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이 되면 누구나 큰돈을 갖게 되는 줄 알았다
점심때면 출판단지의 몇 안 되는 식당을 찾아 넓디넓은 이곳을 헤매고 다닌다. 김치찌개를 먹기 위해 십오 분을 걸어가고 다시 돌아올 때면 이미 절반 이상 소화가 된 상태다. 뭔가 억울하고 동시에 3시쯤 시작될 허기짐이 두렵다.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출판단지에 유행처럼 꽃피고 있는 카페 한 곳을 찾았다. 다소 멋쩍지만 점심을 먹지 않은 척 케이크와 커피를 시키고 새로 시작하는 마음으로 먹었다. 하는 일에 비해 밥을 너무 많이 먹는 것 같은 기분이다. 연비가 좀 떨어진다고 해야 하나. 그렇다고 덩치가 큰 것도 아니다.
작은 카페에 사람들이 가득 차 있다. 커피를 내리는 바리스타의 손놀림이 정신없이 바쁘다. 대강 테이블 수를 세어보니 열 개 정도 되는 것 같다. 다들 어디 숨어있었는지 평소에는 보기 힘든 사람들이 카페에 가득하고 커피와 주스, 케이크 따위가 각각의 테이블 위에 놓여 있다. 이거 제법 돈이 될 것 같다. 그리고 돈을 벌고 있을 누군가가 부럽다.
최근 출판단지에는 카페 열풍이 불고 있다. 출판사들이 너도나도 카페 혹은 북카페를 열고 있기 때문이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이게 수익이 쏠쏠하다고 한다. 가만 세어보니, 회사 주위에만 다섯 곳이 있다. 어느 하나 문 닫은 곳이 없는 걸 보면 그만큼 수요가 있다는 뜻이다. 물론 고객 서비스 차원의 공간으로서도 유용하다. 북카페는 출판사의 입장에서 활용성이 매우 좋은 공간인데, 책을 출간하며 의례 하게 되는 저자와의 만남, 사인회, 북콘서트 등을 진행하기가 한결 수월해진다. 더구나 카페를 찾은 손님들이 출판사의 다른 도서들을 자연스럽게 접하도록 하는 홍보효과도 있다. 그야말로 일석이조를 넘어 삼조, 사조다.
이쯤 되면 출판사 사장님이 부럽지 않을 수 없다. 내 건물에. 카페에. 거기서 책까지 팔고 있으니. 난 월급쟁이 직장인인데. 남들은 돈 버느라 신이 났는데 난 매일 방구석에 앉아 책이나 보고 있으니 왠지 조바심이 난다. 더 늦기 전에 나도 보다 발전적인 창업의 전선에 뛰어들 준비를 해야 하는데 아직 아무런 계획이 없다. 그렇다고 딱히 장사를 할 자신도 없고. 하고 싶지도 않고. 소설가가 되고 싶지만 남들 다하는(?) 신춘문예에는 매년 떨어지고 있다. 물론 신춘문예를 통해서만 소설가가 되는 건 아니지만 기분이 그냥 그렇다. 문제는 막상 소설가가 되어도 문제다. 모든 소설가가 큰돈을 버는 건 아니니까.
어릴 때는 어른이 되면 누구나 큰돈을 갖게 되는 줄 알았다. 정말 터무니없는 생각이었다. 어디서 그런 허무맹랑한 생각이 나왔는지 모르겠다. 그냥 세상이 이렇게나 말도 안 되게 엉망진창일 거라고는 상상도 못 하였던 것 같다. 순진한 아이였으니까.
마음 같아서는 평생 회사원이고 싶다. 뭔가 그럴듯한 꿈은 아니지만 그래도 그랬으면 좋겠다. 월급쟁이가 최고라고 했다. 주위의 거의 모든 사람들이 그랬다. 살아보니 정말 그런 것 같다. 하지만 여전히 썩 기분 좋은 느낌은 아니다. 뭔가 평범한 아저씨가 되어버린 것 같다.
평범한 아저씨가 되는 게 꿈은 아니었다.
이제 술 생각이 나지 않는 게 더 이상하다. 집 앞 편의점에 가 맥주 몇 캔과 함께 ‘로또’를 샀다. 인생역전 프로젝트를 가동시켜본다. 원금 손실 확률이 무시무시하게 높지만 인생은 도전이니까 삼천 원을 투자한다. 그마저도 사실은 아깝다.
맥주를 마시며 친구에게 인생역전 프로젝트의 가동을 자랑한다.
“당첨되면 알제? 내일부터 회사 때려치운다.”
“내 얼마 줄꺼고?”
“닌 얄짤 없다.”
“내 얼마 줄꺼냐고?”
“일단 집 하나 사고 생각하자.”
“니 내 얼마 줄꺼냔 말 안들리나?”
“차는 외제차를 살 거다.”
“죽고 싶나 니.”
“이게 미쳤나.”
로또가 당첨되면 그 돈으로 뭘 해야 할지 행복한 고민에 빠진다. 집도 사고... 또 다른 걸 살 만큼 큰돈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누군가 그러더라. 로또 당첨돼봐야 몇 십억이고 그래 봐야 한 세대 겨우 먹고 살 거라고. 운이 나쁘면 그마저도 일찌감치 다 쓰고 모자랄지도 모른다고. 그럼 로또에 당첨되지 않은 사람은 대체 어쩌라는 말이지? 몇 십억에 당첨되어도 살기 힘든 세상이면 월급쟁이는 어쩌라는 거지. 이쯤 되면 다시 도돌이표처럼 창업을 떠올린다. 이십 대의 젊은 혈기와 패기라도 있었다면 또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은 걱정스러운 건강검진표를 손에 들고 홍삼을 사다 먹어야 하나 고민하는 중이다.
창업 관련 도서는 이미 책상 위에 한 가득 쌓여있다. 부족한 건 역시 용기다. 물론 돈도 없다.