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바꿀 수 있는 건 거의 없다. 특히 사람의 마음은
땡볕 아래 주차를 할 때면 차가 녹아내리진 않을까 걱정스럽다. 하지만 아무리 둘러봐도 사정없이 내리쬐는 햇볕을 피해 주차할 곳이 없다. 아니 왜 이렇게 황량하게 단지를 만들었을까? 그늘 한 점 찾아볼 수가 없다. 여기에 차라리 태양열 집기판을 설치했으면 제법 많은 에너지를 모았을지도 모른다. 덕분에 절약된 비용은 월급으로 돌려줬으면 좋겠지만 사장이 줄 리가 없겠지?
주위를 둘러보니 가뜩이나 사람 없는 출판단지가 더욱 황량하다. 사람들은 모두 태양을 피해 어디론가 들어갔다.
그늘 한 점 없는 주차장에 차를 세우며, 욕지거리를 날린다. 문뜩 이렇게 하루에도 수없이 튀어나오는 욕들이 앞 유리에 달린 블랙박스에 가득 담겼을 걸 생각하니 목덜미가 달아오른다.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욕을 저 박스 안에 넣었을까? 가만둬도 땡볕에 곧 녹아내려 고장 날 것 같지만, 조만간 메모리카드를 포맷해야겠다.
더위야 적당히 좀 하자. XX. 이러다 차가 폭발할 지경이다.
출판단지 뒤쪽 후미진 곳, 나무 그늘 아래 조심스레 차를 세웠다. 요즘은 회사가 가장 시원하다. 에어컨도 모자라 책상 위 선풍기를 ‘강’으로 튼다. 하지만 곧 언제 더웠냐는 듯 추위를 느껴 ‘약’으로 낮춘다. 창밖을 내다보니 찌는 더위가 눈에 보이는 것 같고 하늘은 새파랗다. 온다는 비는 전혀 올 것 같지 않다. 화가 슬며시 오른다.
어릴 때는 분노를 조절할 줄 몰랐다. 초등학교가 국민학교이던 시절 나 역시 그 국민학교를 다닐 때. 그때는 왜 그렇게도 동생이랑 싸울 일이 많았는지 참 치열하게도 싸웠다. 말도 안 되는 논리와 고집, 성질, 분노를 담아 동생을 윽발질렀고 분에 못 이긴 동생 역시 죽기 살기로 덤벼들어 정당함을 부르짖었다. 물론 고성과 폭력이 난무했다. 하지만 난 남자였고 동생은 여자였으니 언제나 부끄러운 승리는 나의 몫이었다. 말싸움으로는 도저히 동생을 이길 수 없었고 대꾸할 수 없는 정확한 논리에 당황하며 동생의 머리끄덩이를 잡아당기곤 했다. 동생은 곧바로 눈물을 흘렸고 그제야 싸움은 끝이 났다. 늘 비슷한 패턴이었다. 그런데 기어이 사고가 터지고 말았다. 성에 못 이겨 철제 과자 상자를 동생에게 던져버린 거다. 총알같이 날아간 상자는 동생의 이마를 강타했고 동생은 커다란 비명을 질렀다. 다행히 찢어지진 않았지만 이마는 커다랗게 부었고 커다랗게 부은 이마를 보며 나 역시 공포에 떨었다. 자칫 눈에라도 맞았으면 더 심각한 일이 벌어질 수도 있었다. 서럽게 우는 동생을 보며 커다란 죄책감을 느꼈다. 어린 나이였지만 내가 한 짓이 얼마나 무서운 일이었는지 알았다. 사소한 말다툼이 얼마나 일을 심각하게 만들 수 있는지를 그때, 느닷없지만 심각하게 깨달았다.
이후 분노하지 않고 짜증내지 않으며 살겠다고 늘 다짐하지만 생겨먹은 게 워낙 불같아서 그러지 못하고 있다. 이미 깨달은 바 있지만 습득과 실천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중년이 된 지금까지도 후회하는 나날이다. 하지만 지금도 당시의 그 아찔한 기억은 극도의 분노상황에서 날 제어하는 브레이크가 되곤 한다.
어렸을 때 많이 놀아본 사람이 나이 들어 놀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젊어서 연애를 많이 해본 사람이 나이 들어 바람피우지 않는다는 말도 있다. 그래서인지 어린 시절 많이 대들고 싸웠던 탓에 이제는 짜증과 분노도 많이 줄었다. 일종의 체념도 있다. 내가 바꿀 수 있는 건 거의 없다는 걸 깨닫게 되었으니까. 특히나 사람의 마음을 내 생각대로 움직일 수 없다는 걸 깨닫게 되니 너는 너, 나는 나라는 생각에 기대를 많이 낮추게 되었다. 그러면 화를 내야 할 일들이 크게 줄어든다.
“오늘 비가 내린다는 예보에 얼마나 기대가 컸는지 알아요?”
“화가 나셨군요.”
“대체 며칠째 살인적인 무더위냐고요.”
“애초에 예보가 맞을 거란 기대를 하지 마세요. 기대가 없으면 실망도 없을 테니까요.”
“전 실망하는 걸 싫어하긴 해요.”
“그러다 예보가 맞으면 또 뜻밖의 행운인 거죠.”
“그건 그렇고. 제 세금은 잘 쓰고 계시죠?”
짜증도 화도 그 순간만 참으면 다 참아진다는 것도 깨달았다. 잠깐만 참으면 언제 그랬냐는 듯 밥을 먹고 TV를 보고 영화를 보며 웃고 있는 한가한 나를 발견한다. 불과 몇 시간 전만 해도 세상 분노는 다 가진 듯 폭발했었다는 걸 까맣게 잊은 채 말이다.
하지만 이 지겨운 여름 날씨는 좀처럼 참기도, 잊기도 힘들다. 낮이고 밤이고 숨이 턱 막히는 열기가 끊이질 않는다. 점심을 먹으러 잠시 나갔다 온 사이 셔츠가 흠뻑 젖어버릴 정도의 더위다. 필요한 건 오직 에어컨뿐이다. 사무실 에어컨 온도를 18도로 낮춘다.
그래 놓곤 퇴근 후 집에 와선 에너지 절약을 위해 25도쯤이 적당하다고 스스로를 설득한다. 또 어쩌면 에어컨은 건강에 안 좋을 수 있다며 선풍기를 켠다. 하지만 선풍기로는 역부족이란 걸 깨닫고 다시 에어컨의 스위치를 누른다. 온도를 25도로 맞춰서. 에어컨 송풍구에 얼굴을 들이밀고, 바람을 온몸으로 느끼며 생각한다. 벌써 시원해진 것 같다고.
19도쯤 되는 것 같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