 다시 처음부터 해볼 수 있다는 거다. 게임 속에 주어진 두 번째 인생은 당연히 모든 것이 쉽고 늘 ‘최선’을 선택할 수 있다.
반면 우리의 인생은 두 번째 기회가 없다. 그러니 모든 것에 신중할 수밖에 없고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다. 이마저도 인간의 삶은 그들에 비해 ‘비인간적’이다.
정작 중요한 얘기를 못했다. 게임은 말할 것도 없이 최고였다. 오죽했으면 이 회사, 퀀틱 드림이 이전에 만들었던 두 편의 게임인 ‘헤비 레인’과 ‘비욘드:투 소울즈’를 다 찾아서 플레이했을 정도다. 물론 이 전의 두 편 역시 매우 훌륭했다. 말하면 입만 아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